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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열린세상] ‘제중원 터’에서 인류 공영을 생각한다/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입력 2016-04-15 18:00
업데이트 2016-04-1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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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뒤뜰에 가면 백송 옆에 ‘제중원 터’라는 돌판이 하나 서 있다. 1885년 미국 선교사 호레이스 앨런이 고종의 윤허를 받아 서양식 병원으로 개원한 제중원 터의 표석이다.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이공현 법무법인 지평 대표 변호사
원래 미국 마이애미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하고 중국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의사 앨런은 미국 공사관의 공의로 서울에 왔다. 앨런의 입국 후 두 달 만에 갑신정변이 일어나 수구파의 대표이며 민비의 조카였던 민영익은 자객의 칼에 맞아 정맥이 끊어져 생명이 위독해졌다. 당시 조선의 의료 수준에서는 가망이 없다고 판단됐으나, 조선 조정의 다급한 요청을 받은 앨런이 어려운 외과적 수술 끝에 민영익의 생명을 살려 냈다. 이로 인해 앨런은 고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됐고 그의 시의가 됐다.

조선의 열악한 의료기술과 시설을 염려한 앨런은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간청을 했다. 고종 또한 선진 의술의 필요성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에 이를 허락하고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홍영식의 한성 북촌 집을 하사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제중원이 탄생한 것이다. 1900년 제3대 제중원장 올리버 에이비슨의 호소를 들은 루이스 세브란스가 2만 5000달러를 기부했고, 그 돈으로 당시 서울역 앞 복숭아골에 2층 벽돌 건물의 병원 겸 의학전문학교가 세워졌다. 이렇게 탈바꿈을 한 세브란스병원은 20세기 초 전국에 새로운 학교와 병원을 설립한 여러 선교사들에게 귀감이 됐다.

36년의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3년간의 한국전쟁을 겪으며 우리나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했고, 외국 원조 없이는 국민의 생존 자체가 어려웠다. 그 시절을 겪은 많은 분들은 지금도 성탄절 즈음 동네 마당에서 외국인들이 보내 준 스웨터와 전지분유를 받고 좋아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60년 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 규모에서 세계 11위를 기록할 정도로 경제 발전을 이룩했으며, 그와 더불어 정치·사회 부문에서도 성숙한 나라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2010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다. 원조를 받기만 하던 나라가 세계 최초로 빈국 및 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 발전을 위해 원조하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전문에서 우리 국민이 항구적으로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불행히도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는 28개국의 개발원조위원회 국가 중 16위 정도이며, 국민총소득 대비 23위에 머무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 점을 인식해서인지 한국의 공적개발원조 규모를 앞으로 대폭 늘리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국제빈곤퇴치기금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으나 재원 조달 방법을 둘러싼 논란 끝에 입법이 무산됐다.

오늘날 세계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이 연관돼 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세계는 경제의 장기 침체와 위기를 겪고 있고, 모든 국가들이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 불균형은 확대되기만 하고 위기는 반복되고 있다. 또한 테러나 메르스에서 보는 것처럼 전쟁·전염병 및 공해 등 재앙은 어느 한 국가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한국처럼 대외 의존도와 개방도가 높은 나라는 자기만의 힘으로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내부의 구조적 문제와 세계 경제의 침체가 겹쳐 경제가 어렵고 국민의 삶 또한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19세기 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조선을 의료와 교육제도를 통해 도와주었던 손길들과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의 생존과 경제발전을 위해 1995년까지 원조를 했던 선진국들을 떠올린다면 우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어느 곳인지 명확해진다. 국회 공청회에서 유엔 사무총장을 당선시키고 재선시키기 위해 국제빈곤퇴치기금을 만들었다는 누군가의 얘기를 들으며 제중원 터의 표석이 떠오르고 아픈 마음이 드는 것이 비단 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2016-04-16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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