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페이지

24시간 대기조… 수협 경계하는 상인, 무전기 든 경비… 상인 감시하는 수협

24시간 대기조… 수협 경계하는 상인, 무전기 든 경비… 상인 감시하는 수협

조용철 기자
입력 2016-04-06 01:32
업데이트 2016-04-06 02:12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칼부림까지 번진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갈등’ 현장 가보니

“지난달 16일부터 밤샘 근무조를 만들었으니까 오늘이 딱 20일째네요.”

5일 새벽 1시 기존의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만난 장한기(52)씨는 현대화 시장 입주에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붉은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는 “새 시장으로 간 상인들을 제외하고 남아 있는 우리 500여명 중에 350명이 24시간 대기조를 편성했다”며 “수협중앙회가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입구, 주차장, 해수 공급시설 등에 접근하는 것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지 확대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5일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구시장 상인들이 시장 안에서 ‘현대화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노량진수산시장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 다음날인 5일 비상대책위원회 소속 구시장 상인들이 시장 안에서 ‘현대화 반대’ 집회를 갖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 확대
같은 날 새벽 수협중앙회가 새롭게 만든 현대식 수산시장은 상인들의 입주율이 낮아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같은 날 새벽 수협중앙회가 새롭게 만든 현대식 수산시장은 상인들의 입주율이 낮아 썰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그는 오후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지키는 ‘새벽조’의 조장이다. 조원들은 목에 호루라기를 걸고 있었다. 반면 상인들이 지키는 곳 주변에서는 수협 측이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손전등과 무전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구(舊)시장’과 ‘신(新)시장’은 20m도 채 떨어져 있지 않았지만 서로 등을 맞댄 채 반목하고 있었다. 새벽 장을 보러 손님들이 찾아오자 시장 입구에 있던 호객꾼들은 연신 신시장 쪽으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아직은 익숙한 전통시장으로 향하는 손님이 더 많았다.

특히 이날은 전날 있었던 칼부림 사건으로 분위기가 더욱 살벌했다. 지난 4일 상인 측 비상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이 수협 직원 2명, 경비업체 직원 1명을 칼로 다치게 한 일이 있었다. 한 상인은 “우리 상인들 전체가 폭력적인 집단으로 낙인찍힐까 봐 걱정”이라면서 “새 시장으로 입주한 상인들을 보며 마음이 뒤숭숭하던 차에 불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현대화 시장으로 입주한 상점은 200여곳으로 당초 예상보다 많다. 수협 측은 영업면적(4.9㎡·1.5평)이 작다는 상인들의 불만을 의식한 듯 먼저 계약에 나선 상인들에게 좋은 자리를 내주면서 입주를 유도했다.

이번 칼부림 사태에 대해 “언젠가 일이 터질 줄 알았다”고 말한 상인도 많았다. 이미 지난달 26일 기존 시장에서 수협이 고용한 경비업체 직원들이 상인들의 테이블과 의자를 부수려다가 양측에 몸싸움이 일어났다. 이달 1일에는 트럭과 굴착기를 동원해 시장 입구와 주차장을 막으려는 경비업체 직원들을 저지하다 상인 35명이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기존 시장에 있는 상인 최모(43)씨는 “주차장 전기를 끊겠다거나 시장이 위험하다는 안내문을 수협 측에서 돌리는 통에 상인들의 스트레스가 크다”고 전했다. 수협 측 관계자는 “주차장은 노후화가 심해 안전 문제가 있으며, 상인들이 테이블을 설치한 곳은 영업 공간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기존 시장이 무허가 시장이 된 만큼 상인들이 무단 점거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수협 쪽과 자신들의 점유권을 지키려는 상인들의 갈등은 평행선을 내달리고 있다.

이날 새벽 시장을 찾은 손님 황모(54·여)씨는 “시장 외벽에 ‘철거·위험’이라고 쓰인 글씨들을 보면 우리까지 마음이 불안해진다”며 “그래도 새로 지어진 시장은 익숙하지도 않고 어수선해 아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상인들은 시장이 갈라진 후 고객이 30% 이상 줄어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수협은 구시장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을 상대로 공간을 비워 줄 것을 요구하는 명도소송에 이어 손해배상까지 청구하겠다는 입장이다. 봄이 왔지만 아직 진짜 봄이 오지 않은 노량진수산시장. 무겁고 차가운 어둠을 지나 새 아침이 밝았지만 구시장에 남은 사람들도 신시장에 들어간 사람들도, 그리고 손님들도 표정은 모두 굳어 있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2016-04-06 9면

많이 본 뉴스

  • 4.10 총선
저출생 왜 점점 심해질까?
저출생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인구 소멸’이라는 우려까지 나옵니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녀 양육 경제적 부담과 지원 부족
취업·고용 불안정 등 소득 불안
집값 등 과도한 주거 비용
출산·육아 등 여성의 경력단절
기타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