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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을 유혹하는 아스파라거스의 매력

[장준우의 푸드 오디세이] 봄을 유혹하는 아스파라거스의 매력

입력 2021-04-21 20:20
업데이트 2021-04-22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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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장준우 셰프 겸 칼럼니스트
들어도 쉽사리 공감이 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다. 부모님이 얘기해 주시던 그 시절 바나나가 그렇다. 한땐 비싸고 귀한 과일이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다지 와닿진 않는다. 요즘 제철을 맞은 아스파라거스를 보니 문득 바나나가 생각났다. 수년 전만 해도 아스파라거스는 꽤 비싸 마트에서 집을까 말까 고민하게 만드는 식재료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많은 국내 농가에서 아스파라거스를 생산하면서 비싼 수입산 대신 더 신선하고 저렴한 아스파라거스를 만나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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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고기 요리. 아스파라거스는 특유의 향과 식감으로 봄철 고기 요리의 부재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고기 요리. 아스파라거스는 특유의 향과 식감으로 봄철 고기 요리의 부재료로도 많이 사용된다.
국내에서 아스파라거스는 고기를 구울 때 곁들이거나 데쳐 먹는 외국 채소 정도로 인식하지만 서양에서는 두릅이나 달래, 냉이처럼 봄을 맨 먼저 알리는 전령사다. 이탈리아 북부나 프랑스 남부에선 봄이 오면 거의 모든 식당 메뉴에서 아스파라거스가 빠지지 않는다. 두꺼운 아스파라거스는 주요리에 곁들이는 부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주인공으로도 활용된다. 달걀과 버터, 레몬을 이용한 홀랜다이즈 소스를 끼얹은 아스파라거스 요리는 프렌치 요리의 클래식이다.

아스파라거스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른 채소와는 다른 흥미로운 지점이 보인다. 잎이나 과실이 아닌 줄기를 먹는 몇 안 되는 채소 중 하나인 동시에 전부가 줄기다. 지중해 연안과 유라시아 대륙이 원산지로 알려진 아스파라거스는 해안가 바위 등에서 야생으로 자라다 어느 시점부터 인간에 의해 본격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다. 폼페이 벽화나 1세기쯤 로마의 요리책 기록을 통해 고대부터 이미 아스파라거스를 먹어 왔다는 걸 짐작해 볼 따름이다.

아스파라거스는 4월 중순부터 제철을 맞는다. 환경에 까탈스럽지 않아 어디든지 잘 자라며 한번 심어 놓으면 죽순처럼 계속 순이 오르며 자라기 때문에 농가에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키울 수 있다. 쭉쭉 뻗어 나가는 생명력과 생김새 때문에 동양의 미신처럼 서양에서도 아스파라거스는 오랫동안 남성들에게 좋은 효능이 있는 작물로 인식돼 왔다. 온라인에서 아스파라거스를 검색하면 온통 영양학적 효능 이야기뿐이지만 애석하게도 남성들에게 유의미한 이점은 딱히 없음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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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랜다이즈소스와 치즈를 곁들인 구운 아스파라거스 요리. 제철인 봄에는 아스파라거스가 주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홀랜다이즈소스와 치즈를 곁들인 구운 아스파라거스 요리. 제철인 봄에는 아스파라거스가 주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스파라거스를 많이 먹으면 인체에 한 가지 영향을 미치는 건 사실이다. 바로 소변 냄새가 지독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적인 증거가 있다. 아스파라거스에 함유된 아스파라거스산이 우리 몸에 들어와 분해되면서 대사가 진행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성분이 스컹크의 지독한 방귀 냄새를 유발하는 메탄에티올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 아스파라거스 줄기 한두 개 정도 먹고는 느끼지 못하겠지만 불판 위 고기를 먹듯 마구 집어 먹었을 때 해당되는 이야기다.

아스파라거스는 초록색이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가끔 흰색이나 자주색도 찾아볼 수 있다. 흰 아스파라거스는 따로 품종이 있다기보다 햇빛을 의도적으로 쐬지 않고 키운 것이다. 오래전에는 녹색보다 흰 아스파라거스가 더 인기가 높았다. 인위적으로 흙을 덮어 주며 키우다 보니 손이 많이 가 훨씬 비싼 값에 팔렸다. 녹색 아스파라거스가 아삭하게 씹는 맛이 있다면 흰색은 껍질까지 부드러운 게 특징이다. 자주색 아스파라거스는 안토시아닌이 많이 함유돼 보랏빛으로 보일 뿐 영양학적으로나 맛에선 큰 차이가 없다.

아스파라거스는 수확되자마자 수분과 향을 잃어 간다. 갓 수확한 게 맛과 향이 가장 강하다는 뜻이다. 수확한 지 얼마나 지났을지 모를 수입산보다는 웬만해선 제철 맞은 국산 아스파라거스를 사는 게 낫다. 아직 진한 향을 간직한 수분을 품고 있는 아스파라거스는 어떻게 요리해도 맛이 좋다.

신선하고 질 좋은 아스파라거스를 구했다면 선택지는 세 가지다. 살짝 데쳐 먹을 것인가, 쪄서 먹을 것인가, 구워 먹을 것인가. 향과 맛을 온전히 즐기려면 데치는 것보다 찌는 걸 추천한다. 끓는 물에 데친다는 건 재료가 갖고 있는 일부 수용성 성분을 잃어버리는 걸 각오하는 것과 같다. 기왕 향 좋고 신선한 아스파라거스를 구했다면 찌는 게 손실을 가장 줄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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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파라거스를 올린 고기 요리.
아스파라거스를 올린 고기 요리.
하지만 가장 맛이 좋으냐는 또 다른 문제다. 버터에 아스파라거스를 구워 먹으면 그 자체로 메인 요리로 손색이 없다. 베이컨이나 와인 안주로 먹다 남은 초리소 조각을 넣고 구워도 좋다. 버터가 없다면 요리용 기름으로 구운 후 접시에 담아 질 좋은 엑스트라버진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소금, 후추만 살짝 쳐서 먹는 이탈리아식 방법도 적극 추천한다. 삶아서 초장에 찍어 먹기엔 아스파라거스가 가진 매력은 너무나도 매혹적이다.
2021-04-2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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