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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가정 위한 신들린 연기 “판사만 하기엔 아까우시네”

이혼 가정 위한 신들린 연기 “판사만 하기엔 아까우시네”

입력 2016-04-03 22:42
업데이트 2016-04-04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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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인의 판사들, 연극 ‘여보 고마워’ 오디션 무대에 선 이유

법관 역할만 실제 판사가 맡아
“더 세게 연기하세요” 지적받고 “무대 동선까지 아시네” 칭찬도
동화구연·노래 등 치열한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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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지하 2층 청연재에서 실시된 연극 ‘여보, 고마워’ 오디션에서 현직 판사 8명이 심사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가정법원 지하 2층 청연재에서 실시된 연극 ‘여보, 고마워’ 오디션에서 현직 판사 8명이 심사위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들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했지만 전쟁의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아이들에게 부모의 부부싸움은 전쟁의 공포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가 됩니다.”

지난 2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세미나실. 연극 ‘여보, 고마워’ 오디션에 참가한 이대로(35·연수원 37기) 인천가정법원 판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사를 읊었다. 얼굴에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무 착한 판사인 거 같은데요. 이혼하려는 당사자들을 호되게 야단치는 것처럼 다시 연기해 주세요.”

심사위원의 지적에 이 판사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결국 이 판사는 심사위원과 함께 가상 부부싸움 연기까지 마친 뒤에야 오디션 무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렇게 판사 8명이 연극 속 법관 배역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남편 암 걸린 뒤 소중함 깨닫는 내용

‘여보, 고마워’는 이혼 위기에 처한 부부가 남편의 암 선고 등 위기를 극복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는다는 줄거리의 연극이다. 2008년 배우 박준규, 오정해씨 등이 주연을 맡아 무대에 올려진 뒤 2년 넘게 롱런한 흥행작이다.

대법원 산하 부모교육연구회는 서울가정법원에서 협의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부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찾다가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리게 됐다. 모든 배역을 전문 연기자들이 담당하되 법관 역할만 실제 판사가 맡는다.

이날 오디션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캐스팅 1순위에 꼽힌 사람은 김용희(37·34기) 수원지법 판사다. 그는 대사 10여줄을 연기하는 공통 과제에서도 미리 동선까지 준비해 무대 전체를 장악했다.

김 판사는 과거 군법무관 시절 강원연극제에서 최우수 연기상까지 받았다. 영화 ‘극적인 하룻밤’ ‘탐정: 더 비기닝’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신들린 듯한 연기에 심사위원들은 “판사만 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배우”라며 찬사를 보냈다. 대사를 마친 후에도 김 판사는 한동안 자신이 연기한 배역의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얼굴을 감싸 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혼에 대한 생각 바꿀 수 있기에”

김 판사는 “법원 업무로 바쁘다 보니 연극과 잠시 멀어졌는데 다시 기회가 와서 반가운 마음에 오디션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들의 ‘열연’도 이어졌다. 한 판사는 대학 시절 익힌 중국어 동화 구연을 보여줬다. 또 다른 판사는 유명 뮤지컬 속 노래 한 소절을 열창해 박수를 받았다.

이 작품의 연출자로 심사에 참여한 노준성 감독은 “작품 준비를 위해 가정법원을 찾았다가 이혼 절차를 밟고 있던 부부가 교육 동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접했다”면서 “현실의 판사가 작품에서 직접 연기를 하면 이혼을 앞둔 부부들이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작품의 원작자인 고혜정 작가는 “많은 부부가 가정과 아이들을 지키는 데 내 작품이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5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공연

‘여보, 고마워’는 5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중구 문화일보홀에서 상연된다. 법원은 협의이혼을 앞둔 부부들을 관객으로 초청할 계획이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6-04-0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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