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전체메뉴닫기

서울신문
공식 SNS 채널
구독 & 좋아요!!

서울신문 페이스북서울신문 유튜브
서울신문 카카오스토리서울신문 인스타그램서울신문 트위터서울신문 네이버채널

광고안보이기
전체메뉴 열기/닫기검색
서울신문 ci
암호화폐 범죄를 쫓다

[서울광장] 트럼프는 왜 마스크를 쓰지 않을까/김상연 논설위원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네이버밴드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구분선 댓글
입력 :ㅣ 수정 : 2020-08-05 01:58 서울광장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김상연 논설위원

▲ 김상연 논설위원

1. 봉투에서 마스크를 꺼낸다. 2. 마스크 양쪽 고리를 귀에 건다.

이렇게 사용법이 간단한 마스크 쓰기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사코 거부했다. 그렇게 버티다 코로나19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언론에서 하도 뭐라고 하니 요즘 들어 선심 쓰듯 마스크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늘 쓰는 것은 아니다. 병원 방문 등 특정한 상황에서만 착용한다. 대통령만 마스크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하루 수만명이 확진 판정을 받는 요즘도 마스크를 안 쓰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눈에 띈다. 며칠 전엔 디트로이트공항에서 승객 2명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해 여객기가 이륙 직전 게이트로 되돌아온 일도 있었다.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마스크를 쓰는 게 뭐가 그리 어려워 말을 안 듣는 것일까. 한국의 인터넷에는 “미개한 미국인들”이라는 힐난이 범람한다. 그런데 정말 미국인들은 미개한 것일까. 200년 넘는 민주주의 역사에 100년 넘게 세계 최고 부자 나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이 갑자기 후진국이 된 것일까.

미국인들이 마스크를 싫어하는 것을 놓고 범죄자나 병자, 약자로 보여지기 싫어서라는 분석이 있다. 그런 부분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루아침에 획일적으로 어떤 행동을 강요받는 것에 대한 생래적 거부감이 심리적 근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잠깐만. 목숨을 지켜 준다는데 좀 강요받으면 안 되나. 목숨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쳤다. 그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대서양의 풍랑을 목숨 걸고 건너온 이유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짧은 미국 헌법 전문에 ‘평등’은 없어도 ‘자유’는 있다.

이런 미국인의 기질을 극명하게 드러낸 장면이 지난 4월 총기로 무장한 시위대 수백명이 코로나19에 따른 자택 대피령 해제를 요구하며 미시간 주의회를 점거한 일이다. 세상에, 전염병을 막기 위해 집에 있으라고 했다고 총을 들고 나오다니. 더 놀라운 건 주의회의 반응이었다. “시위대의 권리를 존중한다”며 총을 든 사람들을 온도계로 발열 체크한 다음 의사당에 들여보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마스크를 거부하는 것은 우선 그 자신이 이런 DNA를 갖고 있기 때문일 테고, 정치적 계산으로는 자신의 지지층인 미국 백인들이 갖고 있는 이런 DNA에 잘 보이기 위해서일 것이다.

이런 미국인 눈에 한국은 어떻게 보일까. 우리는 방역 당국이 마스크를 권유하자 하루아침에 ‘마스크 공화국’이 됐다. 대통령이 솔선해서 마스크를 썼고 국민들은 마스크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섰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사람은 민폐를 넘어 집단적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런 우리 국민의 일사불란함은 ‘K방역’이라는 모범적 성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미국인 시각엔 이런 우리가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왜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느냐면서 총을 들고 의사당에 난입하는 그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듯이 수천만명의 국민이 중앙 권력의 통제에 일사불란하게 호응하는 우리를 그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동서양의 마스크 착용 차이는 ‘문화의 우열’이 아니라 ‘문화의 차이’라는 얘기다. 동양은 역사적으로 서양에 비해 자유보다는 생존을 우선시했고 중앙 권력에 순응적이었다. 그렇기에 생존을 위해서라면 마스크 쓰기 지침 하나쯤은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일인 것이다. 이런 기질은 코로나19에 대적하는 데는 결정적 장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전대미문의 전염병에 허둥대면서 현재 코로나19 사망자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전사자를 합친 것보다 많은 지경이 됐다.

그러나 전염병 방역에 유리하다고 해서 우리 문화가 완전무결하다고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일사불란함은 잘하면 ‘집단지성’이 될 수 있지만 지나치면 파시즘으로 흐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은 사실 종이 한 장 차이다. 전철 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시민이 다른 승객들의 지적에 화가 나 고성을 지르고 가방을 휘두르며 열차를 지연시켰다고 해서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행위, 그리고 그 영장이 기각되자 판사를 욕하면서 왜 구속하지 않았느냐고 들고일어나는 여론은 얼핏 파시즘의 색깔을 띠고 있다. 세상에, 마스크를 안 썼다고 감옥에 보낸다니.

우리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얼굴을 수시로 확인하듯이 타인을 통해 우리의 정체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미국인들의 마스크 안 쓰는 행동 하나를 통해서도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carlos@seoul.co.kr
2020-08-05 31면
페이스북 공유 트위터 공유 카카오톡 공유 카카오스토리 공유 네이버밴드 공유 네이버블로그 공유 구분선 댓글

서울신문 공식 SNS 채널
구독 & 좋아요!!
서울신문 페이스북서울신문 유튜브서울신문 카카오스토리서울신문 인스타그램서울신문 트위터
  • 주소 :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124 (태평로1가) l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서울 아03681 등록일자 : 2015.04.20 l 발행·편집인 : 고광헌
  • Copyright ⓒ 서울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l Tel (02)2000-9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