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나는 국가와 결혼하지 않았다”…사랑도 파격 ‘고르비의 순애보’

“나는 국가와 결혼하지 않았다”…사랑도 파격 ‘고르비의 순애보’

백민경 기자
백민경 기자
입력 2022-09-08 18:02
업데이트 2022-09-10 09:08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비밀스러운 사생활’ 유명한 푸틴과 대조
부인 장례식서 오열…대소사 항상 논의
“죽는 그순간까지 하염없이 불렀다”회고

“그는 일보다 부인을 사랑했고, 국가보다 인권을 우선시했으며, 개인의 힘보다 평화로운 하늘을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맨앞 왼쪽)와 그의 아내 라이사(오른쪽)가 1989년 6월 14일 수요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시장을 거닐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소련 지도자로서는 전례가 없을만큼 눈에 띄게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결혼 생활을 했다. AP통신
미하일 고르바초프(맨앞 왼쪽)와 그의 아내 라이사(오른쪽)가 1989년 6월 14일 수요일 슈투트가르트 시내의 시장을 거닐며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그는 소련 지도자로서는 전례가 없을만큼 눈에 띄게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결혼 생활을 했다. AP통신
냉전을 종식한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91세의 나이로 지난달 눈을 감으며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라이사 곁에 묻힌 가운데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러시아 독립언론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고인을 회상하며 남긴 말이다.

AP통신은 “고르바초프의 결혼은 그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틀을 깨뜨렸다”며 소련 출신 지도자로서는 전례가 없을만큼 눈에 띄게 사랑이 넘치는 결혼생활을 보냈던 고인의 순애보를 최근 집중 조명했다.

● “소련 출신 지도자로서 전례없이 사랑넘치는 결혼생활”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1999년 라이사 여사의 장례식에서 “두 사람은 진정한 한 쌍이었고, 그녀는 항상 그의 편에 있었다. 그가 성취한 것의 대부분은 부인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그 옆에서 당시 부인을 잃은 고르바초프가 오열했다.

AP통신은 가족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헌신적인 사랑과 공개적인 애착은 현재 베일에 쌓인 러시아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사생활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모스크바 대학에서 만났다. 라이사 여사는 직설적인 말투, 세련된 매너, 패셔너블한 옷차림으로 눈길을 끌었다고 한다. 라이사는 항시 그의 여행에 동행했으며 정책과 정치에 대해 남편과 함께 논의했다.

● 부인 사망 후 20년 넘게 혼자…책, 노래 내며 추억 회상
AP통신은 ‘냉전체제를 종식하고 동구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평가와 함께 소련의 해체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동구권을 서방에 넘겨준 ‘배신자’라는 혹평을 동시에 받는 남편 고르바초프의 발자취와 함께 라이사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와 두드러진 역할이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라이사 여사가 백혈병으로 생사를 오갈 때 부부의 사랑은 동정의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라이사 사망 후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르바초프는 라이사의 기억을 생생하게 간직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라이사를 위한 노래를 발매해 유명 음악가와 함께 부르기도 했고 ‘선택-미하일 고르바초프 최후의 자서전’을 출판해 라이사와의 추억을 담기도 했다.

그는 자서전에서 “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인을 살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도저히 부인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나는 부인의 침대 머리맡에 붙어 앉아 하염없이 부인을 불러댔다”며 절절한 부인에 대한 마음을 드러냈다. 또 그는 “나는 러시아나 소련과 결혼하지 않았다. 나는 부인과 결혼했다”고도 적었다.
백민경 기자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