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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범 지목한 흑인 40년 만에 “무죄”, 유명 작가 여드레 뒤 사과

강간범 지목한 흑인 40년 만에 “무죄”, 유명 작가 여드레 뒤 사과

임병선 기자
입력 2021-12-01 11:11
업데이트 2021-12-01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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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81년 뉴욕의 한 공원에서 성폭행을 당한 일을 회고록 ‘러키’에 담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앨리스 시볼드가 지난 2007년 6월 뉴욕에서 열린 ‘북엑스포 아메리카’ 행사 도중 연설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했던 흑인 남성이 지난 22일 뉴욕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30일에야 사과했다. AP 자료사진
지난 1981년 뉴욕의 한 공원에서 성폭행을 당한 일을 회고록 ‘러키’에 담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앨리스 시볼드가 지난 2007년 6월 뉴욕에서 열린 ‘북엑스포 아메리카’ 행사 도중 연설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했던 흑인 남성이 지난 22일 뉴욕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30일에야 사과했다.
AP 자료사진
미국 작가 앨리스 시볼드(58)는 뉴욕 시라큐스대학 1학년이던 1981년에 공원에서 성폭행을 당했던 일과 그 뒤 재판 과정을 1999년 회고록 ‘러키’에 담아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책은 100만부 넘게 팔렸다. 그런데 자신이 가해자로 지목한 흑인 남성이 사건 발생 40년 만에 법원으로부터 무죄 평결을 받았는데도 여드레째 사과를 하지 않다가 지난 30일(이하 현지시간)에야 뒤늦게 사과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출한 피터 잭슨이 메가폰을 잡아 아카데미상 후보에도 오른 ‘러블리 본즈’의 원작자이기도 한 시볼드는 성명을 통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느라” 여드레를 흘려보냈다고 설명했다. “날 강간한 사람을 결코 알 수 없게 됐다는 점, 날 강간한 사람이나 이런 부류들이 또 다른 여성들을 강간하고 있을지 모르며, 앤서니 브로드워터(61)처럼 교도소에서 복역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 때문에 난 계속 힘겨울 것이다.”

시볼드는 이어 “당신의 삶을 공정하지 못하게 빼앗은 사실관계의 대부분이 잘못돼 유감이다. 어떤 사과로도 당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고 밝혔다.

그녀는 회고록에다 캠퍼스에서 우연히 마주친 흑인 남성을 용의자로 지목한 과정과 그 뒤 재판 과정을 상세히 소개했다. 그녀가 용의자로 지목한 브로드워터는 16년 형기를 마친 뒤 시볼드의 회고록이 출간된 해에 풀려났지만 성폭행범이란 낙인 때문에 변변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했다.

그런데 브로드워터는 지난달 22일 뉴욕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는 해병대를 갓 전역한 대학생이었다. 그는 강간 사건으로부터 5개월이 지난 시점에 우연히 학교 캠퍼스에서 시볼드와 마주쳤는데 “우리 전에 어디서 본 적이 없나요?”라고 말을 건넨 것이 화근이 됐다.

시볼드는 회고록에 “그는 웃으며 다가와 말을 건넸다”며 “그의 얼굴은 터널 안에서 나를 범했던 그 얼굴이었다”고 적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의자들을 무작위로 줄지었을 때는 정작 엉뚱한 사람을 가해자라고 지목했다.

그러나 재판에서는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을 증거로 채택해 브로드워터에게 징역 16년형을 선고했다.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현미경으로 분석해 용의자의 체모와 비슷한지 판정한 결과를 증거로 인정했다.
앨리스 시볼드에게 성폭행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16년이나 해야 했던 앤서니 브로드워터(가운데)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감정이 복받친 듯 울먹이고 있다. AP 자료사진
앨리스 시볼드에게 성폭행범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16년이나 해야 했던 앤서니 브로드워터(가운데)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뉴욕주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선고를 받은 뒤 감정이 복받친 듯 울먹이고 있다.
AP 자료사진
그런데 미국 법무부는 2015년에 이 방법에 문제가 있어 사용하면 안된다고 인정했다. 일간 워싱턴 포스트(WP)에 따르면 체모 분석으로 유죄가 인정된 뒤 나중에 DNA 검사로 무죄로 뒤집힌 사례가 300건을 넘겼다.

회고록 ‘러키’가 영화 제작에 들어갔을 때 감독으로 참여했던 티머시 무치안테가 재판 대목을 읽다가 이상하다고 느껴 영화 제작을 중단했다. 그는 사재를 털어 경찰 출신 사립탐정을 고용해 브로드워터의 유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증거들을 재조사했다. 그는 증거들 모두가 과학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법원에 재심을 요청했다.

뉴욕주 지방검사도 제출된 증거들을 검토한 뒤 브로드워터의 무죄를 확신했고 브로드워터는 40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사는 “이 재판은 처음부터 없었어야 했다”며 “범인이 모르는 사람이고 인종도 다르면 범인 인상에 대한 피해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무죄 선고 직후 현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며 “시볼드의 아픔에 공감하지만 그는 분명히 틀렸다. 내게 사과하기만을 바란다”고 털어놓았던 브로드워터는 변호인을 통해 “시볼드가 사과해 안도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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