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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금관’ 나온 경주 서봉총, 90년 만에 발굴

‘봉황 금관’ 나온 경주 서봉총, 90년 만에 발굴

입력 2016-04-02 10:18
업데이트 2016-04-02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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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오는 11일 조사 시작

1926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조사를 진행해 화려한 봉황 장식 금관을 발견한 경주의 신라 무덤 서봉총(瑞鳳塚)이 90년 만에 발굴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오는 11일부터 10월까지 노서리 129호분이라고도 불리는 서봉총을 발굴한다고 2일 밝혔다.

서봉총은 표주박 형태의 무덤으로, 일제강점기 조사는 학술 목적이 아니라 철도 기관차 차고를 건설하기 위해 봉분의 흙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당시 조사에서는 높이 35㎝, 지름 18.2㎝인 금관(보물 제339호)을 비롯해 금공예품, 토기, 철기, 장신구 등 유물 570여점이 출토됐다. 경주 고분에서 금관이 나온 것은 금관총, 금령총에 이어 세 번째였다.

특히 일본에 머물고 있던 스웨덴 황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경주를 방문해 금관을 수습했는데, 스웨덴의 한자 표기인 ‘서전’(瑞典)과 금관의 ‘봉황’(鳳凰) 장식에서 한 글자씩을 따 무덤의 명칭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한다.

또 서봉총 조사 책임자였던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는 평양부립박물관장으로 재직하던 1935년 금관을 기생의 머리에 씌운 뒤 사진을 찍어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는 서봉총에 대한 보고서를 남기지 않았고, 금관을 비롯한 유물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됐다. 박물관은 지난해에야 발굴조사 보고서를 발간했다.

박물관은 이번 조사에서 무덤이 어떻게 조성됐는지 확인하고, 시신이 묻힌 매장주체부 주변에서 유물을 찾아낼 계획이다.

발굴현장은 지난해 금관총 조사처럼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나무 덧널을 덮은 돌무지를 얼마만큼 해체했는지 알 수 없어서 조사 기간을 예상하기 어렵다”면서 “만약 일제 조사단이 돌무지를 완전히 걷어냈었다면 기간이 짧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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