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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경의선 주변 재개발지역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경의선 주변 재개발지역

입력 2010-05-16 00:00
업데이트 2010-05-16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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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가는 풍경들…

아틀란티스/윤성택

바다 속 석조기둥에 달라붙은 해초처럼

기억은 아득하게 가라앉아 흔들린다

미끄러운 물속의 꿈을 꾸는 동안 나는 두려움을 데리고

순순히 나를 통과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러

막막한 주위를 둘러본다 그곳에는 거대한 유적이 있다

폐허가 남긴 앙상한 미련을 더듬으면

쉽게 부서지는 형상들

점점이 사방에 흩어진다 허우적거리며

아까시나무 가지가 필사적으로 자라 오른다

일생을 허공의 깊이에 두고 연신 손을 뻗는다

짙푸른 기억 아래의 기억을 숨겨와

두근거리는 새벽, 뒤척인다 자꾸 누가 나를 부른다

땅에서 가장 멀리 길어올린 꽃을 달고서

뿌리는 숨이 차는지 후욱 향기를 내뱉는다

바람이 데시벨을 높이고 덤불로 끌려다닌 길도 멈춘

땅속 어딘가, 뼈마디가 쑥쑥 올라왔다 오늘은

차갑게 수장된 연대가 그리운 날이다

나는 별자리처럼 관절을 꺾고 웅크린다

먼데서 사라진 빛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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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느리고도 길게 이어지는 삶에서 퇴색의 속성으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가끔은 그 자리에서 멈춰 이편을 바라본다. 도시는 이러한 시간에 대한 경배 없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재개발’이라는 제호 아래 옛 풍경들이 거대한 아파트 그늘에 묻히곤 한다. 깊이 모를 심연처럼 창백하고 적막한 그곳에서 희망은 차고 기억은 시리다. 빈집을 바라보면 볼수록 그 집이 과거를 버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황폐한 날들을 견뎠는지 짐작케 한다. 현실이 추억을 왜곡하듯 어쩌면 이곳은 또 다른 의미로 집들의 어두운 비유일지 모른다. 재개발지역 언덕에서 집들은 낮게 어깨를 맞대며 그렇게 골목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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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하나 사이로 나뉘는 재개발 풍경
울타리 하나 사이로 나뉘는 재개발 풍경
어느 때부터인가 집은 삶과 꿈이 깃든 처소가 아니라 수요와 공급에 의해 거래되는 목록이 되었다. 시간의 흐름 속에 공존하지 못하고 새것에 밀려 사라지는 소모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람살이가 구불구불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길, 차가 다닐 수 없으니 오직 사람만이 교통인 곳, 분주하게 오가는 전깃줄로 엮어지는 관계망들…. 머지않아 동네 안을 이리저리 통하는 좁은 길의 촉수는 잘려 나가고, 누군가의 재산을 불릴 고층 아파트들이 뭉툭한 말뚝을 세울 것이다.

벚꽃 잎들이 공중에 흩날린다. 고요하고 고단한 바람, 점점이 날리는 흰 빛은 언제나 무심하다. 오랜 오후를 견뎌온 담벼락들은 골목에 기대어 조락한 햇볕을 받는다. 벚꽃이 흐드러질수록 나무는 저 혼자 햇빛을 흔들고 어느 처마 밑 거미줄은 기면(嗜眠)에서 운다. 전선들은 기와 틈 사이의 무늬를 엮어 곁가지처럼 뻗어간다. 전깃줄이 집과 집을 얽혀 세우는 동안 어느새 저녁이 걸리고, 비로소 불빛이 발갛게 열린다. 그러니 이 골목에 들어서면 집들의 마음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대문과 대문을 음미하면서 찬찬히 걸어가 대화하듯 에돌아 나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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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저 혼자 햇빛을 흔들고 있다
나무는 저 혼자 햇빛을 흔들고 있다
골목에는 항상 지름길이 있다. 그러나 가로질러 갈 수 없었던 사연은 연애담처럼 막막해서였을까. 그 아이에게 쓴 편지가 아직 첫 줄에서 설레여서 그 집 앞은 키보다 깊은 물속이었지. 누가 누구를 사랑한다라는 낙서조차 어느 저녁의 고백 같은. 뜨거운 여운이 오월의 장미를 붉게 하고 그 저녁을 물들인다. 이제는 추억 자체가 지름길이 되어 버린 기억, 창틀에 내어놓은 작은 화분이 내내 싱그러워, 외로운 유년을 이야기하는 골목이 있다. 이때는 길을 빨리 찾기 위해서 길을 잃어버려야 한다.

색색의 페인트칠도 오래 혼자가 되면 세월을 탄다. 얼룩이 지고 균열이 생기며 그 틈으로 역마살이 낀 이끼가 오른다. 흐린 날 부식된 하늘처럼 현기증 나는 구름이 머물다 간다. 점점 회색빛 색조로 닮아가는 이 언덕을 훗날 무어라 불러야 할까. 하나의 시간으로 연대해 빛을 받아 빛나기도 하고 그 빛을 거둬들이는 언덕 위의 집들. 시멘트 내부의 앙상한 골격으로 서로 기대어 올 때 그게 누구의 집이라도 버텨주고 싶은 담들의 결림. 콘크리트를 콘트라베이스라 고쳐 발음하다 보면, 그 저음에 닿는 바람이 빨랫줄을 느리게 그어 보는 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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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만든 여정이 이곳이라는 듯 두 노인은 태연하다
스스로 만든 여정이 이곳이라는 듯 두 노인은 태연하다
이웃이 하나 둘 떠나도 떠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백발이 되어 가는 노인이 자신의 생에 두고 온 날을 짚으며 마실 나왔을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 만든 여정이 이곳이라는 듯 두 노인은 태연하다. 한 번 자리잡은 주름살처럼 떠나지 않을 나이. 집과 집이 접혀 골목이라는 주름을 만들고 그 깊게 패인 자리마다 표정이 잡힌다. 결국 집이 짊어져야 할 것은 자신의 내부에 있는 틈이다. 왜 사진을 찍느냐고 사람들이 두고 간 빈집만큼 무심해하는 질문에 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을까.

들뜬 시멘트는 늘 그 색깔에서 집착을 놓아준다.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을 때 집들은 기억을 습기로 어루만지며 서로의 벽이 된다. 서로 다른 벽이 만나서 같은 색으로 퇴색해 가는 골목길. 이 길에서는 함부로 담겨진 흙도 싹을 틔운다. 그리고 살아간다. 아무도 없는 적막이 그 계단의 양분이다.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별을 받아들일 것 같은 벽 앞에서, 얼룩의 느낌보다 얼룩을 벗고 있는 벽의 느낌으로 눈을 감는다. 그리고 한때 벽이었던 수많은 망설임들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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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민이 서린 것 같은 강아지
어떤 연민이 서린 것 같은 강아지
오르막길에 이르러서 강아지 한 마리를 바라본다. 호기심 한가운데 귀가 세워졌다 접혀지고, 그 어떤 연민이 서린 것 같은 눈빛을 보내온다. 그것은 강아지의 눈동자가 아니라 눈동자만 남은 떠난 이들의 쓸쓸함 같은 것일까. 작은 기척에도 같은 위치에서 머리만 기울이는 강아지. 매여 있는 것이 때로는 자신을 여행하러 온 세상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집도 벽도 바닥도 강아지도 같은 톤의 색인 이곳에서는 내 눈도 그것들의 일부가 된다. 어느 빈집의 마음이 나를 잡아 이끄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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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쿨이 집의 내력에 깃들어 있다
넝쿨이 집의 내력에 깃들어 있다
고층의 아파트 옆 넝쿨 속으로 삼켜지는 집이 있다. 빛도 없는 제 안의 이야기를 나무판으로 덧대어 놓은 집. 거대한 넝쿨이 뒤란의 옷가지며 부엌살림 도구들, 액자나 검은 비닐봉지 나뒹구는 내력에 깃들어 살고 있다는 듯 낭창거린다. 재개발은 이렇듯 울타리 하나 사이로 풍경을 매장하는 것이다. 이제 얼마 후면 타워크레인이 이끌고 온 거대한 콘크리트가 층층이 지상부터 허공을 메울 것이다. 살아가면서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란 각오하고 집을 숨겨보려는 넝쿨의 신념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무력함 앞에서 시간으로 잊혀져 가는 나를 미력하나마 기록하는 것이다.

글·사진_ 윤성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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