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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은 히틀러가 자살한 날, 최후의 순간 재구성

30일은 히틀러가 자살한 날, 최후의 순간 재구성

임병선 기자
입력 2016-04-22 11:43
업데이트 2016-04-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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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30일은 히틀러가 권총으로 자살한 지 71년이 되는 날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어맨다 마시아스 기자가 21일 생전의 히틀러가 마지막으로 찍힌 것으로 알려진 사진 한 장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 사진은 자살을 감행하기 이틀 전인 1945년 4월 28일 촬영된 다큐멘터리필름을 캡처한 것이며 ‘총통 벙커’ 바깥으로 나와 연합군 공습으로 무너진 현장을 SS 친위대 장교와 둘러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히틀러는 베를린이 연합권 수중에 떨어졌으며 12년을 지탱해온 제3제국이 파멸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전날 오랫동안 사귀어온 에바 브라운과 서둘러 결혼식을 올리고 비서인 트라우디 융게와 함께 유언장을 작성하고 성명서를 마련한 뒤 4월 30일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눴다.

 

 역사학자들이 추정하는 히틀러의 마지막 순간들을 재구성했다.

 

 1945년 4월 중순

 베를린은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다. 독일 군대는 전장에서 퇴각했고 도시 곳곳은 참호로 변해갔다. 적군은 베를린을 포위했다. 나이든 이들과 경찰, 심지어 어린이까지 도시 수호에 나서라는 선동이 이어졌다. 그러나 시가전으로 전쟁 양상이 바뀌며 패색이 짙어졌다. 아돌프 히틀러의 시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독일 국민은 이미 총통을 버렸다. 4월 20일 생일을 맞아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뒤 그는 종적을 감췄다. 베를린 도심의 브란덴부르크문 아래 벙커에서 자신의 참모, 정부 브라운 등과 함께 최후의 순간까지 숨어 있었다.

 

 몇주째 히틀러의 은신처에 나쁜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었다. 미군은 서쪽에서, 무자비한 소련 탱크는 동쪽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히틀러의 장군들은 좌불안석이었고 참모들이 쿠데타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히틀러는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SS친위대 사령관 중 한 명인 펠릭스 슈타이너가 베를린 남부를 방어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묵살한 사실을 알고는 울먹이기까지 하면서 전쟁에서 졌다고 공언했다. 개인 주치의 베르너 하세 박사에게 자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자문했다.

 

 4월 29일까지 악화일로였다.

 히틀러는 브라운과 결혼식을 올렸지만 사람들은 결혼 축하보다 자살하는 방법을 논의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다. 히틀러는 SS 지도자인 하인리히 히믈러가 연합군에게 즉각 항복을 요청했으나 묵살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분노한 그는 히믈러를 체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얼마 뒤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통이 성난 군중에 의해 처형당한 사실을 들었다. 무솔리니의 죽음은 영원한 제국 건설을 약속했던 히틀러에게 앞으로 닥칠 일을 예고했다. 결과적으로 무솔리니의 죽음은 벙커에서의 삶을 24시간 이상 못 버티게 만들었다.

 

 4월 30일(모든 시간은 추정치)

 새벽 1시-윌리엄 카이텔 야전군 사령관이 자신의 부대가 적들에게 완전히 포위돼 베를린에 진입할 수 없게 됐다고 보고했다.

 

 새벽 4시-오토 귄세 대령은 침실로 향하다 하세 박사와 히틀러 애견 관리인 프리츠 토르노프가 히틀러가 끔찍하게 여기던 셰퍼드 애견 블론디에게 청산가리를 먹이는 장면을 목격했다. 하세 박사는 히믈러가 제공한 청산가리의 효능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보였다. 약이 잘 들어 블론디가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오전 10시 30분-히틀러는 헬무스 바일딩 장군을 만났는데 그는 파국이 가까이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라이히슈탁 근처까지 진격했다. 바일딩 장군은 병사들이 탄약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히틀러는 절대 베를린 항복 선언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해서 바일딩 장군은 항복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한도에서 군사들을 외곽으로 빠져나오게끔 해달라고 간청했다.

 

 오후 2시-히틀러와 벙커에서 함께 지내온 여성들, 브라운, 융게와 다른 비서들이 점심을 들었다. 히틀러는 자결을 원한다면 청산가리를 나눠주겠다고 얘기했다. 아울러 그네들에게 더 나은 생활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사과했다.

 

 오후 3시 30분-총성을 듣고 놀란 히틀러의 운전기사 하인츠 링게가 서재 문을 열었더니 아몬드가 탄 것 같은 냄새가 났다. 브라운과 히틀러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브라운은 청산가리를 마신 것 같았고 히틀러는 발터 권총으로 자신의 운명을 마친 뒤였다.

 

 오후 4시-링게 등이 두 시신을 담요로 싸서 계단을 올라 마당으로 옮겼다. 공습 포탄이 떨어지는 가운데 그들은 화장을 진행했다. 요시프 괴벨스 선전상은 다음날 자살했는데 성냥 박스를 품에 안은 채였다. 생존자들은 중얼거리며 시신들에 불을 붙였다. 그들은 몸에 불이 붙은 채로 벙커로 내려갔다.

 

 5월 1일 포탄 세례 속에서도 라디오를 들을 수 있었던 독일인들은 리하르트 바그너의 악극 ‘신들의 황혼( Gotterdammerung)’이 연주되는 가운데 총통의 죽음을 알게 됐다.

 

 참고 문헌-Endgame, 1945: The Missing Final Chapter of World War II; German Commanders of World War II; The Bunker; The Day the War Ended; Five Days That Shocked The World; Until the Final Hour: Hitler’s Last Secretary; Inside Hitler’s Bunker; BBC News.

 

 히틀러의 최후로부터 약 2주 뒤 미국의 사진작가 윌리엄 반데비르트가 촬영한 벙커 사진을 보고 싶은 분들은 http://www.sliptalk.com/inside-hitlers-bunker/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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