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이 제값 받는 사회] 학제 바꾸고 연대임금제 도입… 양극화 막을 ‘종합처방전’

[노력이 제값 받는 사회] 학제 바꾸고 연대임금제 도입… 양극화 막을 ‘종합처방전’

홍인기 기자
홍인기 기자
입력 2017-02-12 18:06
업데이트 2017-02-13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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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노력사회의 조건을 찾아서 <끝> 전문가 제언

‘만사빽통’(모든 일은 ‘빽’으로 통한다)이 만연한 취업 현실,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계층의 고착화’ 현상은 상대적 박탈감을 심화할 뿐 아니라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경제성장에도 걸림돌이 된다. 부모의 지위와 경제력에 의해 교육, 직업, 결혼 이후의 삶이 좌우되는 현상이 지속되면 희망이 사라진 사회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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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출산율(1.24명)과 급속한 고령화로 노동 가능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 빈곤율은 61.7%로 은퇴 이후의 삶 역시 감당하기 버겁긴 마찬가지다. 비정규직의 대표격인 임시직 노동자의 비율은 22.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2배에 이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2배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이나 취업에서도 기회의 불평등이 만연해지면서 많은 청년들이 ‘N포세대’(모든 걸 포기한 세대)를 자처한다. 양재진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불평등은 노력이나 노동의 동기가 된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시스템이 약화되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며 “기회의 불평등은 경제성장률 저하까지 유발한다”고 경고했다.

●교육·노동·복지 등 사회전반 변화 필요

전문가들은 양극화 해소와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조세, 노동, 복지, 교육, 소득, 부동산 등 사회 전분야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처방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세금을 더 걷는 문제부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해소, 장기임대 주택 확대, 사교육 규제와 공교육 강화,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 등 다양한 해법이 제시됐다.

전문가들이 가장 많은 변화를 요구했고, 다양한 대안을 제시한 분야는 교육이다. 사교육이 곳곳에 침투한 지금의 교육 환경은 ‘기회의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격차를 벌리는 수단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한국의 엄청난 교육열이 경제성장을 불러왔지만, 계층 이동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교육은 사다리 역할이라는 본래 기능을 못 하고 있다”며 “입시 경쟁과 사교육의 최종 종착지인 대학 입시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구조개혁을 비롯해 교육개혁 문제는 교육부가 나설 것이 아니라 국회 차원의 위원회 구성 등을 통해 실현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공교육이 제 기능을 해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대학에서는 국가장학금 확대와 성적장학금 폐지 등도 고려해 볼 수 있는 정책이라고 꼽았다. 양재진 교수는 “노력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사회의 첫걸음은 계층과 무관하게 동등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을 설계하는 것”이라며 “초등학교 입학 전 인지능력이 생성되는 만 3세 이후부터는 국가 차원에서 비슷한 수준의 보육과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교육에 대한 규제와 함께 대입을 비롯한 교육 제도의 혁신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의견도 제시됐다. 시민단체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의 구본창 정책국장은 “수능 중심이 아니라 진로 중심의 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선다형 지필고사가 70%를 차지하는 수업과 평가 체제를 바꿔야 한다”며 “현재 시행 중인 입학사정관 제도의 경우 본래 취지를 잘 살릴 필요도 있다. 사회적 배경을 우선시하거나 특목고, 자사고 출신을 우대하는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교육 개혁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홍콩 사례도 언급했다. 홍콩은 입시 위주, 지식 위주의 폐쇄적인 영국식 학제를 운영하고 있었다. 2000년 초중고 교육 개혁을 통해 모든 학생이 적성과 능력, 흥미에 따라 진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제를 개편했다. 인문·자연·상경·기술 등 기존 계열을 폐지하고, 대학 진학을 위한 교과과정 외에 직업교과과정, 비교과 학습경험 과정 등 다양한 선택과정을 도입했다. 대입시험인 HKDSE는 점수가 아닌 등급제로, 대입전형에서는 HKDSE 등급과 학교 수행평가, 자기소개서, 면접 등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대기업 임금 양보해 협력사 지원 검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불평등 구조를 청산하고, 일한 대가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에 의한 경제적 낙수효과가 이뤄졌지만 이후 20년 동안 이런 효과는 전혀 발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대기업의 임금 양보와 중소기업의 임금 상승을 돕는 연대임금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대임금제는 자동차, 전자 등 대기업의 시장지배가 높은 산업분야에서 초과이윤분을 연대임금기금으로 출연해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의 임금상승·교육훈련 등에 활용하는 제도다. SK하이닉스가 임금상승분 일부를 협력사에 지원하고 있는 임금공유제가 대표적인 사례다.

남일성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업이 노동자에게 예전보다 임금을 초과해 지급하면 증가분 일부의 세액을 공제해 주는 정책, 저소득층 자산을 키우기 위한 희망키움 통장 등을 통해 실질 소득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남 교수는 프랑스의 연금, 의료보장, 가족수당 등을 지급하는 일반사회기여금 제도나 고위급 임원의 지나친 임금 상승을 억제하는 스웨덴의 임금정책 등을 언급하면서 “구조적인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과 전 분야에서의 파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각 직장 안에서도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일한 만큼 대가를 받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회사는 공정한 인사평가시스템을 구축하고, 평생교육과 직업훈련을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 이른바 전문직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제시됐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자격사 시험은 우리 사회에서 노력과 실력만으로 계층 이동이 가능한 사다리 역할을 하는 몇 안 되는 제도”라면서 “여전히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다”고 꼬집었다.

●노력만큼 보상하는 국가 인식 심어줘야

전문가들은 교육과 노동의 정상화 외에도 부의 직접적인 대물림 수단이 되는 상속과 증여에 대한 견제도 필요하다고 봤다. 박명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장기재정전망센터장은 “상속세나 증여세는 이미 최고세율이 50%로 높은 수준이라 인상의 여지가 크지 않다”면서 “그러나 그림과 골동품 거래를 비롯해 차명계좌, 차명 주식 거래 등 우회적인 부의 이전으로 세금을 피하는 경우가 여전하다”고 지적했다. 박 센터장은 이어 “양극화 해소를 위한 조세정책은 소득과 지출 양쪽 모두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소득세를 내는 노동자 외에 소비하는 사람에 대한 세금인 부가가치세 인상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된 이후 세율이 인상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지역사회 단위의 사회적 자본 형성을 위한 공동체 설립도 청소년과 청년들의 인식 전환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됐다. 정해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양극화에서 최상위층만을 기준으로 잡아서는 문제 해결의 길이 보이지 않는다”며 “열심히 노력해봤자 그저 그런 삶을 산다는 인식이 더 퍼지기 전에 사회적 자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아동센터나 자치구의 아이돌보미 사업, 취업지원센터 등 기존의 창구를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지원을 한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주거문제에 대해서는 전셋값을 억지로 잡는 현실성 없는 대책보다 공공임대주택 활성화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김근용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주거급여 지원이 이뤄지고 있고, 시중 임대료보다 낮은 가격인 공공임대주택은 매년 11~12만호 정도 공급되고 있다”며 “민간자본을 끌어들여서 싼 가격에 주택을 공급하는 뉴스테이를 비롯해 공공임대주택 공급 물량을 더 늘려 혜택을 보는 계층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남일성 교수는 “불평등 문제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며 “격차 해소와 기회 균등을 위해서는 조세 및 복지 정책 등 사회 전분야에서 정책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2017-02-13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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