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 먹통 된 해안·육상 경계망
머구리 잠수복 입은 北남성 헤엄쳐 월남접경지 배수로 경계 강화에도 무사 통과
민통선 안에서 5㎞ 걸어도 제지 안 받아
軍, 몇 차례 포착하고도 아무 조치 안 해
검문소 CCTV 포착 뒤 뒷북 신병 확보
합참 “경계요원·해안감시 분명한 과오”
17일 합참에 따르면 해당 남성은 ‘머구리 잠수복’과 오리발을 착용하고 해상을 통해 일반전초(GOP) 이남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부근 해안으로 올라왔다. 머구리 잠수복은 몸에 밀착되는 슈트형 잠수복이 아닌, 어업잠수부(머구리)들이 입는 방수복을 뜻한다.
남성이 도착한 해안은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직선으로 3㎞가량 떨어진 곳이다. 북한의 경비 철책을 넘으려면 최소 MDL 북상 5㎞ 지점에서 출발해 약 10㎞를 수영해야 하는데, 당시 수온은 약 8도여서 수영하기 어렵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서욱 국방부 장관은 17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남성이 착용한) 잠수복은 방수복처럼 일체형으로 돼 있고 그 안에 솜동복을 입고 줄을 졸라매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며 “(남성이) 수영을 6시간 내외를 했다고 진술했는데 (조류나 남성 거주 지역을 고려하면) 수영으로 온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해안에 도착한 남성은 해안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했다. 합참과 지상작전사령부의 현장 조사 결과 배수로의 차단시설은 훼손돼 있었다. 앞서 지난해 7월 인천 강화도에서 20대 탈북민 남성이 철책 하단 배수로를 통과해 월북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군은 접경지역 배수로를 전반적으로 점검·개선키로 했으나 ‘배수로 월경’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남성이 해안으로 올라온 이후 16일 오전 1~2시쯤 군사장비에 몇 차례 포착됐으나 군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미상 인원이 철책 밖에서 포착되면 즉시 신병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남성은 아무런 제지 없이 철책을 통과해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7번 국도를 따라 도보로 남하했다. 군은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는 지역에서 미상 인원이 이동하는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군은 군사장비에 포착된 지 2~3시간 후인 오전 4시 20분에서야 고성 통일전망대에서 약 5㎞ 떨어진 민통선 제전검문소의 폐쇄회로(CC)TV를 통해 이 남성을 최초 식별했다. 이후 3시간 만에 검문소 인근 야지에서 신병을 확보했다. 해당 남성은 20대 민간인으로 귀순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경계태세에 ‘과오’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박정환 합참 작전본부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해안감시와 경계작전에 분명한 과오가 있었다”며 “이번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엄정한 조치를 통해 경계태세를 확립하겠다”고 말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21-02-18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