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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 여왕의 귀환… 세계의 높은 신장, 심장으로 넘는다

농구 여왕의 귀환… 세계의 높은 신장, 심장으로 넘는다

최병규 기자
입력 2021-09-07 17:22
업데이트 2021-09-08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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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라운지] 원조 ‘바스켓 퀸’ 정선민 한국여자농구 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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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WKBL 제공
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WKBL 제공
“너(농구)로 인해 행복했다.” 2012년 4월의 마지막 날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사옥. 정선민(47)은 30년 넘게 함께했던 농구에 작별을 고했다. 당시 그의 은퇴 기자회견은 여자농구 선수로는 처음이었다. 선수 인생을 공식적으로 마감한 정선민은 “처음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면서 한 시대를 풍미한 데 대한 자부심을 내보이면서도 ‘너로 인해 행복했다’는, 농구에 보내는 영상편지의 마지막 대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뿌리고 말았다. 그로부터 9년 4개월의 시간이 흐른 뒤인 지난 8월 27일. 대한민국농구협회는 정선민을 한국여자농구 대표팀을 이끌 새로운 사령탑에 선임했다. 아무에게나 함부로 붙일 수 없었던 이름, ‘바스켓 퀸’의 화려한 귀환이었다.

지난 2일 경기 성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선민 감독은 한 달 전 끝난 도쿄올림픽 얘기부터 꺼내 들었다. 그는 “이번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은 아시아 여자농구가 어떻게 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잘 보여 줬다”면서 “그걸 우리가 받아들여서 스스로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제가 가진 목표”라고 강조했다. 일본은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메달을 따냈다. 그것도 은메달이다.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아시아컵에서 한국, 중국과 나란히 4연패(2013~2019년) 기록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본은 늘 만족하지 못했다. 중국이 84년 LA올림픽 동메달과 92년 바르셀로나 대회 은메달을, 한국이 84년 은메달을 따냈지만 일본에는 올림픽 메달이 한 개도 없었다. 그런데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는 역대 세 번째로 올림픽 결승 무대에 올랐다. 비록 세계 최강 미국에 75-90, 15점 차로 패해 올림픽 9연패를 헌납하긴 했지만 일본은 분명히 금메달 이상의 결과를 수확했다.

정 감독은 “일본 올림픽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도쿄 본선에 오른 12개 팀 중 코스타리카에 이어 두 번째로 작았다”면서 “흔히 대회 결과가 좋지 않으면 ‘신장의 열세’를 많이 거론한다. 그렇다면 평균 176㎝의 작은 키로 은메달을 사냥한 일본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신장의 열세를 ‘심장’으로 극복한 것은 아니었을까라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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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감독이 신한은행 코치 시절이던 2019년 1월 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올스타전에 앞서 열린 이벤트 경기 ‘역대 올스타 3-3 매치’에서 패스할 곳을 찾는 모습. WKBL 제공
정 감독이 신한은행 코치 시절이던 2019년 1월 6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올스타전에 앞서 열린 이벤트 경기 ‘역대 올스타 3-3 매치’에서 패스할 곳을 찾는 모습.
WKBL 제공
정 감독은 한국여자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레전드다. 그는 WKBL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7차례, 챔프전 MVP에 1차례 선정됐고 ‘베스트5’에는 14번이나 올랐다. 통산 8140점(경기당 19.6점)을 올려 당시 국내 선수로는 득점 부문에서 독보적 1위를 차지했다. 3142리바운드(7.57개) 1777어시스트(4.28개) 771스틸 등의 기록도 눈부시다.

2003년 국내 여자 선수로는 처음으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진출해 시애틀 스톰의 유니폼을 입기도 했다.

정 감독은 “은퇴할 때 점수를 매겨 보니 제 농구 인생은 100점 만점에 120점이었다. 우승반지 한 번 끼어 보기 힘든 선수도 수두룩인데 모든 선수에게는 꿈이고 희망인 그걸 9번이나 경험했다. 참으로 영광스러웠다”고 선수 생활을 떠올렸다.

정 감독은 한국 여자농구의 중흥기를 이끈 인물이다. 동료인 전주원,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2000시드니올림픽 4강 신화를 일궈 냈고 2007년 FIBA 아시아컵 우승, 2008 베이징올림픽·2010 세계선수권 8강 등을 이끌었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KEB하나은행(현 하나원큐)과 신한은행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쌓으며 ‘인생의 포스트 시즌’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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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WKBL 제공
정선민 여자농구대표팀 신임 감독이 코치 시절 선수들에게 지시하고 있다.
WKBL 제공
그는 “원조 ‘바스켓 퀸’으로 불리면서도 부상과 수술 때문에 시즌을 완벽히 마감하지 못한 적도 여러 차례였다. 실력과 결과보다는 건강하게 마쳤더라면 더 좋았을 것을…”이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두 살 많은 전주원 언니가 40세에 은퇴했고 제가 농구공을 놓은 게 38살 때였다. 몸서리쳐지도록 부상에 시달렸던 덕분에 은퇴할 때 미련은 요만큼도 없었다”고 깔깔 웃었다.

정 감독은 남자 고교 팀을 맡은 첫 여성 지도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국가대표 막내 코치 시절인 2014년 협회 중고연맹 전무를 지내던 서울 인헌고 교사분의 요청으로 남자 고등학생을 가르쳤다.

그는 “당시 아이들은 농구 실력이 안 되는 건 물론이고 공부까지 병행해야 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늘 꼴찌였다”면서 “하지만 너무 사랑스런 아이들이었다. 덩치는 컸지만 내면은 정말 아이들이었다. 창단 때 가르쳤던 아이가 지금은 상명대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코치로 있다”고 소개했다.

정 감독의 국가대표 감독 지원은 지난해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였다. 그는 “지도자의 길을 올곧게 가려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할 자리다. 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자리이기도 하다”면서 “흔히 대표팀 감독을 ‘독이 든 성배’라고들 하지 않나. 단 2명이 지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제 야망만큼이나 부담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무모함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첫 도전 무대는 오는 27일 요르단 암만에서 개막하는 FIBA 여자 아시아컵이다. 일본과 뉴질랜드, 인도와 조별리그 A조에 묶인 한국은 2007년 대회(인천)에 이어 통산 13번째 우승에 도전한다.

정 감독은 “훈련 기간은 불과 20일 남짓이다. 전술·전략에 골몰하기보다는 도쿄올림픽 때의 좋았던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데 훈련의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2021-09-08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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