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와 ‘조치’

[이경우의 언파만파] 코로나19와 ‘조치’

이경우 기자
입력 2020-04-12 22:44
업데이트 2020-04-13 01:51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이미지 확대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이경우 어문부 전문기자
코로나19가 ‘조치’(措置)들을 매일같이 불러온다. 한데 ‘조치’에 대해선 하나의 오해가 있다. 일본식 한자어라는 것이다. “일본식 한자어야.” 이러면 대부분 일단 ‘경계’에 들어간다. 뭔가 잘못하고 있다는 자세로 전환하며 달리 대체할 말을 찾고 싶어 한다.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다. 정말 그런 것인지에 대해선 의심하거나 반박하려는 의지가 거의 없다. 그만큼 ‘일본식 한자어에 대한 경계나 배제’는 규범 이상의 구실을 한다.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여러 조처. 이 표현 어색하지 않은가요? ‘조치’가 아니라 ‘조처’여서 어색해하는 분위기가 있네요.” 얼마 전 주위에서 의견이 담긴 질문을 받았다. ‘조처’라고 쓴 사람은 어쩌면 어디선가 ‘조치’가 일본식 한자어이고, ‘조처’(措處)가 우리 한자어라고 배운 적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조치’가 일본식이라는 근거는 찾기 어렵다.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은 ‘행정용어순화편람’(1993)을 근거로 ‘조처’와 ‘조치’, ‘처리’를 함께 쓸 수 있다고 안내한다. 일반 책도 아니고 ‘순화’와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서 이렇게 제시하고 있다. ‘조치’가 일본식이란 주장에 의심을 갖게 한다. 여기에다 ‘조선왕조실록’에선 ‘조치’를 수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 ‘국가의 조치’(國家措置), ‘조치하지 못하여’(不能措置), ‘남방의 일을 조치하려면’(若措置南方之事)처럼 나타난다. 의미 또한 지금과 다르지 않다. ‘조처’ 역시 등장하는데, 쓰인 횟수는 현재처럼 ‘조치’가 훨씬 많았다. ‘조치’가 ‘조처’보다 6배 넘게 많이 쓰였다.

일부의 주장은 묻힌 듯하다. 코로나19에서도 거의 ‘조치’를 되가져 온다. 이미 조선왕조실록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쓰였을 것이다. 정부와 기관은 물론 언론매체들의 문장에서 ‘조치’가 넘쳐난다. 비상한 상황임을 나타내는 표시일 것이다. 이것은 달리 읽으면 통제와 질서를 바란다는 뜻이기도 하고, 어떤 힘을 드러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입국 제한 조치’, ‘모임 제한 등의 조치’, ‘봉쇄 조치’, ‘권고 조치’ 같은 ‘조치’들이 연일 이어진다. 이렇게 ‘조치’로 마무리된 대책과 행위들은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율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정부와 기관의 말들은 웬만하면 ‘방역 조치를 했다’, ‘출국 조치했다’처럼 ‘조치’를 넣으려 한다.

일상의 언어들에서는 ‘조치’를 꺼린다. ‘방역했다’, ‘출국시켰다’라고 한다. ‘조치’는 덜 친절하고 권위적으로 비친다. 남용은 괜한 힘의 과시이거나 권위를 스스로 드러내려는 태도일 수 있다.

wlee@seoul.co.kr
2020-04-13 27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선택은?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현재의 보험료율(9%), 소득대체율(40%)을 개선하는 2가지 안을 냈는데요. 당신의 생각은?
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50%로 각각 인상(소득보장안)
보험료율 12%로 인상, 소득대체율 40%로 유지(재정안정안)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