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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판자촌, 가난은 더 가난해졌다

사라진 판자촌, 가난은 더 가난해졌다

손원천 기자
손원천 기자
입력 2022-10-27 20:18
업데이트 2022-10-2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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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이 사는 집/김수현 지음/오월의 봄/332쪽/1만 8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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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도시 인구의 4분의1은 판자촌에서 산다고 한다. 숫자로 따지면 10억명이 넘는다. 유엔에 따르면 2035년이 되면 이 숫자는 두 배에 이를 전망이다. 한국은 ‘다행스럽게도’ 유엔 국가별 통계에서 빠졌을 정도로 판자촌이 없는 나라다. 그렇다고 가난이 없는 건 아니다. 형태를 달리했을 뿐이다.

‘가난이 사는 집’은 한국 도시 주거 형태의 큰 축을 담당했던 판자촌 형성과 소멸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1980년대 초 서울 시민 10% 이상이 거주하던 판자촌은 10년 만에 2~3%가 사는 곳으로 줄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는 줄잡아 70만명 이상이 판자촌을 떠나야 했다. 제주도 전체 인구(올해 8월 기준)보다 많은 이들이 대이주에 나섰던 것이다. 이들은 영구임대주택, 반지하방, 쪽방 등으로 스며들었다. 이런 연쇄 이동은 임대료 인상이란 폭탄을 불러왔다. 결국 재개발은 가난에 대한 착시현상만 가져왔을 뿐 가난한 이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 사업에 지나지 않았단 말이다.

한국 판자촌은 다른 나라와 많이 달랐다. ‘모두가 희망을 갖고 살던 곳’이었다. 판자촌은 직업소개소였고 직업훈련원이었으며, 협동조합이자 어린이집이었다. 그런 공간을 밀어버린다고 가난의 본질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지만 최대한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는 개발 정책을 세우고, 개발이익은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공동체의 회복이다. 판자촌이 사라지면 가난은 영구임대주택 같은 엉뚱한 곳으로 집결한다. 두꺼운 벽 너머에서 일가족이 가난으로 스러져도, 아동학대가 빚어져도 알아채지 못하는 비극이 반복되게 둬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더불어 살기다.

저자는 “지금 한국 사회가 누리고 있는 번영의 상당 부분은 판자촌과 그곳에 살던 분들에게 빚지고 있다”고 했다. 나만 잘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웃도 잘살아야 내가 더 안전하고 편안해질 수 있다. 싫건 좋건 모두 함께 가야 한다는 말이다.

 
손원천 기자
2022-10-28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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