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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 재난 대비한 매뉴얼 부재’ 제주공항사태 낳았다

‘이례적 재난 대비한 매뉴얼 부재’ 제주공항사태 낳았다

입력 2016-01-26 22:41
업데이트 2016-01-2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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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류객 편의 제공·제설작업 늦어 제주관광 이미지 먹칠
1만명 몰린 극심한 혼란 상황에서도 유관기관 ‘각개약진’

7년 만에 발효된 한파주의보와 대설·강풍특보로 제주 도심에 32년 만의 폭설이 내렸다.

많은 눈으로 제주국제공항의 항공기 운항이 전면 중단돼 제주도 추산 최대 9만7천여명의 내외국인 관광객의 발이 묶였으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에는 제주도와 관계기관의 대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대형 재난에 대한 체계적인 매뉴얼 미비와 위기관리 능력 부재 등 총체적인 문제점이 속속 드러났다.

◇ 이례적 재난…초동 조치 엉망

제주공항은 예상치 못한 강풍과 폭설에 맥없이 40여시간 폐쇄됐다.

제주를 강습한 이번 한파와 폭설이 32년 만에 찾아온 대규모 재해일 정도로 이례적이지만 한국공항공사와 제주도가 이번 사태를 공항의 전반적인 관리상황을 보완하고 체류객의 편의를 개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3∼25일 오전 최대 순간 풍속이 초속 26.5m의 강한 바람이 불었다. 눈도 쉴새 없이 내려 이틀간 최고 13㎝의 적설량을 기록했다. 여기에 기온마저 영하 6.1도까지 내려가 내린 눈을 얼어붙게 했다.

‘전에 없던’ 폭설과 강풍으로 이 기간 1천여편의 항공기가 결항하고 수만명이 체류객이 발생했지만 관계 당국의 준비는 부족하기만 했다.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이번 사태를 빚은 만큼의 대규모 폭설에 대비해본 적이 없다. ‘풍수해(대설) 재난 위기대응 실무매뉴얼’도 지난해 6월에서야 마련했다.

재설차량 4대와 재설용 약품 3만여t으로는 쌓이는 눈을 치우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공항 활주로는 물론, 주차장 등 공항 주변에선 눈이 그친 25일까지 차량 운행이 불편할 정도로 눈이 쌓인 채 있었다.

체류객에 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초동 조치도 엉망이었다.

폭설과 강풍으로 활주로의 운영이 폐쇄된 첫날인 23일 밤부터 공항 여객터미널에서는 6천명이 넘는 체류객 대부분이 이렇다 할 편의 제공 없이 쪽잠을 잤다.

공항공사 측이 자체 보유한 모포 300개와 깔개 100개 등은 대부분 꺼내지도 않았다. 체류인원보다 모포 등의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체류객에 대한 초동 대처가 부족했던 것은 제주도도 마찬가지다.

제주도 등은 2014년 ‘공항 체류관광객 대응체계 구축 계획’을 수립해 교통편 연계와 음식물 제공 등 체류객에 대한 불편을 해소키로 했다.

하지만 이 대응 매뉴얼은 최대 500명을 기준으로만 설정돼 있어 이번 사태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체류객 지원 대책이 태풍 때 500명 정도를 지원하는 것으로 전제해 있다”며 개선이 필요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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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의 제주공항 항공기 중단 사태가 3일째 이어진 25일 제주공항 대합실이 항공기 운항재개를 기다리는 이들로 붐비고 있다. 2016.1.25 << 한라일보 제공 >>
사상 초유의 제주공항 항공기 중단 사태가 3일째 이어진 25일 제주공항 대합실이 항공기 운항재개를 기다리는 이들로 붐비고 있다. 2016.1.25 << 한라일보 제공 >>
◇ “매뉴얼에 공항관련 내용 전무”

제주도가 자연재해에 대비해 만든 ‘2015년 자연재난 표준행동 매뉴얼’에는 ‘공항마비’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이 매뉴얼에는 태풍 홍수, 호우 등 수십 종류의 자연재난에 대비해 유관기관의 예찰 활동과 상황 발생시 공조 체계, 실행 방안에 대해 세세히 규정하고 있다.

이중 대설 매뉴얼을 보면 이번 ‘공항마비’ 상황에 적용할 여지가 있는 규정은 있지만 최근 벌어진 실제 상황에는 적용되지 못했다.

해당 규정은 대설시 국제자유도시건설국장을 재난통제관으로 해 이재민의 발생 현황을 관리하고 이들의 급식과 구호물자를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도가 지정한 유관기관 목록에는 제주공항을 관리하는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는 아예 빠져 있다.

공항 폐쇄로 발이 묶인 승객들은 매뉴얼 상 이재민에 포함되지 않아 역설적으로 도의 체계적인 지원도 받을 수 없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의 한 관계자는 “도의 매뉴얼이 관련법령에 따라 ‘이재민 보호’에 초점을 맞춰 만들어져 있다”며 “관광객 1천만 시대에 주민과 관광객을 분리해 대응하는 현행 매뉴얼은 개선의 여지가 없지 않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지난해 초 기상악화로 발이 묶인 관광객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한 대책을 별도로 마련하도록 한국공항공사 제주지역본부와 각 항공사, 도관광협회 등에 주문했다.

하지만 통합매뉴얼과 별개로 각 기관이 추진하는 대책이 얼마나 실효성을 보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매뉴얼이 과거의 재난사례만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이상기후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 과거 사례에만 집착해 매뉴얼을 만들다 보니 오히려 대응력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 “체류객 대처 매뉴얼 없는 저가항공”

사흘간의 폭설로 폐쇄됐던 제주공항이 지난 25일 운행이 재개된 첫날 공항에는 1만여명의 체류객이 한꺼번에 몰리며 대합실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

대형항공사가 결항 항공기 순서대로 임시편에 손님들을 태운 것과 달리 저가항공이 ‘공항도착 선착순’으로 대기표를 나눠주는 제멋대로 기준을 세우면서 빚어진 일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돌아가고 싶은 승객들이 너도나도 공항으로 밀려들면서 혼잡이 생겼다.

이는 저가항공사들이 대처 매뉴얼 없이 자의적인 기준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먼저 체류한 승객들에게 우선순위를 주려면 저가항공사 직원들이 일일이 연락을 취해야 하는 등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절차도 까다로워지는데 현장 선착순 방식은 이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업무 편의를 위해 저가항공사가 공항불편 상황을 초래한 것이다.

비용절감을 이유로 재난 상황에 대비한 ‘문자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은 것도 혼란 상황에 한몫했다.

문자 시스템이 있으면 먼저 결항한 항공기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 순서대로 임시편 항공기에 자동 등록되고, 이런 상황은 승객에게 문자로 전송된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대체 항공편의 출발시각을 안내받은 승객들은 공항에서 대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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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긴 줄이 늘어선 저가항공사 카운터와 바로 오른쪽 한적한 대한항공 항공사 카운터가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왼쪽 긴 줄이 늘어선 저가항공사 카운터와 바로 오른쪽 한적한 대한항공 항공사 카운터가 대조적인 모습을 이루고 있다. 연합뉴스.
◇ 혼란상황 통제 세부 매뉴얼도 부재

사상 초유의 제주공항 항공기 운항 중단 사태로 빚어진 극심한 혼란 상황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유관기관 간 협조 등 세부사항을 담은 매뉴얼도 부족한 실정이다.

폭설과 강풍으로 주말인 지난 23일 공항 활주로가 전면 통제되고 나서 항공기 정상 운항이 이뤄지는 동안 제주공항은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제주공항 대합실 곳곳에서 체류해야 했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내외국인 관광객들은 더디게 이뤄지는 상황에 거세게 항의하며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국토교통부의 항공기 운항 재개 결정이 나온 뒤에는 한꺼번에 몰린 체류객으로 제주공항은 북새통을 이뤘다.

국제선 출국장의 경우 중국인 단체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공항입구에 정차하는 순간 쏟아져 나오는 중국인 여행객들로 공항은 통제불능 상태가 됐다.

발 디딜 틈 없이 꽉 들어찬 출국장에서 비양심적인 새치기가 잇따랐고 고성과 몸싸움으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제주공항에서 질서유지 업무를 맡은 제주자치경찰의 인원은 17명뿐이었다.

항공기 운항이 재개된 25일 오후 9시부터 11시까지 공항 밖 극심한 교통체증 때문에 75명의 인력이 보강됐을 뿐, 이 2시간을 제외한 나흘간 17명의 인원이 공항 질서 유지 업무를 맡았다. 이외에 공항 안에 있던 국가경찰인 공항경찰대 병력 30여명이 전부였다.

제주지방경찰청은 제주도의 협조요청 없이 자체 판단으로 극심한 혼잡이 빚어진 25일 하루 2개 중대 300여명의 병력을 투입, 공항 질서 유지에 나서야 했다.

9만명이 넘는 체류객이 발생, 최대 1만명이 넘는 인원이 공항에서 대기하는 매우 급한 상황에서 혼란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유관기관 간 체계적인 협조체계를 담은 세부적인 매뉴얼이 없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예상치 못한 혼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자치경찰의 인력 증원, 국가경찰의 인력 재배치 등을 각 기관이 자체적으로 판단할 게 아니라 효과적이고 체계적으로 위기를 대처할 수 있도록 세부 매뉴얼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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