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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꿈 꾸고 나서 임금 되고…영물로 여겨 악 쫓는 상징

양꿈 꾸고 나서 임금 되고…영물로 여겨 악 쫓는 상징

입력 2014-12-31 17:12
업데이트 2015-01-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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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 삶속에서 양은 어떤 모습?

태조 이성계는 양 꿈을 꾸고 임금이 되었다. 이성계는 초야에 묻혀 지내던 시절 양 꿈을 꿨는데, 꿈속에서 양을 잡으려 하자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나가 깜짝 놀라서 꿈을 깼다.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얘기를 했더니 곧 임금이 될 것이라고 해몽했다. 한자 ‘羊’(양)에서 양의 뿔에 해당하는 ‘??’획과 양의 꼬리에 해당하는 ‘ㅣ’획을 떼고 나면 ‘王’자만 남게 돼 곧 임금이 된다는 것이다. 이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양 꿈은 길몽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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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양동자도(騎羊童子圖). 동자가 흰 양을 타고 있고 주변에 양 두 마리가 함께 가고 있다. 흰 양은 신선과 관련된 그림이나 이야기에서 상서로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기양동자도(騎羊童子圖). 동자가 흰 양을 타고 있고 주변에 양 두 마리가 함께 가고 있다. 흰 양은 신선과 관련된 그림이나 이야기에서 상서로운 이미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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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월력. 1955년 을미년 양의 해에 금융조합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달력. 한 장으로 된 벽보용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흰 양과 검은 양이 한 마리씩, 네 마리가 그려져 있다.
을미월력. 1955년 을미년 양의 해에 금융조합에서 홍보용으로 제작한 달력. 한 장으로 된 벽보용으로, 왼쪽과 오른쪽에 흰 양과 검은 양이 한 마리씩, 네 마리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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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석(羊石).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상으로 무덤, 사찰, 신성한 장소에 설치한다. 사악한 기운을 막고 복을 기원한다.
양석(羊石). 돌로 만든 양 모양의 조각상으로 무덤, 사찰, 신성한 장소에 설치한다. 사악한 기운을 막고 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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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형상의 십이지 신장(神將). 불화 대가 만봉 스님이 1977년 그린 십이지신도 중 양. 우리나라의 십이지신은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표현돼 불교 행사에서 벽사의 의미로 쓰였다.
양 형상의 십이지 신장(神將). 불화 대가 만봉 스님이 1977년 그린 십이지신도 중 양. 우리나라의 십이지신은 불교의 영향으로 불교를 수호하는 신장으로 표현돼 불교 행사에서 벽사의 의미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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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기(丁未旗). 조선시대 의장기로 사용한 육정기(六丁旗) 중 양 머리를 그린 깃발. 깃발의 위쪽엔 신형문, 아래쪽엔 양 머리, 가운데엔 액을 막아주는 부적이 그려져 있다. 주로 임금의 어가나 국장에 사용됐다.
정미기(丁未旗). 조선시대 의장기로 사용한 육정기(六丁旗) 중 양 머리를 그린 깃발. 깃발의 위쪽엔 신형문, 아래쪽엔 양 머리, 가운데엔 액을 막아주는 부적이 그려져 있다. 주로 임금의 어가나 국장에 사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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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羊鼎)의 일부. 왕실 제사 때 삶은 양을 담았던 솥 형태의 제기. 제기 아랫부분에 달려 있는 양 머리 형상 다리 3개가 정을 떠받치고 있다.
양정(羊鼎)의 일부. 왕실 제사 때 삶은 양을 담았던 솥 형태의 제기. 제기 아랫부분에 달려 있는 양 머리 형상 다리 3개가 정을 떠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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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털배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조끼 형태의 겨울용 겉옷. 안에 양털을 댔다.
양털배자. 저고리 위에 덧입는 조끼 형태의 겨울용 겉옷. 안에 양털을 댔다.


양은 옛날 제왕의 꿈이었다. 양과 연관된 한자들도 제왕이 갖춰야 할 덕목과 닿아 있다. 큰 양을 뜻하는 대양(大羊) 두 글자가 붙어 아름답다는 뜻의 미(美)자가 되고, 나(我)와 만나면 옳을 의(義)자가 된다. 선함(善), 상서로움(祥) 등 양과 어우러진 한자는 대부분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양은 십이지의 여덟 번째 동물이다. 시간으로는 오후 1~3시, 달로는 6월에 해당하는 시간신이다. 방향으로는 남남서를 지키는 방위신이다.

양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순박하고 어질고 인내심 많은 동물로 통한다. 성질이 온순해 무리를 지어 살면서도 우위 다툼을 하지 않고 암컷을 독차지하려는 욕심도 부리지 않는다. 순한 눈망울은 평화를 연상케 한다. 반드시 가던 길로 되돌아오는 고지식한 정직성도 있다. 무릎을 꿇고 젖을 먹고 늙은 아비 양에게 젖을 빨리며 봉양해 은혜를 알고 효심을 일깨우는 동물이기도 하다. 다만 일단 성이 나면 참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면도 있다.

속담, 설화 등에 등장하는 양도 이런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못된 시어머니라도 양띠 해엔 딸을 낳아도 며느리를 구박하지 않는다’는 속설은 양이 지닌 효의 이미지에서 비롯됐다. ‘양띠는 부자가 못 된다’는 속담은 양띠 사람은 양처럼 너무 정직하고 정의로워 부정을 참지 못하는 맑은 성품에 근거한다.

낙랑·삼국·고려·조선 등 옛 출토유물과 조각, 그림 등에서 만나는 양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석암리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양 모양의 패옥(佩玉)과 청동제 꽂이장식, 법천리 백제 무덤에서 발굴된 양 모양 청자, 수락암동 고려 고분의 양 벽화,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2양’(二羊) 등은 모두 벽사와 길상을 상징하고, 위기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와 멋을 느끼게 하는 평화스러운 면모를 드러낸다.

조선시대 그림 중에는 단원 김홍도 등이 그린 ‘금화편양도’(金華鞭羊圖)가 백미다. 어질고 착한 소년 황초평이 신선이 돼 금화산에서 양을 친다는 내용의 ‘황초평전’(黃初平傳)을 소재로 그린 그림이다. 채찍을 들고 있는 소년 ‘황초평’ 뒤로 흰 양들이 따르고 있다. 신선이 된 황초평은 기독교 성화에 나타난 양 치는 선한 목자 예수 이미지와 흡사하다.

사람이 양을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약 1만년 전으로 알려졌다. 기원은 불확실하지만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에서 유목민들에 의해 가축으로 길들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양은 유목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지만 농경민족인 우리와는 큰 인연이 없다. 옛 사람들은 양띠를 생김새가 비슷한 염소띠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양과 관련된 옛 기록은 비교적 적다. 삼한시대에 양을 식용으로 썼다거나 고려 정종 때 개성 근처에서 왕실의 식용으로 양을 길렀으나 사료가 많이 들어 섬으로 귀양 보냈다는 얘기 정도가 남아 있을 뿐이다.

서양도 양을 인간의 이로움을 위해 희생하고자 태어난 동물로서 높은 경지의 도덕성과 생생한 진실을 상징한다고 봤다. 그래서 선량한 사람이나 성직자에 비유되기도 했다. 기독교 문명의 뿌리인 성경에는 양 이야기가 500번 이상이나 인용된다.

속죄양(贖罪羊)이라는 말이 있다. 양이 일찍부터 영험한 동물로 여겨져 제물로 사용된 데서 유래됐다. 동양에서 양은 소·돼지와 함께 제물로 쓰였고, 시대에 따라선 성수(聖獸)로까지 떠받들어졌다. 양 뼈는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영물로 간주되기도 했다. 양의 가죽 옷은 제후나 대부 등 높은 신분의 사람만이 입을 수 있었다. 서양에선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양을 제물로 삼는 번제(燔祭)가 없어졌다.

천성이 착하고 제물로 희생되는 양의 속성이 우리 민족에 비견되기도 했다. 구한말 지사 김종학 선생은 ‘흰빛을 좋아하는 우리 선조는 심약하기 이를 데 없는 산양떼를 빼닮아 오직 인내와 순종으로 주어진 운명에 거역할 줄 모르니…, 슬프다 양떼들이여!’라고 통탄했다.

천진기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양은 희생, 재물, 종교인, 선량한 사람 등을 의미한다”며 “예부터 양띠 해는 그해의 수호신이라 할 양의 성격을 닮아 평온하고 평화로운 한해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고 설명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2015-01-0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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