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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소설보다 더 각박” 삭막한 가족의 의미 넌지시…

“현실은 소설보다 더 각박” 삭막한 가족의 의미 넌지시…

입력 2010-05-01 00:00
업데이트 2010-05-01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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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8년 만의 새 장편소설 ‘빈집’

머릿속에 장면 하나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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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주영 연합뉴스
소설가 김주영
연합뉴스
어둑해진 시골 마을 어느 집에 세 식구가 모처럼 둥근 밥상에 둘러앉았다. 그러고 ‘수저를 꽂아도 넘어지지 않을 만큼 뻑뻑하게 끓인 고깃국’을 먹는다. 아비는 딸아이 그릇에 밥 한 숟갈을 듬뿍 떠 얹어 준다. 무뚝뚝하게 던진 “더 묵어라.”는 말과 함께다. 또 제 아낙의 국그릇이 절반 남짓 비자 자신의 국그릇을 들어 말없이 부어준다. 애써 ‘행복’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 가족네들의 풍경이다.

하지만 김주영(71)이 8년 만에 그려낸 장편소설 ‘빈집’(문학동네 펴냄)에 등장하는 일그러진 관계의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그저 분에 겨운 일이었다. 묵묵히 수저질만 하며 그릇을 비워 가던 어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내가 몹쓸 년”이라고 자복하며, 모처럼 훈훈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행복조차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다.

이유 없이 2~3일씩 무시로 가출하는 어미도, 인이 박힌 노름꾼으로 모처럼 돌아오면 2~3일 머물다가 사라지는 아비도, 부모의 상습적 부재와 핍박 속에 자라는 열 다섯 딸 ‘어진’에게도 이러한 모습은 자신들 몫이 아니며 그나마도 찰나에 가까울 뿐이다. 이들은 또다시 깊은 어둠 속으로 침잠한다. 마치 이런 관계가 가족의 본연의 모습인 것처럼.

집은 그렇게 늘 ‘빈 집’으로 덩그러니 남게 된다.

‘객주’, ‘홍어’의 김주영은 올해로 등단 40년을 꼬박 채웠다. 장편소설 ‘멸치’ 이후 8년 동안 지켜온 침묵 이후 내놓은 신작은 아버지, 어머니, 자식으로 이뤄진 가족의 의미, 삶의 비의(秘意) 등을 넌지시 보여주며, 존재와 존재를 이어주고 엇갈리게 하는 공간, ‘집’의 기능과 역할을 배경으로 깔아둔다.

가족과 집은 여러 형태로 변주된다.

아름드리 오동나무 한 그루 심어진 데 대한 자부심 하나로 불안한 가족 관계를 버티게 해 주는 어진이네 식구들의 집, 어진의 배다른 언니 ‘수진’이와 그 어머니 가족이 전국 산골과 어촌을 전전해야만 했던 집, 어진의 어머니가 남편의 검속을 막기 위해 형사와 살림을 차렸던 함석 지붕집, 어진의 고통받는 시집, 껍데기만 남은 수진의 횟집, 그리고 어진과 수진이 함께 떠난 그 길 위의 민박집 등이다. 모든 집은 집의 모양이 아예 없거나 모양이 있으면 그 내용-가족 또는 가족 간의 정-이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일그러지고 삭막하기 짝이 없는 가족 관계지만 ‘집’은 여전히 희망과 애틋한 정을 품고 있다. 비록 가짜로 드러났지만 아버지는 숨지기 전 오동나무 옆에 금붙이 패물을 고이 묻어 어진에게 남겨 준다. 어린 시절의 핍박과 학대에 대해 “왜 그랬어요?”라고 묻는 결혼한 어진에게 “글쎄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고 덤덤히 대답하는 것으로 미안함을 표현하는 어머니 역시 가족의 비애(悲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주영은 “현실은 소설보다 더 각박한 가족 관계가 얼마나 많으냐.”면서 “삭막한 가족의 이미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전작들과는 또 다른 내용의 가족소설을 선보이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주영 특유의 굵직한 서사는 여전하지만 ‘홍어’, ‘객주’, ‘멸치’ 등에서 쉬 보이지 않던 불안함과 쓸쓸함이 계속되는 점은 다소 낯설다.

진정한 가족과 집을 찾으려 수진과 함께 떠난 여정에서 또다시 홀로 남게 된 여진이 망망한 바다를 바라보던 모습과 심정을 떠올리면 먹먹해진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2010-05-0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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