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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vs ‘지저분한 장애물’…일본서 수염 논쟁 확산

‘멋’ vs ‘지저분한 장애물’…일본서 수염 논쟁 확산

김태이 기자
입력 2019-01-28 15:11
업데이트 2019-01-2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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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법원, ‘수염금지는 인격적 이익 침해’ 원고 승소판결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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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가운데)와 서식스 공작부인 메건(왼쪽)이 1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한 두 번째 날 크로크 파크 (Croke Park)에서 어린 아이가 해리 왕자의 수염을 만져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 서식스 공작 해리 왕자(가운데)와 서식스 공작부인 메건(왼쪽)이 11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을 방문한 두 번째 날 크로크 파크 (Croke Park)에서 어린 아이가 해리 왕자의 수염을 만져 웃으며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AP 연합뉴스
수염은 남성의 멋을 더해주는 ‘파트너’인가? 아니면 업무에 불필요한 그저 지저분한 ‘장애물’인가?

오사카(大阪) 지방법원이 최근 오사카시 시영 지하철(현 오사카 메트로) 운전사가 수염을 길렀다는 이유로 인사고과에서 가장 낮은 등급을 준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한 것을 계기로 일본에서 때아닌 수염 논쟁이 일고 있다.

NHK에 따르면 오사카 지법은 이달 시영 지하철 운전사가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수염을 기르는 건 개인의 자유로 (이를 금지하는 건) 인격적 이익을 침해하는 위법”이라며 오사카시에 원고에게 40만 엔(약 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에서 찬반논쟁이 확산하고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가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는 건 당연하다”, “서비스업은 다른 업종과 달라야 한다”, “수염을 기르고 싶으면 독립하면 된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개인의 자유를 인사고과에 반영하는 건 폭거”. “수염을 기르는 건 개인의 자유”. “향수는 괜찮고 수염은 안된단 말이냐”는 등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일본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불결하다”는 시민의 진정을 받아들여 한때 수염을 금지한 곳도 있다.

군마(群馬)현 이세사키(伊勢崎)시는 9년 전 여름 간편복장인 쿨비즈의 주의점을 정리한 문서에 수염 금지를 추가해 전체 직원에게 돌렸다.

복장규정에 명기하지 않고 벌칙도 규정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파문이 일었다. “수염을 금지한 지자체”로 외국 매체를 포함한 언론의 취재가 쇄도하는 바람에 조용하던 시골 소도시가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이세사키시의 ‘수염 금지’는 소리없이 자취를 감췄다.

시 담당자는 “수염이 패션으로 인식돼 가고 있는데 일률적으로 금지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멋대로 기른 턱수염은 시민에게 불쾌감을 준다.

선을 긋기 어렵지만 공무원다운 청결감 있는 용모를 명심하자고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염을 기르지 말라는 요청은 더이상 하지 않는다고 한다.

손님과 접하는 기회가 많아 단정한 용모가 요구되는 백화점업계의 대응도 엇갈리고 있다. 다카시마야(高島屋)와 소고·세이부(西武)는 모두 수염을 금지하지는 않지만 청결감을 중요시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다카시마야 홍보실 측은 “입점 점포의 판매원중에 멋진 수염을 기르고 있는 사람도 있어 모두 안된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고객과 트러블이 생겼을 때 수염 기른 사람이 응대하면 불쾌감을 느낀다는 고객도 있을지 몰라 매장 책임자는 기본적으로 기르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고·세이부 홍보실도 “고객에게서 수염에 관한 고충이 들어온 적은 없다”면서 “잘 손질해 청결감을 유지하면 OK지만 아무렇게나 기르지는 말도록 하고 있다”고 한다.

반면 미쓰코시이세탄(三越伊勢丹)홀딩스는 접객 업무를 담당하는 남자사원의 수염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청결감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 문신과 함께 수염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수염에 대한 인식은 사회변화에 맞춰 변해왔다. 유명 면도기 메이커인 가이지루시(貝印)에 따르면 에도(江戶)시대에는 ‘수염 금지령’이 내려졌으나 막부 말기에는 외국인의 도래가 늘어난 영향으로 수염이 ‘야비한 것’에서 ‘문명’의 상징으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는 문명개화로 단발이 확산하면서 수염이 부활했다.

서양식 복장에 수염을 기른 메이지왕의 모습은 당시의 트렌드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수염은 ‘용맹’과 ‘위엄’을 상징했으나 2차대전후에는 다시 사정이 달라졌다. 경제고도성장기에는 깨끗한 ‘면도’가 샐러리맨의 용모가 됐다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60년대에는 다시 수염을 기르는 움직임이 확산했다. 베트남 전쟁 등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이 ‘반체제’의 상징으로 수염을 길렀다. 1990년대에는 남성의 멋으로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유행했고 최근에는 정장에 어울리게 잘 손질한 수염은 패션의 일부라는 생각이 확산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에는 ‘문명’이나 ‘권위’ 또 어느 시기에는 ‘반체제’와 ‘멋’으로 수염의 의미가 쉴새없이 바뀌고 있다.

전기면도기 사업을 하는 파나소닉이 재작년 정규직으로 일하는 20대와 30대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실시한 ‘직업과 남성의 용모’조사에서는 전체의 44%가 “현재의 직장은 남성의 용모에 엄하다”고 응답했다.

남성의 28%는 “좀 더 완화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사대상 남성의 31%는 “수염을 기르고 출근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수염 트렌드는 앞으로 어떻게 변할까. 일본 근현대사 전문가로 수염의 역사에 밝은 교리쓰(共立)여자대학의 아베 쓰네히사(阿部恒久) 교수는 “최근 젊은이중에는 수염을 제거해 피부를 매끈하게 하는 사람도 있어 ‘수염을 기르거나’ ‘미는’ 것에 더해 ‘아예 제거하는’ 선택지도 확산하고 있다”면서 “남성의 수염은 시대의 다양성을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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