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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예외’로 日 두둔한 美… 트럼프 보호무역 조치 합리화 시도

‘안보 예외’로 日 두둔한 美… 트럼프 보호무역 조치 합리화 시도

나상현 기자
입력 2020-08-03 18:00
업데이트 2020-08-03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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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WTO ‘日 수출규제’ 제소 트집

미국 자국 보호무역 기조와 ‘일맥상통’
美 ‘심리 불가성’ 선언 기대 분석 나와
韓 “日 정치적 동기로 수출규제 입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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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공식 석상에서 한국의 일본 수출규제 제소를 놓고 트집을 잡은 것은 미국의 자국 보호무역 기조와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 대체적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자국의 오랜 국책을 반복했을 뿐’이라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의 특정국 지지 발언을 가볍게 넘겨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미국이 내세우는 것은 WTO의 가트(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에 명시된 ‘안보 예외’ 조항이다. ‘안보 예외’란 자국 안보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규제 조치가 정당화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미국이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분쟁해결기구(DSB) 정례회의에서 발언한 “일본만이 자국의 본질적 안보에 필요한 조치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는 바로 일본의 수출규제가 ‘안보 예외’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1심 격인 분쟁패널이 심리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심리 불가성’(nonjusticiability)을 선언하길 원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앞서 미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그리고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무역 분쟁에서도 같은 입장을 반복했지만, 지금까지 분쟁패널이 심리 불가성 선언을 한 전례는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미국이 ‘안보 예외’와 관련해 특정 국가를 두둔하면서까지 민감하게 나오는 것은 이미 미국도 자국 안보를 내세운 무역조치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3월 “미국의 안보를 지킬 것”이라며 ‘국가 안보 위협’을 명분으로 수입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최근엔 중국의 동영상 소셜미디어 ‘틱톡’에 대해 “안보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미국 내 틱톡 사용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송기호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 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 조치를 WTO에서 합리화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했다.

일본도 ‘안보 예외’를 내세우며 향후 분쟁 절차에 대응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무역 보복 조치를 위한 구실로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을 끌어왔다. 우리 정부가 전략물자인 고순도 불화수소가 북한에 흘러들어 가는 것을 방치했기 때문에 안보상 이유로 수출을 막아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발언과 관련해 “지난 70여년간 반복해 온 자국의 오랜 입장으로, 딱히 특정국을 지지하려는 취지는 아니었다”며 “이번 수출규제의 시발점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이라는 ‘정치적 동기’이기 때문에 일본의 ‘안보 예외’ 주장은 통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모인 공식 석상에서 나온 미국 발언을 흘려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송 변호사는 “미국에 제3자국 지위가 있기 때문에 일회성 발언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론에 개입할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일본 측에 어떠한 안보적 위협이 있었는지 객관적 증거를 내놓으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도 “분쟁패널이 미국 측 주장대로 가트 협정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게 되면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다”면서 “일본 수출규제가 안보상 위협에서 시작되지 않았으며, 전략물자 관리도 철저하게 해 왔다는 점을 내세우는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2020-08-0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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