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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찾은 80대 강제동원 유족들, 비극의 해안에서 헌화

대만 찾은 80대 강제동원 유족들, 비극의 해안에서 헌화

입력 2016-04-29 08:24
업데이트 2016-04-29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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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강원재·강대웅·박분의 옹

일제 강제동원 대만 지역 희생자 유족들은 27일(현지시간) 대만 남부의 가오슝(高雄) 지역을 추도 순례했다.

대만에서 형제를 잃은 80대 어르신 3명도 60∼70대 유족 14명과 함께 편치 않은 순례길을 동행했다.

1930년생으로 유족 가운데 최고령인 강원재(86)씨는 장남이던 형님 강기재씨가 1944년 28세로 강제징집된 후로 형님과 영영 이별해야 했다.

강씨는 “형님은 군인 수송선에 배치됐다가 1944년 8월 대만 동쪽 해상에서 폭침당했다”면서 “10월께 사망 통지를 받았는데 부모님은 물론 나와 누이들도 한동안 그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장남을 잃은 부모님의 슬픔은 나조차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며 말끝을 흐렸다.

유족들은 이날 가오슝의 치진(旗津)해안공원을 찾아 국화꽃 한 송이씩을 바닷물에 띄워 보내는 헌화 추모식을 거행했다.

그리움과 회한의 오열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강씨도 입술을 꾹 다문 채 십여분 동안 바다를 응시하다가 국화꽃을 살며시 물에 띄우고는 조용히 돌아섰다.

다른 한켠에서는 전남 순천에서 대만까지 먼 길을 온 강대웅(81)씨가 10살 때 이별한 형님 강대엽씨에 대한 미련을 국화꽃에 띄워 보냈다.

강씨는 “광복을 불과 몇 주 앞두고 형님이 대만에서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면서 “누님들은 돌아가시고 마지막 남은 내가 형님께 인사 올리러 왔는데 감회가 너무 새롭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모래사장에 주저앉아 한동안 상념에 잠겼다가 다른 유족들이 ‘이제 가자’며 발걸음을 떼고 나서야 힘겹게 몸을 일으켜 뒤를 따랐다.

헌화 추모식을 마친 유족단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사전 답사를 와서 찾아낸 가오슝 지역의 옛 탄광촌 터를 방문했다.

가오슝 빤핑샨(半坪山) 인근 빠오안림(保安林)에 위치한 이 철광석 폐광촌은 푹푹 찌는 아열대 기후 아래서 한국인 다수가 노역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순례에 참가한 여성 유족 중 최고령인 박분의(82·여)씨는 강제노역 희생자들이 철광석을 캤던 구덩이 흔적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탄식을 내쉬었다.

박씨는 “큰오빠는 20살이던 1944년 ‘불효자는 떠납니다’라는 편지 한통 남기고 일제에 끌려갔다가 소식이 끊겼다”면서 “같은 동네의 다른 오빠도 같이 갔다가 그 오빠는 돌아왔는데 우리 오빠는…”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박씨의 오라버니 박경택씨는 1945년 1월 대만 안핑(安平) 근해에서 전함과 함께 수몰된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걱정되는지 아들이 가지 말라고 뜯어말렸지만 오빠한테 인사하러 왔다”면서 “이렇게 살아서 작별인사를 하게 돼 마음의 응어리가 많이 풀렸다”며 기자의 손을 꼭 잡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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