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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은 생리현상 넘어 건강권… 경험 나누고 대안 용품 찾아 쓰죠

월경은 생리현상 넘어 건강권… 경험 나누고 대안 용품 찾아 쓰죠

김정화 기자
입력 2019-06-03 00:38
업데이트 2019-06-03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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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생리대 파동’ 이후 뜨는 대안 월경용품

식약처 생리대 인체 무해 발표에도 불안
1020 트위터·유튜브 통해 대체 제품 검색
“생리용품 정보 부족·생리컵 등 종류 적어”
지난해 이어 올해 2회 ‘월경 박람회’ 성황
관련 제품·의학 정보 공개적 논의 유의미
“월경은 인권… 남성에게도 남 일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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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26일 소셜벤처 이지앤모어가 주최해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제2회 월경 박람회에서 한 방문객이 직접 생리컵을 만져 보며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있다.
지난달 25~26일 소셜벤처 이지앤모어가 주최해 서울 성동구에서 열린 제2회 월경 박람회에서 한 방문객이 직접 생리컵을 만져 보며 여러 제품을 비교하고 있다.
“‘그날’이 도대체 뭔데? 아프고 신경질 나.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게 생리야.”

지난해 11월 국내 최초로 생리대 광고에 ‘생리’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뭐 그리 놀랄 일이냐’ 싶겠지만 관행을 생각하면 놀랄 일이다. 지금껏 생리는 광고에서 금기어에 가까웠다. 기존 광고들은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보여주기만 했고, “흰 옷을 입어도 상쾌하다”고 다루는 식이었다. 10~50대 가임기 여성이 매달 한 번, 평생 약 400번 겪는 일이지만 생리나 월경 대신 ‘그날’, ‘마법’, ‘빨간 날’ 등 암호로 불렸다.

생리를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는 광고에서만 나타난 게 아니다. 젊은 여성들은 일상에서 생리 경험에 대해 적극적으로 얘기하며 권리와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근 주목 받는 게 ‘대안 월경용품’이다. 2017년 ‘생리대 파동’을 겪으면서 몸에 바로 닿는 생리대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여성들은 이제 서로 생리 경험을 온·오프라인에서 자유롭게 공유하고, 자신에게 맞는 월경용품을 스스로 찾아 쓰고 있다.

●“생리대는 불편해”… 생리컵 찾아 쓰는 1020

“생리는 원래 고통스럽고, 축축하고, 귀찮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생리컵을 쓰게 된 뒤엔 제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릴 때가 많아요.”

고등학생 신혜진(17·가명)양에게 매달 돌아오는 생리 기간은 ‘하루빨리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신양이 첫 생리를 했을 때 엄마는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생리대 한 뭉치를 선물로 줬다. 당연히 생리할 땐 생리대를 쓰는 줄 알았다.

신양은 “생리대를 하고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기저귀를 찬 것처럼 축축해져 저절로 짜증이 났다”면서 “2~3시간에 한 번 꼬박꼬박 생리대를 갈아도 계속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고 말했다. 가만히 앉아있어도 땀이 흐르는 여름이면 더욱 고역이었다. 속옷 안에 생리대를 착용하고, 속바지를 입고, 그 위에 교복 치마까지 입고 하루를 버티면 땀띠가 날 정도였다.

그런 신양은 “이제는 생리가 예전만큼 싫지 않다”고 했다. 약 2년 전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생리컵’을 알게 되고 나서다. 생리컵은 컵 형태로 생긴 대안 월경용품의 하나다. 일회용 패드를 속옷에 붙여 피를 흡수하는 생리대와 달리 몸 안에 컵을 삽입해 피를 바로 받아낸다. 종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모양, 둥그런 요강 모양 등 생김새도 다양하다.

신양은 “처음에는 탐폰(생리 때 질에 삽입해 피 등을 흡수하는 제품)을 쓰고 ‘신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이후 유튜브에서 생리컵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생리대와 다르게 한 번 착용하면 8~10시간 동안 써도 괜찮고, 마구 다리를 움직이거나 침대에 누워도 피가 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게 너무 좋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리컵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게 선택지를 넓혀줬다”면서 “생리컵은 삶의 질을 높이고, 질의 삶도 높였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월경 박람회에 전시된 다양한 모양의 대안 월경용품들.
월경 박람회에 전시된 다양한 모양의 대안 월경용품들.
●‘생리대 파동’ 계기로 대체재 찾아 관심 증가

대안 월경용품은 한국 여성 대다수가 쓰는 일회용 생리대 외 다른 생리용품을 포괄적으로 일컫는다. 생리컵을 포함해 화학물질이 아닌 면으로 만들어 세탁해서 쓸 수 있는 면 생리대, 몸 안에 흡수체를 집어넣어 피를 직접 흡수하는 탐폰 등이 있다.

국내에선 2017년 김만구 강원대 교수의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 연구 결과, 제품에서 독성 물질이 발견됐다는 ‘생리대 파동’이 벌어지며 대안 월경용품이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논란이 커지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위해성 평가 결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생리대는 인체에 무해하다고 공식 발표했지만, 여성들의 불안감은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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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김모(24)씨는 “생리대 파동이 있기 전에는 생리대 살 돈이 없어서 신발 깔창이나 휴지로 대신한다는 저소득 청소년 실태가 전해졌다”면서 “생리대는 가임기 여성에게 생활필수품인데 정부에서 비싼 가격을 낮추거나 안전성 평가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고 말했다.

대안 월경용품에 대해 주로 찾아보고 사용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은 상당수가 10~20대 젊은 여성들이다. 식약처가 2017년 가임 여성 10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생리컵에 대해 ‘알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41.1%였는데, 이 중 10~20대의 인지도는 61%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높았다. 이들은 유튜브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생리컵 사용방법 안내서를 제작하기도 한다. 단순히 위생이나 깨끗함을 넘어서 건강까지도 고려한다는 게 특징이다.

면 생리대를 쓰는 김지용(25)씨는 “생리용품은 다른 제품에 비해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생리대가 불편해 생리컵으로 바꾸고 싶어도 국내에 많이 없다 보니 상품을 제대로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계 최초의 생리컵은 이미 1930년대에 등장했지만, 국내에서 생리컵에 대해 식약처가 처음으로 정식 수입을 허가한 건 불과 2년 전이다. 그전까지는 소비자가 해외 직구로 구매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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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경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생리대 분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생리대, 탐폰 등을 직접 잘라 내부를 확인하고, 실제 흡수량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하면서 월경용품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게 하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월경 박람회를 찾은 방문객들이 생리대 분해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프로그램 관계자는 “생리대, 탐폰 등을 직접 잘라 내부를 확인하고, 실제 흡수량은 얼마나 되는지 실험하면서 월경용품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게 하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월경용품·의학 정보 공유하는 ‘월경 박람회’

지난해 서울에서 국내 최초 ‘월경 박람회’가 개최된 데 이어 올해에도 열린 것은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25~26일 월경용품 소셜벤처 ‘이지앤모어’가 서울 성동구에서 주최한 제2회 월경 박람회에는 약 3000명이 방문했다. 생리에 대해 쉬쉬하고 개인적 경험으로만 치부하던 문화에서 벗어나 관련 제품, 의학 정보, 체험 프로그램 등을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젊은 방문객에게 환영받았다.

박람회를 찾은 고등학생 박현진(17)양은 “엄마가 탐폰을 쓰면 질이 넓어진다고 해서 계속 살이 쓸려 아픈데도 생리대만 썼다”면서 “박람회에서는 질도 근육이라 탐폰, 생리컵을 넣어도 전혀 상관없다는 것을 새롭게 배워서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중학생 이지선(14)양은 “이때까지는 생리 때 불편하고 짜증나는 게 있어도 그러려니 생각했는데, 박람회에서 직접 생리대를 분해해보면서 어떤 재질로 돼 있는지 알게 됐다”면서 “왜 이때까지 생리대를 하면 불편하고 아팠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점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여자친구와 함께 박람회에 온 양희찬(25)씨는 “태어나서 생리대를 처음 만져봤다”면서 웃었다. 양씨는 “여자친구가 생리 때 아파할 때마다 너무 고생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생리대를 만져보고 어떻게 착용하는지 보니 상상보다 훨씬 힘들 것 같다”면서 “여자친구의 고충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귀선 이지앤모어 PR디렉터는 “월경은 단순히 여성이 매달 겪는 생리현상으로만 볼 수 없다. 여성 당사자의 건강권 문제고 결국 인권의 문제”라면서 “엄마, 누나, 동생, 여자친구, 아내 등 주위 사람 모두가 겪는다는 걸 생각하면 남성에게도 월경은 ‘남 일’이 아니지 않을까”라고 했다.

글 사진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9-06-03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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