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사람이 ‘시경’을 배우지 않으면 담장을 마주보고 서 있는 것과 같다.”고 중요성을 역설했다. 제자들에게는 ‘시경’을 읽으면 “날짐승과 들짐승, 풀과 나무의 이름에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多識於鳥獸草木之名)”고 충고했다.
실제로 ‘시경’에 나오는 하나하나의 시에는 예외가 없을 만큼 온갖 동물과 식물의 이름이 언급돼 있다. 예나 지금이나 ‘시경’을 공부하는 이들은 다양하기 이를 데 없는 동식물의 출현에 혼란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청대에 새로운 학풍으로 자리잡은 고증학은 공자의 가르침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 결과 ‘시경’에 나오는 물명(物名·사물의 이름)을 풀이한 연구서가 줄지어 나왔고, 이런 분위기는 조선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명다식(詩名多識)’(정학유 지음, 허경진·김형태 옮김, 한길사 펴냄)은 바로 ‘시경’에 등장하는 생물의 정체성을 규명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저술이다. 쉽게 말해, 시경에 이름이 나오는 동식물을 망라한 ‘생물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은이 운포 정학유(1786∼1855)는 다산 정약용의 아들이다.‘시명다식’은 그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학문을 하고자 했던 아버지의 뜻을 올곧게 이어받았음을 증명한다.
‘다식(多識)’은 제자들에 대한 공자의 충고에서 따왔다. 그러니 ‘시명다식’이란 ‘시경에 나오는 동식물의 이름에서 배울 수 있는 많은 지식’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정학유는 주자의 ‘시전(詩傳)’을 비롯해 육기의 ‘모시초목조수충어소(毛詩草木獸蟲魚疏)’,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 곽박의 ‘이아주(爾雅注)’ 등 매우 다양한 자료를 인용했다. 본문은 식물 170종, 동물 156종 등 326가지 생물을 ▲풀(識草) ▲곡식(識穀) ▲나무(識木) ▲푸성귀(食菜) ▲날짐승(識鳥) ▲길짐승(識獸) ▲벌레(識蟲) ▲물고기(識魚)의 8개 항목으로 나눈 뒤 각각 이름을 제시하고 설명했다. 자료 사이에 혼란이 있을 때는 자신의 생각을 마지막에 적어 넣었다.3만 5000원.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