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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번역가가 본 韓문학 “하루키보다 박민규가 더 뛰어나”

외국번역가가 본 韓문학 “하루키보다 박민규가 더 뛰어나”

입력 2016-04-18 15:06
업데이트 2016-04-18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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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번역원 토론회…英·印·佛 등 6개국 출신 번역가 참석

“일상생활에서 체면을 잘 세우는 한국 사람들은 문학작품에서는 억제되지 않은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번역을 통해 숨겨져 있는 한국의 내면을 보여주고 싶어요.”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

“한국 문학을 번역하다 보니 한국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걸 느껴요.” (소피 보우만)

“한국 문학은 저에게 새로운 신세계에요. 접할 때마다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감정을 얻는 느낌입니다.”(크세니아 네트레비나)

18일 오전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도서관에 외국인 6명이 모였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인도, 멕시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이들은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아카데미를 수료했거나 재학 중인 한국문학 번역가들로, 한국문학번역원이 주최한 ‘세계번역가회담: 외국인이 본 한국문학 그리고 문학번역’ 토론회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이 자리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문학과 번역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번역가들은 “한국 문학은 한국 문화의 압축판”이라며 “문학 번역이야말로 한국의 진짜 모습을 그려주는 도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한 나라의 문화나 사회를 이해하려면 언어가 열쇠이고, 문학은 대문”이라는 언급도 잊지 않았다.

먼저 이들은 한국문학 번역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털어놓았다. 다른 나라 문화와 언어에 관심이 많았던 이들은 각자의 나라에서 한국어를 접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한국 문학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인도 출신의 아그넬 조셉(33)은 “영어로 번역된 박완서의 ‘엄마의 말뚝’을 접하게 되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2001년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지만 말하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토로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크세니아 네트레비나(31)는 “100년 전부터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는 고려인 자손들이 어릴 적 친구들이었다”며 “한국어를 공부하다 보니 한국 문학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번역에 입문할 정도로 이들을 매료시킨 한국 작가들은 누구였을까. 고은, 문정희, 정현종, 피천득 등 원로 문인부터 한강, 박민규, 하성란, 배수아, 정이현 등 젊은 작가까지 다양한 이름이 언급됐다.

멕시코 출신 이르마 시안자 힐 자녜스(31)는 “특히 문정희 시인을 좋아한다”며 “문 시인은 사소한 일상을 소재로 삼아 유머스럽고, 깊이 있는 시를 쓴다”고 강조했다. 전경린 작가를 꼽은 영국 출신 소피 보우만(29)은 “전 작가는 소설을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로 쓴다”며 “소설마다 제 마음을 확 사로잡는 대사들이 아주 많다. 언어의 매력을 깨닫게 해줬다”고 했다.

최근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후보에 오른 한강과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박민규는 이들이 가장 번역하고 싶은 작가로 꼽혔다. 한강은 시처럼 아름다운 문체가, 박민규는 위트 넘치는 이야기가 매력이라는 설명이 돌아왔다.

독일 국적 베네딕트 플라이어(32)는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하는 이장욱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며 “이 작가는 주로 단편소설을 썼지만 서술이 굉장히 깔끔해 읽을 때 영화가 그려진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한국 문학의 우수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했다.

베네딕트 플라이어는 “시는 짧은 글 속에 전달하려는 의미를 함축하고, 이를 독자한테 전달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많은 시들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지만 고은 시인은 그 능력이 있다”고 극찬했다.

한국 작가들이 세계적인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를 능가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소피 보우만은 “한국에서 사람들이 하루키, 하루키 하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박민규 작가가 하루키보다 글을 훨씬 잘 쓴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옆에 있던 아그넬 조셉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수긍했다.

이들은 한국문학 번역의 어려움도 토로했다. 오빠나 아저씨 같은 호칭, 시적이거나 말장난이 섞인 문장, 텍스트의 중의성 등이 한국 문학 번역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지적됐다.

프랑스 출신의 에릭 세종(36)은 “문법이 정확하고, 내용이 딱 떨어지는 김연수, 김경욱 작가의 작품은 번역이 쉽지만 배수아, 박민규 작가의 작품은 읽을 때는 재미있지만 번역하기는 너무 어렵다”고 설명했다.

아그넬 조셉 역시 “박민규 작가를 독자로서 가장 좋아하지만 번역가로서는 겁이 난다”며 “시적인 단어나 말장난, 한자어를 많이 써서 같은 단어인데도 의미가 다를 때가 있다. 영어로 번역하기 불가능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러한 어려움에도 한국문학 번역을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고은과 김승욱의 작품, 심지어 고전 구운몽까지 번역하고 싶다는 이들이 왜 한국 문학 번역을 고집하는지 궁금했다.

“‘아르판’이라는 단편소설을 번역해 영국에 있는 아버지께 이메일로 보내드렸어요. 저는 아버지가 눈물을 흘린 적을 본 적이 없는데 아버지가 작품을 읽고 우셨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한국문학과 번역의 힘인 것 같아요.”(소피 보우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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