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식물세밀화가
3년 전 한 주간지로부터 나팔꽃에 관한 인터뷰 요청을 받았다. 도쿄올림픽을 앞둔 때였는데, 도쿄올림픽위원회에서 더위 방지 대책으로 경기장에 나팔꽃 화분을 두는 캠페인을 벌였다고 한다. 내게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18세기 후반 일본 원예의 주류는 정원에서 분화로 변화한다. 이에 색과 형태가 독특한 식물 품종이 개발되고, 나팔꽃 역시 고액의 투기 대상으로까지 진화했다.
실제로 나팔꽃은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는 공해 측정용으로 나팔꽃을 활용했다. 이들이 대기오염물질에 민감하기 때문에 오염물질이 방출되는 곳에 놓아두고 공해도에 따른 생장 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물론 도시 열섬현상을 저감하는 효과도 있다. 건물 외벽, 베란다 등에 나팔꽃, 여주, 수세미와 같은 덩굴식물을 심으면 때에 따라 기온이 5도 이상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도쿄올림픽위는 이러한 근거에 따라 캠페인을 벌였을 것이다.
물론 일본의 나팔꽃 사랑이 유별난 것은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학생들이 여름방학 숙제로 나팔꽃을 씨앗부터 키워 관찰일지를 작성한다고 한다. 일본 사람들이 생애 처음 재배하는 식물이 나팔꽃인 셈이다.
하필 나팔꽃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들이 유전학 연구에 활용되는 이유와 같다. 생장 속도가 빠르며 교잡이 잘 생기고 변화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의 기록 전시에서도 나팔꽃과 관련된 것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흔히 네덜란드에 튤립 붐이 있다면 일본에는 나팔꽃 붐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나팔꽃은 일본에서 더이상의 발전이 불가능할 만큼 모든 걸 이뤘기 때문이다. 사실 나팔꽃이 일본의 자생식물은 아니다. 1200여년 전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뒤 800여년간은 야생의 원종 모습 그대로 존재한 기록이 있다. 그러나 에도시대(1603~1867) 이후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급성장하면서 나팔꽃은 유례없는 유행 흐름을 탄다.
고구마와 나팔꽃은 같은 메꽃과다. 친척 간이라 꽃이 닮았다. 그림은 고구마의 꽃.
물론 화분에서 재배할 수 있는 식물은 한계가 있다. 많은 토양을 필요로 하지 않고 수고가 적으며 환경에 예민하지 않은 식물. 무엇보다 에도시대에는 다른 나라와의 교류를 금했기 때문에 이미 일본에 있던 식물을 화분에 심어야 했고, 그렇게 선택된 식물이 나팔꽃이었던 것이다.
나팔꽃은 정원이 아닌 화분에서 비로소 발달했다. 첫 화분에는 야생에 있던 원종이 심어졌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다양한 꽃잎 색으로, 다음은 가느다란 꽃잎이나 겹꽃처럼 여러 형태로 육성됐다. 에도시대에 육성된 나팔꽃만 해도 무려 1000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며 나팔꽃의 인기는 사그라들고, 유행 흔적만 남은 지금의 형태에 이르게 된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과거 일본에서 유행한 분화 형태의 나팔꽃이 화훼시장에서 판매된다.
나팔꽃의 역사는 도시에 온 수많은 식물이 겪는 역사이기도 하다. 겨울 화단을 빛나게 해 주는 팬지, 대표 화훼식물인 장미, 네덜란드의 튤립 모두 야생의 모습에서 변형돼 숲에서 들로, 들에서 정원으로, 정원에서 화단과 화분으로 와 갇혔다.
화훼식물들이 겪은 이 역동적인 역사를 떠올리면 나팔꽃의 자유로운 덩굴줄기마저 무척 꼿꼿해 보인다.
2022-07-07 2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