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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초 졸업생 ‘김상사’를 찾습니다”…월남 간 금마초 동창들이 말하는 ‘진짜 전쟁’

“금마초 졸업생 ‘김상사’를 찾습니다”…월남 간 금마초 동창들이 말하는 ‘진짜 전쟁’

곽소영 기자
곽소영 기자
입력 2022-10-02 17:44
업데이트 2022-10-03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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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미화 평화활동가·양정석 참전군인,
동창생 찾아 월남전 얘기 듣는 연구 진행
참전 군인 개인의 삶으로 전쟁에 접근
“힘겨워도 말해야” 평화 활동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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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연구를 진행 중인 평화활동가 석미화(뒷줄 왼쪽 세 번째)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앞줄 왼쪽)씨가 지난달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공동으로 연구하고 활동하는 청소년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석미화씨 제공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연구를 진행 중인 평화활동가 석미화(뒷줄 왼쪽 세 번째)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앞줄 왼쪽)씨가 지난달 서울 용산구 ‘서울시공익활동공간 삼각지’에서 공동으로 연구하고 활동하는 청소년들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석미화씨 제공
시장, 감자밭, 방앗간 등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을 찾아다니는 연구자들이 있다. 올해 한·베트남 수교 30주년을 맞아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구술 연구를 진행 중인 평화활동가 석미화(48)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75)씨가 그 주인공이다.

10년간 월남전 진상규명 활동을 하던 석씨는 월남전을 참전 군인 개인의 삶을 통해 바라보고자 했다.

석씨는 2일 “지금까지 월남전은 국가적 기억으로만 해석될 뿐 참전 군인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의 관점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며 “참전 군인 개인의 기억을 듣고 사회적으로 확장해야 전쟁을 평화 교육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런 그에게 양씨가 자신이 졸업한 전북 익산 금마초등학교 동창생 중 월남전에 간 친구들 명단이라며 ‘노란 포스트잇’을 건넸다. 손바닥만 한 포스트잇에는 전화기 너머로 고향 친구들이 읊어준 참전 동창생 12명의 이름과 소속 부대, 계급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양씨는 1960년 2월 금마초를 졸업하고 1969년과 1971년 두 차례 월남전에 참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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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전 군인 양정석씨가 금마초등학교 동창생 중 월남전에 참전한 친구들의 명단을 작성한 포스트잇. 양정석씨 제공
참전 군인 양정석씨가 금마초등학교 동창생 중 월남전에 참전한 친구들의 명단을 작성한 포스트잇.
양정석씨 제공
양씨는 “그해 졸업한 남자 동창생 10명 중 1명꼴로 많은 친구들이 월남을 갔다는 사실에 놀랐고 전쟁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석씨와 양씨는 인근 대안학교 청소년들과 연구팀을 꾸리고 지난 6월부터 익산 금마면 일대에서 이들을 만나 참전을 하게 된 배경과 전쟁 이후의 삶 등 전쟁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듣기 시작했다.

방앗간에서 만나 얘기를 듣기로 했다가 “마음이 바뀌었다”며 바람을 맞거나 “뭐 좋은 일이라고 얘기를 하냐”며 거절을 당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평생 월남전 경험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는데 이번엔 이야기하고 싶다”며 마음을 연 동창생 덕분에 연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지금까지 만난 5명의 참전 동창생들은 저마다 다른 5개의 전쟁을 지니고 있었다.

청룡부대에서 전투병으로 복무했던 김모(76)씨는 지금도 부대의 단체 사진을 보면 폭탄 사고가 일어난 날 누가 전사했는지 손으로 짚는다. 파편이 전방향에 연쇄적으로 터지는 ‘크레모아’(KM-18A1·클레이모어) 폭탄이 훈련 도중 갑작스럽게 터진 사고였다. 김씨는 그날 훈련장을 돌며 흩어진 시신의 살점을 주웠다고 했다.

백마부대에 있었던 임모(77)씨는 월남전 참전 후 사진관을 운영하다 9년 전 뇌출혈과 고혈압으로 갑작스럽게 쓰러졌다고 했다. 고엽제 후유증이었다. 전쟁이 40년 만에 다시 임씨의 삶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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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활동가 석미화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씨가 지난달 전북 익산 금마면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금마초 동창생을 찾아 구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석미화씨 제공
평화활동가 석미화씨와 참전 군인 양정석씨가 지난달 전북 익산 금마면에서 월남전에 참전한 금마초 동창생을 찾아 구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석미화씨 제공
양씨도 월남전 당시 ‘아버지’를 부르며 울부짖던 현지 아이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전에 맴돈다고 했다. 실수로 작전 구역에 들어왔다가 사망한 한 베트남인의 집에서 새어나오던 울음소리였다. 부산항에서 배를 타고 월남전에 가는 꿈을 꾸다가 식은땀에 젖은 채 손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다 잠에서 깨어난 적도 있다.

양씨는 괴로운 기억이지만 “그래도 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양씨는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겪었던 참전 군인들이 계속 증언을 해야 지금 세대와 ‘전쟁은 미친 짓’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서 “힘의 논리로 일어나는 전쟁으로 결국 피해를 보는 건 약자와 자연, 후손이라는 걸 간절한 마음으로 털어놓고 싶다”고 말했다.
곽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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