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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난민, 염전 보내라”… 비수 꽂는 혐오, 포용이 사라졌다

“아프간 난민, 염전 보내라”… 비수 꽂는 혐오, 포용이 사라졌다

이주원 기자
입력 2021-08-24 01:54
업데이트 2021-08-24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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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기지 수용 검토에 ‘反난민’ 확산

네티즌들 도 넘은 표현으로 반감 표출
‘유럽 이주민 범죄’ 예로 들며 불안 조장

아동 등 약자에겐 “가슴 아프다”면서도
예멘 난민 수용 때처럼 불안·불신 공존
선진국 지위 맞게 체계·인식 변화 필요
“탈레반 손에서 가족 구출해 주세요” 한국 거주 아프간 협력자의 호소
“탈레반 손에서 가족 구출해 주세요” 한국 거주 아프간 협력자의 호소 재한 아프가니스탄 협력자 가족들이 23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한국 정부를 돕다가 탈레반이 점령한 아프간에 고립된 가족의 한국 송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한국에 가족이 있는 모든 아프가니스탄 협력자들이 비행기를 타고 나올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신속한 조처를 해 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밝혔다.
뉴스1
“한국에 들어올 때 이슬람 율법책을 밟고 돼지고기를 먹는지 심사해야 한다.”

미국이 주한미군 등 해외 미군 기지에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한 난민 수용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반(反)난민 정서가 확산하고 있다. 시민들은 아프간 주민들의 목숨 건 탈출 행렬에 동정심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이들에게 혐오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이중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23일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네티즌들은 각종 혐오 표현으로 수용 반대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이들은 “난민을 받더라도 염전 노예로 보내야 한다”, “여성과 아이들만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0일 국내 거주 아프간인의 난민 인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힌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에는 “너희 집부터 100명 이상 데리고 살아라”는 등의 비난이 폭주했다.

●난민 수용 여론조사 반대 53% vs 찬성 33%

네티즌들은 유럽에서 벌어진 각종 이주민 범죄 사건을 종합해 반대 근거를 만드는 데도 열중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프랑스에서 중학교 교사가 이슬람 예언자 마호메트의 풍자만화를 학생들에게 보여 줬다가 체첸계 러시아 출신 이민자에게 목숨을 잃은 사건 등을 강조하며 한국도 난민을 수용한다면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아프간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필사적 탈출을 감행할 때 응원을 보내던 모습과는 상반된다. 네티즌들은 아프간 주민들이 카불 공항 철조망 담장으로 어린 아이들을 던지는 보도에는 ‘가슴 아프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막상 난민들은 한국에 절대 들어와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동이나 사회적 약자는 피해자라는 인식이 있어 ‘면책특권’을 부여해 동정심을 갖게 된다”며 “반면 아프간 정부군이 무기력하게 도망치는 모습이 노출되면서 반대 심리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근의 반난민 정서는 2018년 500여명의 예멘 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올 때의 반응과 흡사하다. 당시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가짜 난민 OUT’이란 피켓을 들고 집회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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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반난민 정서는 설문조사로도 어느 정도 확인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가 지난해 12월 한국리서치와 함께 성인남녀 1016명을 조사한 결과,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이 53%로 찬성(33%)보다 높았다. 반대 56%, 찬성 24%였던 2018년 조사보다는 긍정적인 답변이 소폭 상승했지만 여전히 반대가 과반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이 선진국에 걸맞은 난민 수용 체계와 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난민 인정률은 0.5%(5370건 중 28건)에 불과하다. 이주민센터 ‘친구’ 이제호 변호사는 “인정심사 과정에서 ‘박해의 위험’을 증명해야 하는데 도망쳐 나온 난민 입장에선 증거를 갖춰 오는 것이 어렵다”며 “관련 인력을 늘리는 등 정부가 미리 대응 체계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정부, 난민 보호 대책 마련하라”

시민단체도 정부 대책을 요구했다. 106개 한국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정부가 아프간 난민 보호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한 아프간 한국 협력자 가족 30여명도 이날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한국을 도운 아프간 협력자 가족들이 아프간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한국 정부가 신속히 조치해 주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촉구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2021-08-24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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