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제나 농약 등 약물을 사용한 살인사건에서 이른바 ‘극약’은 원한 등 감정 문제에, 수면제는 금전 문제에 주로 범행 동기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정효선 경장 등 경북·울산·제주경찰청 범죄분석요원 3명은 경찰청이 펴낸 ‘2016 범죄행동분석연구’에 실은 논문 ‘약물을 이용한 살인사건 분석’에서 2000년대 발생한 약물 살인사건 46건을 분석한 결과, 이런 경향이 보였다고 9일 밝혔다.

　정 경장 등은 살충제나 제초제 등 농약, 사이안화칼륨(청산가리) 등 화학물질은 인체에 치명적인 ‘극약’으로 분류했다.

　분석 결과 극약은 52.4%, 수면제는 53.0%가 가족을 상대로 한 범행에 쓰여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친구나 내연관계 상대방, 이웃 등 주변인이 범행 대상인 경우도 극약 19%, 수면제 23.1%로 면식범이 주로 쓰는 도구라는 경향이 뚜렷했다.

　연구자들은 “약물을 음료수 등에 섞는 수법으로 쉽게 마시게 할 수 있고, 자신이 건네는 음료나 음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신뢰가 쌓인 상대에게 저지르는 범행이므로 가족이나 주변인의 의심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범행 동기는 극약의 경우 원한(38.1%)과 치정(14.3%) 등 감정 문제가 주를 이뤘다. 반면 수면제를 이용한 사건에서는 금전적 이득(38.5%)이 가장 큰 동기였고, 가장이 신변을 비관해 가족을 살해한 범행(23.1%)이 뒤를 이었다.

　정 경장 등은 “극약을 사용한 범행은 가까운 관계에서 가정폭력이나 심리적 갈등 관계가 지속해 상대방에 대한 원한 등 감정이 증폭한 결과 복용하면 즉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치명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수면제 사용 범행은 상대방과 갈등 상황은 적지만, 채무 등 금전 압박을 주는 상대방을 몰래 무력화한 뒤 살해하고 유기하는 등 방법으로 검거를 피하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피의자 중 여성 비율이 극약은 28.6%, 수면제는 46.2%로 다른 도구를 사용한 범행에서보다 확연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약물을 사용하면 범행에 육체·심리적 부담이 덜해 여성이 범행하기 쉬운 것으로 추정된다”며 “여성이 범죄를 은폐하고 주변인을 상대로 범행하는 경향이 있다는 기존 이론과도 들어맞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구입에 제한을 받는 수면제 사용 피의자 가운데는 60대 이상이 없는 반면 극약은 60대 이상 비율이 28.6%였다. 이는 농업 등 일상생활에서 주변에 극약류가 흔해 고령층이 범행에 사용하기 쉬운 탓이라고 이들은 추정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