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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7>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7> 광주 학운동 예술마을

입력 2016-04-01 17:44
업데이트 2016-04-02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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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오르내리듯 일상이었다 낫질도 붓질도

3월 중순, 햇살부터 서울과 다른 이곳은 벌써 봄기운이 완연하다. 성질 급한 꽃들은 벌써 폭죽을 터트리며 봄을 축복한다. 광주 무등산 아래 학운동으로 가는 길은 그렇게 봄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학운동은 무등산 서쪽 아래 위치한 학동과 운림동을 아우르는 행정명이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주시 동구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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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등산로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은 의재 허백련 화백을 기리며 그가 활동했던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그의 사후 20여년이 지나고 세워졌다. 현대적 건물이면서도 무등산 자연 속에서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무등산 등산로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은 의재 허백련 화백을 기리며 그가 활동했던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그의 사후 20여년이 지나고 세워졌다. 현대적 건물이면서도 무등산 자연 속에서 튀지 않고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학운동 예술마을은 증심사 아래 의재미술관에서 시작해 학동의 홍림교에 이르는 3㎞ 정도의 의재로를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을 일컫는다. 의재미술관 외에도 현대미술의 무등 현대, 추상 설치미술의 우제길, 지역 예술의 중심인 국윤미술관과 문화예술공간, 예술가 레지던시, 교육원 등이 이 일대에 있다. 맛집과 카페 등도 늘고 있어 등산객뿐만 아니라 젊은 층 사이에서도 뜨는 명소로 꼽힌다.

학운동 예술마을을 이야기할 때 의재미술관의 주인공 의재 허백련(1891~1977) 화백을 빼놓을 수 없다. 학운동 예술마을의 중심을 이루는 행정상의 거리 이름 또한 ‘의재로’로 칭할 만큼 의재는 광주는 물론 남도를 상징하는 예술가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운림산방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공재 윤두서, 강진의 다산 정약용, 진도의 소치 허련 등의 영향을 받아 남종화의 꽃을 피웠다. 최근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열린 의재 허백련 특별전에서는 ‘전통회화 최후의 거장’이라는 수식어가 그의 이름 앞에 붙었다. 광주에서는 광주 미술의 오늘을 이야기할 때 꼽는 두 거장 중의 한 명으로 의재를 지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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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미술관 전경. 소나무 뒤편 2층 건물은 전시관, 앞쪽 낮은 건물은 차 문화교실로 쓰이는 삼애헌이다.
의재미술관 전경. 소나무 뒤편 2층 건물은 전시관, 앞쪽 낮은 건물은 차 문화교실로 쓰이는 삼애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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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재미술관 내부 모습. 무등산 증심사 계곡을 오르는 의재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의재미술관은 그가 무수히 오르내렸던 증심사 계곡길을 모티브 삼아 설계됐다. 사진 너머 통로는 경사져 있으며 그 끝은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에 이른다.
의재미술관 내부 모습. 무등산 증심사 계곡을 오르는 의재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의재미술관은 그가 무수히 오르내렸던 증심사 계곡길을 모티브 삼아 설계됐다. 사진 너머 통로는 경사져 있으며 그 끝은 그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상설 전시관에 이른다.
의재미술관이 문을 연 것은 그가 무등산 자락에 묻히고도 20여년이 지난 2001년이었지만 무등산 자락에서의 그의 삶은 중년 이후 30여년에 이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의재가 무등산 자락에 자리잡게 된 동기는 미술에 있지 않다. 한국 전쟁 후 ‘사람들이 잘살아야만 예술도 있다’는 생각으로 선진 농업을 가르치는 농업기술학교를 증심사 옆에 세우면서였다. 이후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업기술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의재는 계속 이곳에 머무르며 다른 사회 운동을 펼쳤다.

그에게 그림은 일상이었다. 그가 농업학교 건너 계곡 너머 작은 집 춘설헌에 거주하면서 자연스레 작업실도 겸하게 됐다. 의재의 손자이자 동양화가인 허달재 의재미술관 관장은 “기술이 아닌 스스로 갈고닦음으로써 그림이 완성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살아생전 그림으로 내세운 것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냥 그렸을 뿐이다. 미술관을 열라는 주위의 성화에도 잘 살면 후대 누군가가 알아서 세워 줄 것이라며 연연해하지 않았다. 오로지 무등산을 오르내리며 농업에 이어 차 문화 운동 등 사회 운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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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운동 예술마을의 중심 건물 중 하나인 우제길미술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전시관 겸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학운동 예술마을의 중심 건물 중 하나인 우제길미술관.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로, 전시관 겸 복합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의재의 가장 한국적이면서 호남적인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스로 그림을 내세우지 않았지만 사람들과 남도를 사랑하며 그의 그림을 완성해 갔다. 후학들은 알아서 모여들었다. 홍림교 못 미쳐 의재로 길가에 세워진 또 하나의 역사적인 명소인 연진미술원은 그렇게 모여든 후학들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다.

의재가 세운 농업기술학교 자리에 세워진 의재미술관은 산속에 있는 현대적인 건물임에도 튀지 않고 주변 환경과 어우러진다. 그러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잃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자기 세계를 열고 실천하며 인간을 사랑한 의재와 닮아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작은 건물 안에는 등산로처럼 비스듬히 경사진 통로를 설치하고 8폭 병풍처럼 큰 통유리로 창을 만들어 무등산의 풍경을 담았다. 전시실 이동 경로 또한 의재가 농업학교와 춘설헌 등을 오갔던 무등산 계곡 길을 재현하려 했다. 이 건축물은 ‘소규모 다기능 건축의 백미’라는 평가를 받으며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을 받았다.

미술관에는 동양화를 중심으로 한 기획 전시와 의재의 작품을 보여 주는 상설 전시가 계속 열린다. 미술관 로비에서 큰 창을 통해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니 8폭 병풍이 생생히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다. 미술관 맞은편 계곡 너머에는 춘설헌과 함께 의재의 무덤이 있으며 의재가 만든 무등산 차밭에서 만든 차를 맛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증심사 너머 의재가 키우던 차밭을 구경할 수도 있다. 4~5월이면 여린 찻잎을 따는 풍경이 장관이다. 미술관 안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보고 느끼는 것이 더 많은 관람, 바로 의재미술관의 특별한 감상법이다.

의재 이후 이 예술마을에 자리잡은 예술가들은 장르를 넘나든다. 현대, 추상 등 저마다 개성이 강하다. 그러한 개성이 그들의 공간마다 담겨 있다. 다른 장르의 매력을 찾아보고 작가의 작업실까지 엿볼 수 있는 것도 이 마을을 돌아보는 방법이다.

사실 무등산은 오래전부터 예술가들을 보듬어온 산이다. 무등산 동쪽에 위치한 담양, 화순은 예부터 가사문학과 누정문화가 발달해 왔다. 정치에 실망하거나 내쳐져 낙향한 문인들을 아끼고 보듬어 당대 최고의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게 했다. 의재와 함께 광주의 대표 미술가로 꼽히는 서양화가 오지호도 또 다른 무등산 자락인 지산동에 거처를 두고 말년을 보냈다. 이 밖에도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예술마을의 중심인 의재로는 국립아시아문화의전당까지 이어진다. 앞으로 이곳을 더욱 주목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여행수첩(지역번호 062)

→가는 길:광주 지하철1호선 학동증심사입구역 하차. 1번 출구 9번 마을버스 종점 하차.

→축제:지난해 무등산 학동 운림동 예술의 거리는 국윤, 무등현대, 우제길미술관, 무등산국립공원사무소, 전통문화관(광주문화재단), 한국제다 등 6개 업체가 협의회를 구성해 무등산문화예술축제를 시범적으로 열었다. 올해는 의재미술관, 증심사, 주변 마을 등의 참여를 도모해 10월 한 달 동안 정식 축제를 개최할 예정이다.

→함께 가볼 만한 곳:의재미술관 바로 위의 증심사를 빼놓을 수 없다. 1200년의 역사를 가진 통일신라시대 사찰로 보물인 철조비로자나불 좌상 등을 품고 있는 무등산 대표 사찰이다. 크지는 않지만 무등산의 둥근 산등성이와 어우러져 아름답다. 점차 모습을 갖춰 가고 있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광주 근대화의 역사가 남아 있는 양림동도 함께 돌아보기 좋다. 증심사 등산로 입구에서 버스나 차로 10여분이면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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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볶음탕
닭볶음탕
→맛집:증심사 아래 운림동 부근은 닭볶음탕이 유명하다. 중앙식당(222-1834)에서는 철판 위에 빨갛게 양념된 닭볶음이 나온다. 나비야 청산가자(263-4477)는 돼지불고기, 바비큐 등이 인기다.
2016-04-02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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