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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인터뷰한 女앵커도 탈출…“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아”

탈레반 인터뷰한 女앵커도 탈출…“여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아”

신진호 기자
신진호 기자
입력 2021-09-02 14:03
업데이트 2021-09-0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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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과 마주 앉아 인터뷰한 女앵커, 카타르로 탈출
“인터뷰 당시 내 몸 제대로 가렸는지 확인하며 긴장”
‘노벨상’ 말랄라 도움으로 카타르행 명단 올라 탈출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의 미디어 담당 간부가 유력 뉴스채널인 톨로뉴스 스튜디오를 찾아와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8.17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의 미디어 담당 간부가 유력 뉴스채널인 톨로뉴스 스튜디오를 찾아와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8.17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함락 직후 탈레반 간부가 TV 뉴스채널에 출연했을 당시 인터뷰를 진행했던 여성 앵커도 해외로 탈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2일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은 아프간 유력 뉴스채널 톨로뉴스 앵커였던 베헤슈타 아르간드(23)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女앵커와 마주 앉은 탈레반, 변화 기대했지만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의 미디어 담당 간부가 유력 뉴스채널인 톨로뉴스 스튜디오를 찾아와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8.17
8월 17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의 미디어 담당 간부가 유력 뉴스채널인 톨로뉴스 스튜디오를 찾아와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1.8.17
탈레반은 지난달 15일 카불 무혈입성 이틀 뒤 탈레반의 미디어 담당 간부 몰로이 압둘하크 헤마드를 톨로뉴스 스튜디오로 보냈다.

과거 집권 기간(1996~2001년) 동안 여성의 취업은커녕 교육도 금지하는 등 극도의 여성 탄압을 일삼던 탈레반이 여성 앵커와 마주 앉아 인터뷰에 응하는 장면은 전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이때 인터뷰를 진행한 여성 앵커가 아르간드였다.

탈레반이 카불을 장악했을 때 주요 방송사 등 언론사 역시 접수했기 때문에 당시 인터뷰는 탈레반의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톨로뉴스를 소유한 모비그룹 대표 사드 모흐세니 역시 트위터를 통해 이를 전하며 “톨로뉴스와 탈레반이 역사를 다시 썼다. 20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일”이라며 자축하기도 했다.

세계 언론은 탈레반의 유화적인 제스처가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했다.

아르간드 역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난달 24일 카타르 도하로 탈출했다.

“탈레반, 히잡 강요하고 女앵커들 업무 막아”
아르간드의 탈출에는 파키스탄의 여성운동가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말랄라는 2012년 학교를 다녀오는 길에 탈레반 대원의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가 회복했고, 이러한 살해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여성과 어린이의 교육권에 앞장선 공로로 2014년 역대 최연소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인물이다.

아르간드는 도하에서 기자들과 만나 “탈레반은 톨로뉴스 경영진에게 여성 직원은 모두 히잡을 쓰게 하고, 여성 앵커들은 일하지 못하도록 지시했다”고 폭로했다.

또 “탈레반은 언론사에 그들의 인수와 통치에 대한 보도를 중단하라고 했다”고도 전했다. 탈레반 입성 일주일 만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아르간드는 “간단한 질문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언론인의 역할을 하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르간드는 “탈레반이 언론의 자유를 주고, 여성들이 교육받고 일할 수 있게 하겠다고 했지만, 많은 동료가 탈출했다”며 “전에 인터뷰했던 말랄라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말랄라는 가족과 함께 카타르 피난민 명단에 내가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왔다”고 탈출 과정을 설명했다.

“아프간 여성을 위해 무엇이든 해달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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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카 입은 여성
부르카 입은 여성 미군이 완전 철수한 다음날 1일(현지시간) 부르카를 입은 아프간 여성들이 카불 와지르 아크바르 칸 병원 근처를 걷고 있다. AFP 연합뉴스 2021-09-01
그는 탈레반 간부를 인터뷰할 당시 머리카락과 몸을 제대로 가렸는지 살피며 혹시라도 탈레반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매우 긴장했다고 떠올렸다.

아르간드는 “탈레반이 방송국에 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자제력을 잃었다”면서 “머리카락을 확실히 가리고, 신체의 다른 부위가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한 뒤에 인터뷰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도하행 비행기에 앉아 있는 동안 ‘이제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되뇌었다”며 “조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가족의 반대에도 택한 직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았다”고 전했다.

아울러 아르간드는 전날 도하의 난민센터에서 외교관들과 만나 “국제사회에 말하고 싶다. 제발 아프간 여성을 위해 무엇이든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르간드는 “탈레반, 그들은 여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마음속에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또 “나 때문에 우리 가족은 탈레반의 위협을 받을 것”이라며 “이슬람은 우리에게 권리를 줬는데, 탈레반은 왜 권리를 빼앗는 것일까”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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