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판을 따라 분필로 쭉 화살표를 그리면 그 끝에 ‘그 자식’이 튀어나온다. 바닥에 금을 그으면 금 바깥으로 차들이 씽씽 달린다. 시원하게 들이켤 ‘오비’와 ‘카쓰’ 맥주도,‘야동’이 잔뜩 깔려 말 안 듣는 컴퓨터도, 토라진 그녀를 달랠 ‘티켓뜨’와 선물꾸러미도 칠판 속에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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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자식 사랑했네’(22일까지·아트홀 스타시티 2관)는 ‘그 칠판 만능이네’로 요약된다. 두 개로 나뉘는 이동식 칠판이 모든 장면의 배경과 사물이 된다. 장면 순서를 가리키는 숫자와 함께 적힌 ‘나, 너한테 뭐니?’ 등의 한마디 대사만 미리 살펴두면 컴퓨터 시작 화면에 깔린 아이콘처럼 다음에 벌어질 장소와 행위, 분위기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결국 흔해빠진 사랑 얘기’를 창의적인 극으로 끌어올리는 것도 바로 이 칠판의 공이다.
보습학원 국어 강사 미영은 처음 학원에 면접하러 오던 날, 영어 강사 정태의 살짝 근육 잡힌 팔에 반하고 만다.“심각한 관계가 될지 심플한 관계가 될지 난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라며 호기롭게 선택권을 장담하던 미영은 “이렇게 그의 손을 잡고 있으면 심장이 손바닥에 있는 것만 같다.”며 마음을 그만 내려놓는다.
“그 자식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네. 요약하자면, 그 자식 사랑했네.”라는 ‘눈뜨고 코베인´의 노래로 극이 닫히는 설정은 절묘하다. 줄곧 미영의 입에 의존하는 구구절절한 사랑과 헤어짐의 진술에도 불구하고 결국 남은 것은 과거형이 되어버린 기억뿐이기 때문이다. 그래, 요약하자면, 그 자식 ‘사랑했다’는 것뿐. 연인과 헤어진 친구의 긴 넋두리를 들어준다고 생각하면 중간에 댕강 자르고도 싶지만 언젠가 내게도 있었던 과거라고 생각하면 웃고 난 언저리에 신 앙금이 살캉 씹힌다.
극에 더 열중하고 싶다면 나열 맨앞 왼쪽에 앉으면 된다. 원장선생, 과학선생, 학생 현수, 화초에 똥도 될 수 있다. 끝나면 ‘봉투’도 받으니 참고 혹은 주의할 것.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07-21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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