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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광고 엿보기] 경성의 호화 프랜차이즈 카페 ‘낙원장’/손성진 논설고문

[근대광고 엿보기] 경성의 호화 프랜차이즈 카페 ‘낙원장’/손성진 논설고문

손성진 기자
입력 2021-08-01 17:14
업데이트 2021-08-02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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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2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낙원장 개업 광고.
1936년 12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실린 낙원장 개업 광고.
현대적 의미의 카페는 1686년에 이탈리아에서 문을 열었다고 한다. 맥주 등 술도 팔았지만 주로 커피 등 음료를 마시는 사교 공간이었다. 지금의 수많은 커피 전문점들도 대체로 원형을 따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1930년대 경성(서울)에서 번성한 카페는 여성 종업원(여급)을 두고 위스키나 와인, 맥주를 판매한 유흥업소였다. 커피를 파는 곳은 끽다점, 다실로 불리며 구별됐다. 술집 형태의 카페는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다. 경성의 카페는 처음에 일본인들이 많이 살던 남촌(명동과 충무로 일대)에서 생겨났다가 점차 북촌(청계천의 북쪽 종로, 인사동 일대)에서 급속히 늘어났다.

룸 형태의 남촌 카페와 달리 북촌 카페는 주로 칸막이로 돼 있었다. 홀에는 재즈 음악이나 대중가요가 흘렀고 큰 카페에는 전속 악단도 있었다. 카페들에선 수십 명이나 되는 종업원들이 양장이나 기모노 차림에 짙은 화장을 하고 손님의 말동무가 돼 주었다. 1930년대 초 통계를 보면 경성의 카페 수는 74개, 종업원은 총 1000여명에 이르렀다. 카페에서는 육체적인 접촉, ‘에로 서비스’도 성행해 타락의 온상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손님과 종업원의 로맨스 또는 불륜이 심심찮게 있었고, 모던보이와 사랑에 빠진 종업원의 자살 사건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소수의 이름난 배우나 기생 출신, 인텔리 여성들도 카페에서 일했다.

북촌의 유명한 카페로는 종로의 엔젤, 평화, 왕관, 낙원회관, 목단, 희대지, 백령 등이 있었다. 남촌에서는 타이거, 릴리, 은좌, 바론, 적옥, 아리랑 등이 인기를 끌었다. 그중에서도 낙원회관은 카페의 프랜차이즈를 추구한 경성 최대 규모의 기업형 카페였다. 종로의 낙원회관은 본관이었고 낙원별관, 낙원본정(혼마치), 낙원장 등 지점을 거느렸다. 낙원 카페의 창업주는 나카노라는 일본인으로 부산과 만주로 사업 확장을 꿈꾸어 ‘카페왕’으로 불렸다고 한다. 나카노는 시설을 최고급으로 꾸미고 종업원도 엄격한 기준으로 뽑았다.

1936년 문을 연 ‘낙원장’ 광고를 보면 시설과 규모, 형태를 짐작할 수 있다. 나카노는 일본 도쿄 최고의 카페를 직접 둘러보고 개점했다고 한다. ‘37년식 스팀 장치’, ‘경성 제일을 자랑하는 염가의 식사’, ‘커피 한잔으로 미녀와 더불어 즐겁게 한다’, ‘50명의 미인이 절대적인 노팁(no tip)으로…’ 등의 광고 문구에서 낙원장의 시설과 영업 방식을 읽을 수 있다. 광고 속의 사진을 보면 그렇게 높지 않은 칸막이로 둘러싸인 접대 공간이 있고 시설이 화려해 보인다. 낙원장의 위치가 보신각 바로 뒤임을 알려 주는 지도도 광고에 첨부돼 있다.

손성진 논설고문 sonsj@seoul.co.kr
2021-08-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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