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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띠해 목장 르포] 굿모닝 히이이잉~새해엔 막 달려요

[말띠해 목장 르포] 굿모닝 히이이잉~새해엔 막 달려요

입력 2014-01-01 00:00
업데이트 2014-01-01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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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 공동목장의 갑오년

우뚝 솟은 한라산을 뒤로 말들이 아스라한 제주 바다를 향해 달음질한다. 새벽녘 혹독한 제주 바람을 뚫고 넓게 뻗친 초원을 떼 지어 달리는 말발굽 소리가 힘차다. 31일 갑오년(甲午年) 말띠해를 맞아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 내 공동목장을 찾았다. 올해는 말띠해 가운데 60년 주기로 온다는 청마(靑馬)의 해다. 말 중에 가장 역동적이고 진취적이라는 청마는 강인한 생동감의 표상이다. 쪽빛 어스름 속 한라마 한 마리가 새해 인사를 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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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많고 돌 많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제주 선인들은 늘 조랑말과 함께했다.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 내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새끼 조랑말 한 마리가 31일 하품을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바람 많고 돌 많은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제주 선인들은 늘 조랑말과 함께했다. 제주 서귀포시 가시리마을 내 조랑말 체험공원에서 새끼 조랑말 한 마리가 31일 하품을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가시리마을은 조선시대 궁중에 진상했던 최고급 말인 ‘으뜸말’(甲馬)을 기르던 국영 목장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공동목장으로 바뀐 곳이 지금은 제주 목축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원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지금종 조랑말박물관 관장)

지금종 제주 가시리 조랑말박물관 관장은 “고려 시대부터 말을 키웠던 제주 중산간 지역 13개 산마장 가운데 최대 규모를 지닌 녹산장(馬場)과 갑마장(甲馬場)이 이곳”이라면서 “제주도는 사방이 바다로 막혀 있고 초지가 좋아 그야말로 천연 목장 지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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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마’들이 가시리마을 내 넓고 곱게 뻗은 초원을 떼 지어 거닐고 있다. 한라마는 토종 제주마와 영국산 경주마인 ‘서러브레드’가 교배해 나온 말로 제주 사육농가의 주요 소득원으로 꼽힌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한라마’들이 가시리마을 내 넓고 곱게 뻗은 초원을 떼 지어 거닐고 있다. 한라마는 토종 제주마와 영국산 경주마인 ‘서러브레드’가 교배해 나온 말로 제주 사육농가의 주요 소득원으로 꼽힌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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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내 조성된 초원을 힘차게 달리고 있는 한라마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마을 내 조성된 초원을 힘차게 달리고 있는 한라마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해발 90~570m 규모의 한라산 고산 지대와 서귀포 해안 지대를 연결시켜 주는 산간마을인 가시리에는 750㏊(227만여평)에 이르는 평지가 펼쳐져 있다. 사방 천지가 활짝 트인 초원 너머로 설오름과 따라비오름 등 크고 작은 오름이 곳곳에 솟아 있다. 오름은 100여만년 전 바다 밑에 잠겼던 한라산이 제 열기를 견디다 못해 만들어 낸 불꽃들이다.

말을 기르기에는 천혜의 자연조건 덕분에 이곳은 13세기 고려말 원나라의 간섭기 때부터 목축문화가 발달했다. 새벽 안개가 걷히자 수백년 말을 길러 온 초원이 화답이라도 하듯 눈앞에 멀리 펼쳐졌다. 말의 고장이 새해 갑오년을 맞아 한 단계 도약을 꿈꾸는 듯했다. 먼저 제주 토종말로 통하는 ‘조랑말’이 눈에 띄었다.

과실나무 아래를 지나다닌다고 해서 과하마(果下馬)로 불렸던 조랑말은 천연기념물로 2000년부터 ‘제주마’로 통일해 부르고 있다. 눈에 띈 조랑말의 이름은 ‘쪼랭이’다. 목과 다리가 짧고 몸집도 다른 말보다 작았다. 흑토색에 가까운 털에는 윤기가 흘렀고 배는 볼록 튀어나와 친근했다. 이곳에서 말을 돌보는 우승수(56)씨는 “조랑말은 겉보기엔 우습게 보여도 제주의 눈바람을 이기고 커서 체력이 강하고 지구력은 세계 최고”라면서 “방목하는 만큼 이곳 말들을 키우는 건 자연이 7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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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구간의 ‘쫄븐’(짧은의 제주 사투리) 갑마장길이 시작되는 곳에 말들과 말몰이꾼을 뜻하는 ‘말테우리’ 조형물이 있다. 이 길은 가시리마을이 2012년 11월 새롭게 문을 연 트레킹 코스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10㎞ 구간의 ‘쫄븐’(짧은의 제주 사투리) 갑마장길이 시작되는 곳에 말들과 말몰이꾼을 뜻하는 ‘말테우리’ 조형물이 있다. 이 길은 가시리마을이 2012년 11월 새롭게 문을 연 트레킹 코스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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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리마을 주민이 31일 조랑말박물관에 전시된 제주 전통 비옷인 ‘도롱이’를 만져 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가시리마을 주민이 31일 조랑말박물관에 전시된 제주 전통 비옷인 ‘도롱이’를 만져 보고 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가시리에는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고 있다는 ‘잣성’도 남아 있다. 잣성은 조선시대 국영 마장에 해당하는 ‘국마장’(國馬場)의 경계를 나타내는 돌담이다. 잣성 길을 걷다 보면 크고 작은 농경지를 두른 밭담과 함께 끝없는 돌담이 이어진다. 목동을 일컫는 제주말 ‘말테우리’의 임시 거처인 테우리막, 말 급수통 등 옛 목축문화의 유물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동안 공동목장의 틀만 간신히 유지해 오던 마을 주민들의 새해 소망은 특별하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손님맞이에 나선 주민들은 새해엔 제주 말 문화가 널리 알려지길 기원한다. 가시리마을에서 갑마장 등 600년 제주 목장의 문화가 발굴되고 전시된 지는 5년이 안 된다. 2009년 지 관장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이 사회적 마을 공모에 나섰고 이후 목장문화 발굴에 탄력이 붙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과 함께 문을 연 조랑말 체험공원 등은 아직까지 수익이 없다.

가시리마을의 김영일(56) 이장은 “갑오년 새해에는 마음 놓고 말을 탈 수 있는 승마길을 조성할 계획”이라면서 “제주의 소중한 말 문화가 보존되고, 공원과 박물관이 널리 알려져 마을에 활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지 관장 역시 “마을 내에도 역사문화 자원에 대한 자부심이 적지 않다”며 “갑오년 새해에는 마을 발전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제주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2014-01-0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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