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리처드 다이어 지음/박소정 옮김/컬처룩/430쪽/2만 8000원
할리우드 영화 속 백인 우월주의고전·회화 등 서구 문화의 관행
인종주의서 자유롭지 않은 한국
문화수출국 된 현실에서 과제로
1980년대 말 개봉된 영화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에서 주인공은 어렵사리 만든 영화의 시사를 마친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애써 만든 영화들이 모두 할리우드 영화의 연출 장면을 베껴 이어 놓았을 뿐임을 뒤늦게 자각하곤 죽음을 택한 것이다.
저자 다이어가 영화를 보는 시각은 그저 오락거리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인식이 재구성되는 문화적 장르다.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고 지각하는 방식은 식민주의 및 제국주의 문화가 남겨 놓은 기호학적이고 물질적인 흔적´이라는 영국 역사학자 폴 길로이의 지론과 맞닿아 있다. 재현의 장르인 영화는 `백인 헤게모니´가 형성되고 재생산되는 기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나우 유 시 잇´의 교훈처럼 시계를 싼 껍질을 벗겨 가듯이 시선을 탈중심화하고 방향을 바꿔 다르게 보는 법을 배우라고 주장한다. 책의 큰 특징은 고전문학과 대중음악, 르네상스 회화, 20세기의 사진술, 1950년대 이탈리아 영화부터 할리우드 SF영화까지 서구 대중문화를 아우르며 기독교, 인종, 식민주의 맥락에서 더듬어 가는 `백인성´ 찾기다. 백인 얼굴을 표준으로 삼아 발전한 사진술, 할리우드 영화에서 백인 스타를 비추는 조명 관습, 기독교적 분위기에 맞춘 빛의 사용이 대표적인 흔적이다.
백인성의 권력이 사실상 모든 서구 문화의 기저에 관행으로 스며들어 있음을 드러내는 과정을 좇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금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한류와 한국 사회의 얼굴이 포개진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0만명을 넘어선 한국은 과연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어두운 피부색의 외국인에게 우호적인가. 옮긴이는 이 대목에서 “한국 사회는 결코 인종주의나 피부색주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우리의 시선 속에서 또 다른 백인성이 작동한다”고 꼬집고 있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도 책머리에 남긴 글을 통해 “세계 속 문화 수출국이 되어 새로운 미의 위계를 형성하는 여러 산업적, 문화적 실천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이미 인종주의는 우리의 문제이고 한국의 미백과 뷰티 실천은 이 문제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지적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