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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렇게 보내”…유족들 눈물

“어떻게 이렇게 보내”…유족들 눈물

입력 2010-01-09 00:00
업데이트 2010-01-0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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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년 가까이 지나도록 시신을 가슴 속에만 묻어야 했던 유족들은 뒤늦게 치러진 장례식에서 애통함에 눈물을 쏟았다.

 최근 한파가 한풀 꺾이긴 해도 여전히 영하 날씨를 보인 9일 오전 시신이 안치된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대병원에서 발인식이 시작되자 유족들은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한결같이 비통한 표정이었다.

 지난해 1월20일 참사로 숨진 철거민 5명의 시신이 병원에 안치된 지 꼭 355일 만에 상주들이 영정 앞에 잔을 올리는 것으로 발인식이 시작되자 유족들은 내내 고개를 떨어뜨린 채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전국철거민연합회의 한 회원이 “열사 다섯 분을 이제야 모시는 부끄러움을 담아 장례의 예를 올린다.355일 눈물 마를 날이 없었는데 끝내 여기까지 왔다”며 축문을 낭독하자 주변은 한순간에 숙연해지기도 했다.

 한 시간 가량의 발인식이 끝나고 관이 차례로 장례식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유족들은 비틀거리며 다가서 오열했다.

 고(故) 이상림씨의 아내인 전재숙씨는 관이 영구차로 옮겨지는 동안 “어떻게 이렇게 보내”라며 통곡했고,고 윤용현씨의 아내 유영숙씨는 영구차에 실리는 관을 부여잡으며 “이렇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느냐”며 원통해했다.

 이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영결식을 향해 떠난 유가족들은 잠시 운구행렬을 멈추고 명동성당을 찾아 박래군 범대위 공동집행위원장 등 수배자 3명과 만나 위로의 말을 나눴다.

 추운 날씨 속에 열린 영결식에선 야당 대표들이 조사(弔詞)를 읽었고,이어진 진혼무와 조가(弔歌) 공연으로 숨진 철거민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했다.

 영결식 내내 비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던 유족들은 행사 막바지에 무대에 올라 장례를 함께 치른 시민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영결식 후 운구차는 눈발이 흩날리는 가운데 노제가 열린 용산참사 현장으로 향했고,시민 장례위원 등 경찰 추산 2천500명의 추모객(장례위원회측 추산 5천명)은 2개 차로로 운구 행렬을 뒤따랐다.

 노제는 참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울 한강로 남일당 건물 앞에서 송경동 시인의 조시(弔詩),문정현 신부의 조사 낭독,진혼굿,분향·헌화 순으로 1시간가량 이어졌다.

 문정현 신부는 “참사 이후 살아간 하루하루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그래도 우리의 투쟁이 헛되지 않았다”며 “앞으로 공동체를 생각하는 재개발이 이뤄져 다시는 이 땅에서 용산참사가 재발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오후 6시20분께 노제가 끝난 뒤 고인들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하관식을 위해 고 전태일 열사가 묻힌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했다.

 한편,용산참사의 진압과정에서 숨진 고 김남훈 경사의 아버지는 장례식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지만,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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