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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 극복한 정크 아티스트 김대진 씨

게임중독 극복한 정크 아티스트 김대진 씨

입력 2011-08-07 00:00
업데이트 2011-08-0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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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화에서나 볼 법한 로봇, 배트맨이 탈 듯한 변신 바이크, 2.7미터에 달하는 ‘거대 정크 로봇’…. 이것들을 모두 폐지로 만들었다는 말에 입이 딱 벌어졌다. 그리고 한 사람이 손수, 취미 삼아 만들었다는 사실에 혀를 내둘렀다. 대체 이것들을 만든 사람의 손은 어떻게 생겼을까? 폐지를 로봇으로 변신시킨 정크 아티스트 김대진 씨(43세)를 만나자마자 몰래 손을 훔쳐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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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손은 평범했다. 그렇다면 손재주가 뛰어나다는 건데, “손재주 전혀 없어요”라고 딱 잘라 말한다. 폐지 조각들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야 하니, 치밀한 설계도면이라도 그리는 걸까? “설계도면도 없는데….” 이 대답은 겸손의 표현일까, ‘나는 천재’라는 공포(公布)일까?

모락모락 피어나는 의문들은 잠시 묻어두고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봤다. “뭔가를 만들 때, 전체적인 모형과 각 부위의 접합 방법이 머릿속에 다 그려져요. 오히려 손으로 표현하는 기술이 약하죠.” 비범한 상상력과 살짝 부족한 손재주, 이 부조화 때문에 김대진 씨는 더 노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작업노트엔 각종 아이디어와 작업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노력의 흔적은 그가 만든 로봇만큼이나 멋졌다.

그는 상상력의 대가이기 전에 몰입의 달인이다. 한번 작업을 시작하면 다섯 시간은 꼼짝 않고 집중한다. 사실 그의 몰입 대상이 정크아트(Junk Art)가 된 건 2003년부터다. 그전엔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 중독 수준이었다. “심할 땐 48시간 식음을 전폐하고 게임만 했어요. 아내를 처음 만난 날도 PC방에 데려가 마법사 캐릭터를 만들어주고 가상공간의 잔디밭에서 데이트한걸요. 아들에게도 어릴 때부터 컴퓨터 게임을 가르쳤고요.”

그랬던 그가 정크아트로 눈을 돌린 건 필연과 우연의 결과다. 그가 근무하는 마산의 한 병원 방사선과에선 X-레이 필름을 담은 상자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버려졌다. 또 응급 환자가 없는 야간근무 시간은 무료했다. 어느 지루한 당직 날, 무심코 집어든 종이상자로 그는 풍차를 만들었다. 그의 첫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작품은 100여 점. 조붓한 방을 가득 채운 작품 중엔 아들 준휘(10세)가 만든 것도 있다. “준휘도 한때 게임중독에 빠졌어요. 그래서 제가 정크아트 작업을 할 때 일부러 준휘를 옆에 앉히고 종이와 가위를 쥐어 줬어요. 그랬더니 얼마 전부턴 컴퓨터 앞에 앉는 대신 스스로 로봇을 만들더라고요.” 본인과 아들 모두 정크아트로 게임중독을 극복한 것이다. 뿐만 아니다. 그가 다니는 교회에서 초등생 대상 정크아트 수업을 열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다. 온라인 게임의 허상에 빠져 현실에 집중하지 못하는 요즘 아이들이 자기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경험을 통해 달라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착안해 그는 정크아트를 통해 게임중독에 빠진 어린이들을 돕기로 했다. 지난 3월엔 300:1의 경쟁률을 뚫고 한 주류업체의 ‘꿈 지원 프로젝트’에서 지원금 1억 원을 받았다. 이 지원금으로 아동용?성인용 정크아트 교재를 만들고, 어린이 대상 정크아트 교실도 열 계획이다. “장기적으론 용접과 기계를 배워 움직이는 금속로봇도 만들고 싶어요. 하지만 폐지로 로봇을 만드는 작업은 계속할 거예요.”

이밖에도 그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한 가지 이야기로 연결해 판타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만들고, 20m 높이의 폐지 로봇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 곧 병원 일을 그만두고 정크 아티스트로서 일로매진할 계획이다. 폐지로 지구를 지키는 로봇을 만드는 그에게 ‘현실의 꿈’을 ‘미래의 현실’로 만드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김대진 씨가 전하는 응원가

게임중독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만든 폐지 로봇 ‘무명소년’. 그가 제 셋째 아들이 돼줬어요. 고독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위력을 발휘하는 이 로봇과 ‘게임의 늪’에서 정크아트라는 ‘꿈의 숲’으로 도약한 저, 어딘가 닮지 않았나요? 세상엔 마우스와 키보드보다 우리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의미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제게 그것은 폐지였지요. 혹시 지금도 모니터 앞에서 하루 종일 키보드만 만지작대고 있나요? 그렇다면 주변을 둘러보세요. ‘로봇’이 되길 바라는 ‘폐지’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릴 없이 시간을 소모하지 말고 나만의 꿈을 창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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