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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60년만에 아버지 만난 아들 “지금껏 제사 지내왔는데…”

입력 2010-11-01 00:00
업데이트 2010-11-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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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가족 533명 이틀째 상봉 안팎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북측 90세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신 줄 알고 지금껏 제사도 지내 왔어요.”(남측 61세 아들) 지난 3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이산가족 1차 상봉행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한편의 슬프고도 감격스러운 가족 드라마였다. 60년간 헤어져 있던 남북 이산가족 533명이 서로 부둥켜안고 함께하지 못한 날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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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로 얼룩진 ‘짧은 만남’
눈물로 얼룩진 ‘짧은 만남’ 남북이산가족 1차 상봉 행사 이틀째인 31일 금강산호텔에서 오찬을 마친 뒤 버스를 타고 행사장을 떠나는 북측 가족 김현군(75·오른쪽)씨가 눈물을 닦는 남측 가족 김성배(68)씨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북측 가족 97명과 남측 436명은 30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열린 단체상봉에 이어 환영만찬을 함께 하며 분단의 아픔을 달랬다. 이어 31일 금강산호텔에서 개별상봉과 점심식사를 한 뒤 2차 단체상봉을 하면서 재회의 기쁨을 나눴다. 지난 60년간 만나지 못했거나 생전 처음 만나는 상황의 어색함도 잠시, 이들은 어느새 한 가족, 한 민족으로 묶여 있었다. 2차 단체상봉에서는 북측 사촌동생 김은숙(83)씨를 만나러 온 남측 김운한(88)씨가 서로 다른 가족으로 참가한 북측 김재국(83)씨를 어릴 적 고향에서 헤어진 8촌 동생으로 알아차리고 상봉하는 극적 인연을 보여 줬다.

특히 6·25전쟁 참전 전사자로 처리돼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를 만난 가족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렀다. 북측 최고령이기도 한 리종렬(90)씨는 전쟁 통에 입대 당시 생후 100일 된 갓난아기였던 아들 민관(61)씨를 만나 감격을 더했다. 당시 리씨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아들 이름을 지어 주고 떠났고, 민관씨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한테 받은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 왔다. 민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으로 믿고 이산가족 상봉에 신경 쓰지 않다가 북측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준 덕분에 상봉을 이뤘다. 감정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하던 리씨는 10여분이 지나서야 진정된 듯 “민관아, 지난 60년간 하루도 너를 잊지 않았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리씨가 북한에서 재혼해 얻은 아들 명국(55)씨도 함께 나와 남측 이복형을 처음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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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모녀의 입맞춤
남북 모녀의 입맞춤 지난 30일 오후 금강산 면회소에서 남측 최고령 상봉자인 김례정(오른쪽) 할머니가 북측 딸 우정혜씨를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고 있다.
금강산 사진공동취재단


역시 국군 출신인 리원직(77)씨는 남측 누나 운조(83)씨와 동생 원술(72)씨 등으로부터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듣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경북 선산이 고향인 리씨는 6·25전쟁 때 청도로 피란을 갔다가 국군에 징집된 후 소식이 끊겼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스무살 때 군대에 갔다가 전사자로 통보된 윤태영(79)씨는 남측 동생 4명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얼굴을 확인하다가 막내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애통해했다. 형의 전사 통보를 받았으나 그의 사망 날짜를 정확히 몰랐던 동생들은 9월 9일을 기일로 정해 형의 제사를 지내 왔다.

면사무소 사환으로 일하다 전쟁이 터져 국군에 자원입대했다는 방영원(81)씨는 형수 이이순(88)씨를 만나 돌아가신 어머니와 형의 소식을 듣고 애통해했다. 방씨는 또 누나 순필(94)씨가 한달 전부터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이번에 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안타까워했다.

남북 이산가족 중 최고령인 김례정(96)씨는 북측 딸 우정혜(71)씨를 만나자 “꿈에만 보던 너를 어떻게…. 너를 만나려고 내가 지금까지 살았나 보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혜씨는 “저는 잘 있습니다.”라며 어머니를 품에 안은 뒤 가족사진과 훈·포장 20여개를 꺼내 보여 줬다. 단체상봉 때 치매로 북측 여동생 전순식(79)씨를 알아보지 못했던 남측 전순심(84)씨는 밤새 잠시 정신이 맑아져 순식씨의 이름을 불렀다고 가족들이 전했다.

남북 가족들이 정성껏 마련한 선물도 눈길을 끌었다. 북측 오빠 정기형(79)씨에게 남측의 세 여동생 기영(72)·기옥(62)·기연(58)씨는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떡·미역 등으로 미리 차린 생일상 앞에서 절을 올렸다. 여동생들이 내민 선물은 털신과 가죽신 등 신발 4켤레. 오빠가 60년 전 아버지를 대신해 인민군의 짐꾼으로 따라나섰다가 신발을 잃어버렸다는 말을 동네 사람에게 전해 들은 기억이 사무쳤기 때문이다. 북측 작은아버지 윤재설(80)씨를 만난 남측 윤상호(50)씨는 재설씨의 북측 아들인 수공예 전문가 윤호(46)씨가 골뱅이를 재료로 만든 꽃병과 남측 고향집 모습을 담은 목공예를 받았다. 상호씨는 “얼굴도 보지 못한 사촌인데 정성 어린 선물을 받으니 감동적”이라고 화답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상봉 테이블마다 폴라로이드(즉석) 사진기로 가족사진을 2장씩 찍어 제공했다. 금강산관광 중단으로 디지털카메라 사진을 인화할 곳이 없어 가족들이 안타까워하자 마련한 것이다.

김미경기자·금강산공동취재단

chaplin7@seoul.co.kr
2010-11-01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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