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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의 여운, 카메라로 그렸다

설산의 여운, 카메라로 그렸다

입력 2011-01-07 00:00
업데이트 2011-01-07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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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권부문 ‘산수와 낙산’ 展

5m 길이의 초대형 화면에 가득찬 설산(雪山)의 풍광이 시야를 압도한다. 흑백의 대비와 전통 산수화 같은 익숙한 구도로 인해 얼핏 수묵화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헐벗은 나뭇가지에 내려앉은 잔설의 무게감과 눈에 채 가려지지 않은 갈색 숲의 색감까지 디테일하게 살아 있는 풍경 사진이다.

휘날리는 눈발 아래 온몸을 뒤채는 격정의 파도를 포착한 해변 사진은 또 어떤가.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눈밭 위에 펼쳐진 거센 바다 풍경은 초현실적인 느낌마저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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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 연작 중 강원도 홍천의 설경을 포착한 작품 ‘무제 #2030’.
‘산수’ 연작 중 강원도 홍천의 설경을 포착한 작품 ‘무제 #2030’.
●전통 수묵화 색감 살린 풍경 돋보여

중견 사진작가 권부문(56)의 ‘산수’ 연작과 ‘낙산’ 연작이다. ‘산수’는 설악과 홍천· 평창 등 강원도 산야의 설경을, ‘낙산’은 눈내리는 동해안 낙산의 해변을 촬영한 것이다.

‘산수’ 12점과 ‘낙산’ 22점을 한자리에 모은 권부문의 개인전 ‘산수와 낙산’이 오는 12일부터 2월 27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본관과 신관을 통째로 사용하는 대형 전시다. 2007년 아르코미술관 전시 이후 이처럼 큰 규모의 개인전은 3년 만이다.

‘낙산’ 연작은 2007년 소개된 적이 있지만 ‘산수’ 연작은 처음 선보이는 신작이다. 10년 전 강원도 속초에 둥지를 튼 작가가 지난 한해 집 근처 겨울 설산을 누비며 찍은 것들이다. ‘산수’란 제목은 촬영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전통 산수화가 지향하는 태도를 닮고자 하는 의미에서 따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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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권부문 작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권부문 작가.
“풍경은 바람 속의 구름 같은 것으로 보는 자의 마음 상태에 따라 드러난다.”고 말하는 작가는 사진 안에 어떤 메시지나 이야기도 담으려고 하지 않는다. 눈앞의 대상이 본연의 모습을 가장 잘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한 뒤 그 재현의 기록을 관객 앞에 내놓을 뿐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옛 사람들이 전통 산수화를 수기(修己)의 도구로 삼았듯 관객이 자신의 사진 앞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발견하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때문에 그의 카메라는 절경이나 명산을 따로 찾지 않는다. 설악산이라 해도 남들이 눈여겨 보지 않는 평범한 곳에 시선을 둔다. 작가는 “그 앞에서 오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산이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려고 기막힌 이미지를 만들어낸다.”고 귀띔했다. 사진 속 풍경 안에 등산로 같은 인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점도 흥미롭다.

●절경 아닌 평범한 곳의 진면목 조명

미대 진학을 꿈꾸다 고교시절 사진에 빠져 중앙대 사진학과에 진학한 작가는 1970년대 급격한 근대화에 놓인 사회상을 반영한 거칠고 어두운 사진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대에 이르러 사진을 재현의 역사, 즉 소재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이미지보다 자기 성찰의 방법으로 삼는 길에 주목하게 된다.

이 같은 작업 방식을 굳히게 된 계기는 2000년 북유럽 여행이다. 시베리아를 거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핀란드, 노르웨이 등 삭풍과 동토의 땅에서 느꼈던 감성은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를 주요 배경으로 한 ‘북풍경’ 연작으로 남았다. 그후로도 프랑스, 스위스, 사하라의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풍경에 대한 정신적 탐험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을 자기 성찰의 방법으로 삼아

그의 작업은 미국과 영국의 출판사가 작품집으로 발간할 정도로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일본 요코하마에서 개인전을 열 예정이다. “현장에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사진작가의 숙명”이라는 그는 “본 것을 재현하는, 사진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02)720-152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2011-01-07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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