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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어떤 무죄로 본 ‘법의 실패’/안동환 탐사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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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7-23 01:47 데스크 시각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안동환 탐사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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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환 탐사기획부장

판사 출신의 A변호사에게 판결문을 보내 의견을 구했다. A변호사는 5분여 뒤 전화를 걸어 “피고인이 유명인이에요, 재벌가인가요?”라고 반문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신문사 부장이 주목할 판결이냐는 호기심이 묻어 있었다. “운수업 종사자인데 판결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내게 A변호사는 “교통사고 사망 건은 웬만하면 집행유예이거나 1년 금고형이 허다합니다. 피해자가 알아서 (사고를) 피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판사들에게 박혀 있어요”라고 했다.

2020년 12월 21일 오후 7시 40분 춘천시 근화동 사거리. 집으로 가던 20대 직장 여성이 횡단보도를 건너다 그랜드 스타렉스 차량에 치였다. 충격으로 27m 정도를 날아가 쓰러진 피해자는 40여분 뒤 중증 뇌손상으로 사망했다.

승합차 운전이 생계인 가해 운전자 장모(53)씨는 무면허였다. 그는 출동한 경찰관들 앞에서 인도 바닥을 손으로 치며 “재수 없다. 미치겠다”며 억울해했다. 장씨는 경찰이 사고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제시하기 전까지 “피해자가 무단 횡단했다”고 주장했다.

장씨는 마약 투약으로 8차례, 무면허 운전으로 세 차례 처벌받았다. 2017년 약물에 취해 무면허 운전한 사실이 적발돼 2년 6개월을 복역한 후 다시 무면허로 운전대를 잡았다. 마약 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인 장씨는 사고 엿새 전인 12월 15일 필로폰 0.05g을 투약했다고 자백했다. 모두 판결문에 기재된 장씨의 범죄 전력들이다.

경찰은 장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약물에 의한 위험운전 치사 혐의 등 다수 범죄를 저지른 경합범으로 송치했지만, 검찰은 투약과 운전 시점의 1주일 시차를 이유로 위험운전치사 혐의를 단순교통사고특례법 위반 혐의로 바꿔 기소했다.

대법원 양형 기준에 따르면 단순 교통사고 사망은 가중 처벌해도 1~3년 금고형에 그친다. 음주나 약물 투여 운전이 의심되는 위험운전 사고는 가중 때 4~8년이다. 논란이 일자 검찰은 위험운전치사 혐의로 공소장을 바꿔 장씨를 법정에 세웠다.

춘천지법 형사2단독 재판부는 지난 7일 장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징역 12년과도 간극이 크다. 재판부는 코카인보다 3배나 중독성이 강한 필로폰 장기 투약으로 인한 신경계 손상이나 인지능력 저하 가능성을 배제했다. 8~24시간의 반감기를 들어 장씨가 사고 당시 정상적으로 차량 운행을 했다고 판단했다. 사고 직후 장씨의 어눌한 언행과 기면 증상은 투약 효과와 관련 없다고 봤다. 검경이 기소한 위험운전치사 혐의가 무죄 된 이유다.

사고 전후가 녹화된 영상엔 파란불이 켜진 걸 확인하고 건너는 피해자 모습이 찍혀 있다. 장씨는 전방 신호등이 적색으로 바뀐 상태에서 1차로를 평균 시속 69㎞로 사고 지점까지 질주했다. 판결문의 양형 계산법으로 합산한 그의 형량 총량은 5년 4개월. 재판부는 장씨의 반성 의사 표시와 유족 합의, 보험사가 지급한 배상금을 참작해 2년 4개월을 감경했다.

누구나 장씨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재판부는 상식보단 추상적인 법리 이론을 앞세웠다. 죄의 양태와 배치된 가벼운 양형 기준과 판사의 자의적 재량권이 빚은 법의 실패 사례가 아닐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사법 불신은 법의 공정함에 의문이 제기되는 판결이 많아질수록 팽배해진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라온 판결 기사에 한 경찰관의 익명 댓글이 달렸다. “현장 출동 경찰관들이 눈이 풀려 있는 운전자의 이상 행동들을 (법정에서) 증언했지만 인정 안 됐습니다. 책으로, 서류로 열심히 공부해 아름다운 판결을 내려 주셨네요. 고인만 불쌍합니다.”

안동환 탐사기획부장 ipsofacto@seoul.co.kr
2021-07-2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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