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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날고 싶었던 ‘천재 맹인 소년 작곡가’의 꿈, 끝내 스러지다 [강주리 기자의 K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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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0-12-04 11:43 강주리기자의 K파일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10일 장애예술인지원법 시행… 실태조사는 예산 없어 2년 더 기다려야

생후 3개월에 실명, 독학으로 9살 첫 작곡
80년대 초중생 시절 국제작곡대회 줄입상
맹학교 안마 수업 거부 후 거리로…된서리
지도자 못 찾고 생활고… 대중 관심 사라져
전위음악 작곡가 맹인 송율궁씨 현실 암울
40년 흘러도 장애예술인 지원 미미 여전
“장애예술인, 체계적 관리·조사·교육 미흡”
“체계적인 양성 계획·활동장 마련해야”
1983년 ‘천재 맹인소년 작곡가’로 불렸던 송율궁씨 11살 때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 1983년 ‘천재 맹인소년 작곡가’로 불렸던 송율궁씨 11살 때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1983년 맹학교 교실에서 반주 중인 11살 송율궁씨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 1983년 맹학교 교실에서 반주 중인 11살 송율궁씨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누군가는 기억할 것이다. 1980년대 언론이 대서특필했던 ‘천재 맹인소년 작곡가’ 송율궁(48)씨. 생후 3개월에 실명(1급 장애)했다. 맹인과 가난의 굴레 속에 음악 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독학으로 피아노와 작곡법을 터득해 9세에 처음 작곡을 했다.

맹인을 위한 수학 학습도구인 고무화판에 셀로판지를 대고 점자처럼 오선지를 그려 나갔다. 그는 모든 일상의 소리를 음악화하는 ‘전위음악’을 선보였다. 11세 때인 1983년 일본 도쿄국제작곡경연대회를 시작으로 프랑스 파리현대음악제 등 각종 음악대회를 휩쓸며 천재성을 입증했다. 미국의 유명 전위음악가 존 케이지는 “이 소년의 음악이 나보다 훨씬 우수하다”고 극찬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15살에 첫 작곡발표회를 갖는 그에게 성금(3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1987년 주간조선에 실린 송율궁씨 기사 일부. 송혜미자씨 제공

▲ 1987년 주간조선에 실린 송율궁씨 기사 일부. 송혜미자씨 제공

‘한국의 베토벤’ 꿈꾼 맹인 작곡가
무관심 속 병세 악화로 활동 중단


그러나 ‘한국의 베토벤’을 꿈꿨던 송씨는 맹학교 재학시절 안마 수업을 거부하고 뛰쳐 나오면서 된서리를 맞았다. 지도자를 제대로 만나지 못해 지하철에서 구걸하며 공연과 현대음악당 건립 비용 마련에 나섰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어렵게 세종문화회관 등에서 몇 차례 작곡발표회도 가졌지만 대중의 관심은 곧 멀어졌다.

이후 10년간 보이지 않던 그의 충격적 소식이 전해졌다. 평생 그를 뒷바라지한 어머니 송혜미자(76)씨는 최근 기자와 만나 아들이 많이 아프다며 “혼자서는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고 누워만 있다”고 울먹였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거동이 힘들어져 음악 활동을 못 한다고 했다. 천재라 불렸던 송씨는 여전한 빈곤 속에 현대음악 작곡가로서의 꿈을 접어야 할 위기에 놓였다.

3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송씨와 같은 시각장애인은 지난해 말 기준 25만 3055명이다. 이 가운데 시각장애 예술인이 얼마나 되는지는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1983년 맹인 작곡가 송율궁(가운데)씨가 당시 11살 때 일본 도쿄국제작곡경연대회 나가 15개국 300명을 제치고 ‘나는 바람을 잡아 타고서’로 우수상을 받을 때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 1983년 맹인 작곡가 송율궁(가운데)씨가 당시 11살 때 일본 도쿄국제작곡경연대회 나가 15개국 300명을 제치고 ‘나는 바람을 잡아 타고서’로 우수상을 받을 때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송율궁씨가 12살 때 작곡해 1984년 도쿄 국제작곡경연대회에서 문라이트상을 받은 ‘민선의 소리’ 악보. 송혜미자씨 제공

▲ 송율궁씨가 12살 때 작곡해 1984년 도쿄 국제작곡경연대회에서 문라이트상을 받은 ‘민선의 소리’ 악보. 송혜미자씨 제공

고무화판에 셀로판지로 점자처럼 오선지를 그려가고 있는 송율궁씨의 손. 송혜미자씨 제공

▲ 고무화판에 셀로판지로 점자처럼 오선지를 그려가고 있는 송율궁씨의 손. 송혜미자씨 제공

“장애예술인 현황조차 파악 안돼”
“여전히 개인 재력 의존 현실”


김예지 “장애인, 비장애인보다
작품발표 기회 적고·정보 접근도 어려워”

유경민 한국장애인개발원 연구기획팀장은 “장애예술인에 대한 실태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시각장애 예술인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라면서 “장애인예술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일부 이뤄지고 있지만 개인 집안 재력이 아닌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장애예술인 양성 관리나 지원은 여전히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시각장애 피아니스트인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의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창작준비금 지원사업에서 장애예술인이 지원받은 비율은 올해 3.5%에 그쳤다. 예술인 생활안정자금은 올해 1.6%, 예술인 파견지원사업은 1%도 못 미쳐 더 열악했다.

김 의원은 “예술활동증명을 받기 위한 기준 중에 하나가 공개발표 실적인데, 장애예술인은 비장애예술인에 비해 작품(공연)발표 기회도 부족한 실정”이라면서 “혜택이 있어도 어디에서 정보를 얻어서 어떻게 신청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상당히 많고, 정보를 얻어 신청을 하려고 해도 그 절차 과정에 접근이 어려워 포기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시각장애인은 한빛맹학교나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음악 교육을 부분적으로 받을 수 있지만 직업적 예술인으로서 성장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김예지 의원. 연합뉴스

▲ 김예지 의원. 연합뉴스

 1995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프랑스 파리현대음악제 입상곡인 8분짜리 피아노곡 ‘지구의 소리’를 치는 송율궁씨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  1995년 서울 호암아트홀에서 프랑스 파리현대음악제 입상곡인 8분짜리 피아노곡 ‘지구의 소리’를 치는 송율궁씨 모습. 송혜미자씨 제공

송율궁씨가 18살에 작곡한 ‘명랑한’ 악보. 송혜미자씨 제공

▲ 송율궁씨가 18살에 작곡한 ‘명랑한’ 악보. 송혜미자씨 제공

장애예술인지원법 10일 첫 시행
“실태조사, 예산 확보 못해 2022년에”


김정숙 “시각장애인 꿈, 장애물 없도록 노력”
단체 “‘보여주기식’ 행사보다 실질 도움을”

올해 6월 제정된 장애예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법이 오는 10일 시행된다. 제2조는 ‘장애예술인은 문화국가 실현과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공헌하는 존재로서 정당한 존중을 받아야 하고, 그 능력과 의사에 따라 예술 활동에 종사하고 참여할 기회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그 바탕이 될 ‘장애예술인 실태조사’는 예산 확보가 안 돼 2년 뒤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지난달 3일 문재인 대통령의 김정숙 여사는 서울맹학교를 찾아 “시각장애인들의 꿈이 장애물에 가로막히지 않게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애인 단체들은 보다 실질적인 지원대책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관계자는 “장애예술인에 대한 정부의 ‘보여주기식’ 일회성 행사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공감 능력도 부족하다”면서 “‘5년 내 예술인 100명 키우기’처럼 체계적인 양성 계획과 활동의 장을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94주년 점자의 날을 앞두고 3일 김정숙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 서울맹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점자체험을 하고 있다. 2020. 11. 3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클릭하시면 원본 보기가 가능합니다.

▲ 94주년 점자의 날을 앞두고 3일 김정숙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 서울맹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과 점자체험을 하고 있다. 2020. 11. 3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94주년 점자의 날을 앞두고 3일 김정숙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 서울맹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 11. 3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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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4주년 점자의 날을 앞두고 3일 김정숙여사가 서울 종로구 국립 서울맹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 11. 3 도준석 기자pado@seoul.co.kr

1987년 9월 6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당시 15살 송율궁씨의 일본 국제작곡경연대회 우수상 수상 기사.

▲ 1987년 9월 6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당시 15살 송율궁씨의 일본 국제작곡경연대회 우수상 수상 기사.

정부 “장애예술인 공연장·연습장 건립에
예산 250억 확보… 전년比 100억↑”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장애예술인 공연장·연습장 건립을 위해 내년 예산을 250억원으로 100억원가량 늘렸다”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지난 8월부터 장애예술인을 지원하는 워크숍 형태의 아카데미 과정을 신설해 모집하고 있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서울문화재단에서도 공모를 통해 강사매칭 등 교육을 일부 받을 수 있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시각장애인 연주자 양성사업’에서 나이나 공연횟수 등에 상관 없이 적정 인원을 선발해 전문 강사를 통한 프로그램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장애예술인 제도와 교육 관련 문의는 문체부 예술정책과(044-203-2720)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1988년 당시 16살인 ‘천재 맹인’ 작곡가 송율궁씨의 작품발표회를 알리는 스포츠서울 기사.

▲ 1988년 당시 16살인 ‘천재 맹인’ 작곡가 송율궁씨의 작품발표회를 알리는 스포츠서울 기사.

1987년 11월 경향신문에 실린 당시 15살 송율궁씨 기사. 송혜미자씨 제공

▲ 1987년 11월 경향신문에 실린 당시 15살 송율궁씨 기사. 송혜미자씨 제공



강주리 기자의 K파일은 강주리 기자의 이니셜 ‘K’와 대한민국의 ‘K’에서 따온 것으로 국내에서 벌어진 크고 작은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룬 취재파일입니다.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시사까지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온라인 서울신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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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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