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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된 회화… 평면적 입체와 입체적 평면 사이[건축 오디세이]

건축이 된 회화… 평면적 입체와 입체적 평면 사이[건축 오디세이]

입력 2023-03-13 00:12
업데이트 2023-12-17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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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경기 양평군 서종면 ‘메타박스’

화가 서용선 작품 전시·관리 목적…도로변 우뚝 선 낯선 적색 구조물
벽같이 납작한 사각형이었다가 몇 발만 더 가면 캔버스 같은 평면
한숨 돌리며 더 가면 다시 입체로 변화무쌍 의외 모습 띤 ‘조각 작품’
작가의 대표적 이미지 녹·적·파·노 주변 자연의 색과 자연스럽게 조화


서울 근교의 별장지로 유명한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다. 양수리 쪽에서 들어가거나 서종 IC 쪽에서 가는 방법이다. 양수리 쪽에서 북한강 줄기를 따라오다 문호리에 접어들면 오른쪽으로 암적색 구조물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입구 도로변에 벽을 세워 놓은 것처럼 납작한 사각형 건물. 그런데 조금 이동하자 이 구조물의 모습은 금세 볼륨을 가진 박스로 바뀐다. 조금 더 이동해서 정면을 향해 바라보면 다시 캔버스처럼 평면이다. 좀더 지나서 바라보면 평면은 다시 입체로 보인다. 시점에 따라 다르게, 의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 같다. 건축물은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어진 ‘메타박스’(METABOX)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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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메타박스를 디자인한 건축가 정의엽(AND건축사사무소 소장)은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2차원적인 3차원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납작하게 보였는데 두툼하고, 두툼한 줄 알았는데 다시 납작해지는 건축에 대해 정 소장은 “이 길을 오고 가는 길목에 있는 만큼 예술작품을 볼 때처럼 익숙하지 않은 ‘낯선 지각적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서종면은 화가들의 작업실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물 맑고 산세 좋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엔 서울에 비해 땅값이 매우 낮은 편이라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가 쉬웠기 때문이었다. 역사와 설화 그리고 현대도시의 풍경을 주제로 작업하는 서용선 작가도 오래전에 서종면 문호리에 삶의 터를 잡고 작업해 왔다. 세상과 좀더 가까이 소통하는 방법을 물색하고자 전시와 아카이브를 겸하는 공간이 필요했고 마침 출판사 ‘연립서가’를 차린 조카 부부의 사무실 공간도 필요하던 차에 땅을 마련해 건물을 짓기로 했다. 서 작가는 서울대 교수 시절의 제자 정일영 작가에게서 정 소장을 소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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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단순한 상업건물이 아니고 화가의 아카이브와 전시기능을 하는 공간인 만큼 서용선 작가의 고유한 태도와 시선을 건축에 새겨 넣고 싶었습니다.”

작가 서용선의 작품과 생각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의 구상을 시작했다. 화가 서용선을 이해하기 위해 정 소장이 던진 첫 질문은 “그림은 무엇입니까?”였다.

정 소장이 전하는 서용선의 대답은 이렇다.

“회화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행위이다. 이미지란 사람의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림뿐만 아니라 글과 상징도 이미지이며 모든 인간은 이미지를 표현하며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가의 작업은 이미지를 만드는 형식을 넓히는 행위이며 회화, 즉 이미지의 형식은 결국 인간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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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를 향해 가다 보면 우뚝 선 암적색 건물 메타박스(METABOX)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화가 서용선의 작품 전시와 아카이브를 목적으로 지은 이 건물은 멀리서 조망하거나, 정면에서 바라볼 때, 측면에서 볼 때 시점마다 평면과 입체를 오가는 것이 마치 조각 작품을 보는 듯하다.
사진 신경섭 작가
선문답 같지만 공간의 이미지를 만드는 건축가에게는 바로 무슨 의미인지 와닿았다. “‘화가의 작업은 이미지를 만드는 형식을 넓히는 행위’라는 말은 많은 생각거리와 작업을 풀어 나가는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정 소장은 말한다. 그는 여러 차례 서용선의 작업실을 찾아가 그의 그림들을 보면서 작가가 공간과 인물 등 이미지를 표현하는 방법에 대해서 탐구했다.

“서용선 작가의 작품은 현실의 3차원 공간을 캔버스에 2차원화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로 가득했습니다. 완전히 추상화시키거나 개념화하지는 않으면서 사실적 혹은 원근법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서용선이 그리는 도시와 실내 공간에서 자주 보이는 격자 형태의 선들이 투시 원근법적인 도시공간의 지각을 형성하는 듯하지만 실제 공간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15세기 이탈리아 건축가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체계화된 원근법은 공간을 인식하는 가장 보편적인 이미지화의 방법과는 달랐다.

정 소장은 “거리가 바짝 압축되고, 다른 시간 혹은 공간이 하나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서 작가의 공간 표현은 객관적 인식이라기보다는 주관적 심리와 실제적 감각 사이에 존재하는 종합적인 지각의 이미지”라면서 “이성중심적 사고방식이 만든 현대도시에서 작가가 경험하고 사유한 것을 그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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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박스의 주 출입구. 사진 신경섭 작가
메타박스의 주 출입구.
사진 신경섭 작가
화가의 원근법적 공간지각과 평면적인 이미지, 비틀기는 정 소장이 건축물을 설계하는 방향이 됐다. 작가가 추구하고 실현하는 예술이 일상의 공간과 삶에 던지는 가치를 캔버스 밖으로 확장해 건축과 도시로 편입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설계했다.

정 소장은 “관습적인 공간의 이미지화 방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이 건물이 서 있는 방식이 되도록 하고 싶었다”면서 “건축이 한 예술가가 발견하고 열망한 회화의 세계로 초대하는 하나의 상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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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서용선. 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제공
화가 서용선.
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제공
다시 건물을 본다. 정면에서 볼 때 건물은 마치 평면에 그린 정육면체처럼 지각된다. 정면은 19m×19m의 정사각형이 확실하지만 정육면체는 아니다. 건물 7m 두께의 건물은 거대한 박스를 밑에서 올려다보면서 캔버스에 그려 놓은 것 같다. 그러니 메타박스는 평면적 입체와 입체적 평면 사이에 존재하는 셈이다.

정면에서 보면 높이 2.2m 규격의 가늘고 긴 거푸집이 만들어 내는 격자패턴은 정직하게 기하학적 규칙을 이루고 있다. 거푸집 3칸이 한 층이다. 가운데 2개 층의 중앙에는 격자창 루버(빛을 걸러 주는 장치)를 설치했다. 두께가 없어 보이는 격자창은 CRC(시멘트 보드)를 거푸집과 같은 크기로 잘라 금속과 연결해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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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로 긴 사각형 건물의 내부는 전시에서 다양한 동선과 공간 구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진 신경섭 작가
좌우로 긴 사각형 건물의 내부는 전시에서 다양한 동선과 공간 구조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사진 신경섭 작가
평면은 좌우로 긴 사각형이다. 내부 좌측에는 엘리베이터, 우측에는 직통 계단을 설치했다. 기울어진 기단부를 이루는 1층은 홍수 침수 레벨이라 진입구와 동선으로 사용된다. 전시 공간인 2층은 루버가 있는 3층 일부까지 천장이 트여 있고 나머지 3층 공간과 4층은 출판사가 사용한다. 사무실 옥상은 외부 전시와 주변 풍경을 만나는 장소가 된다. 좌우로 분리된 수직 동선과 각 층의 수평 동선은 전시에서 다양한 동선과 공간구조를 만들 수 있도록 했다. 건물은 북서향으로 뒤쪽(남쪽)으로 난 창문들을 통해 충분하게 채광이 된다. 뒤편에 규칙적으로 뚫린 사각형 창들은 전시가 열릴 때는 작품 이미지로 대체된다.

우측 직통 계단을 따라 수직으로 가늘게 절개된 창은 조명이 들어오면 기다란 빛의 선이 서 있는 것 같다. 이 창은 정면과 측면을 분리해 파사드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계단실로 빛을 산란시켜 전시 공간으로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정면에서 본 정육면체는 단순하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그 이미지는 이내 깨진다. 각이 잡혀 딱딱하며 뭔가 낯설고 거대한 형태는 암적색과 결합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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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박스를 설계한 건축가 정의엽. 배경은 서용선 작가의 작품 ‘봉천동, 사당동’(200×200㎝, 캔버스에 유화, 1995)  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제공
메타박스를 설계한 건축가 정의엽. 배경은 서용선 작가의 작품 ‘봉천동, 사당동’(200×200㎝, 캔버스에 유화, 1995)
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제공
정 소장은 “건물이 섰을 때 주변의 산에서 초록을 볼 수 있고, 노란색은 땅에서, 파란색은 하늘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자주 보이지 않는 붉은색 덩어리가 작가 특유의 감각을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판단했다”면서 “다만 익숙한 벽돌의 붉은색이 아니라 거대하고 거칠고 원초적인 방식으로 나타나는 것이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거친 암적색 외피는 화가가 직접 조색한 반투명의 콘크리트용 스테인을 여러 번 중첩해 바른 것이다. “화가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2차원적 3차원의 이미지가 됐으면 해서 화가에게 직접 조색을 요청했다”고 정 소장은 말한다.

“서 작가의 작품에는 원색이 많이 등장하는데 특히 붉은색은 아주 중요한 상징성을 갖습니다. 인물의 눈에서부터 얼굴과 신체, 윤곽이나 격자 모양 선에 자주 나타납니다. 때로는 대상을 여백과 분리하기도 하고 연결하기도 하는 색으로 쓰입니다. 작가의 작품에서 붉은색은 사실적이기도 하면서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동시에 심리적인 색입니다.”

그러고 보니 낯설면서도 강렬한 서용선의 작품이 공간에 서 있는 것 같다. 정 소장은 “우리가 익히 알던 건축물이나 물질, 색과 빛에 대한 지각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메타박스는 새로운 지각과 이미지에 대한 탐구를 유도하는 서용선의 작품 속으로 떠나는 또 다른 여행으로의 초대이다.

함혜리 건축 칼럼니스트
2023-03-13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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