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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겸과 최전 등 지방의 천재시인 작품 발간, 문학에도 ‘탈중앙’

김숭겸과 최전 등 지방의 천재시인 작품 발간, 문학에도 ‘탈중앙’

임병선 기자
입력 2022-08-29 17:33
업데이트 2022-08-29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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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숭겸(1682~1700년)은 조선 숙종 때 시인으로 19세에 요절했다. 경기 양주 출신으로 할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 아버지는 성균관 대사성을 지낸 김창협이며, 어머니는 부제학 이단상의 딸로 연안 이씨였다.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등진 아들의 묘비에 “세상의 악착(齷齪)함을 보고 뜻에 맞지 않으므로 성색(聲色)에 머물지 않고 산수만을 좋아하여 풍악(楓岳)·천마(天摩)·화산(華山) 등을 다녔고, 시격이 기준창로(奇俊蒼老)하여 두보(杜甫)의 격을 터득하였다”고 기렸다.

‘관복암 시고’(觀復菴詩稿)의 한 수를 소개한다. 고적한 칠언절구가 요절한 천재 시인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十日

杖藜今日又登臺 江上城邊暝色來

叢菊相看亦已老 高歌欲放自成哀

三洲只是聞鴻? 百慮何能去酒杯

野哭村砧俱薄暮 悲秋歎世重徘徊

10일

지팡이 짚으며 오늘 다시 대를 오르니

강가 마을 주위로 땅거미가 지네.

국화꽃 무더기를 보노라니 또한 어느새 시들었고

소리 높여 노래 부르려 하니 절로 슬퍼지네.

삼주는 그저 기러기 소리 들리고

온갖 시름 어이 술잔에 떠나보내리오?

들판의 통곡 소리, 마을의 다듬이 소리에 해도 저물었거든

가을을 슬퍼하고 세상을 탄식하며 거듭 발길 주저하노라.

지만지한국문학(대표이사 박영률)이 천재 시인 김숭겸(경기 양주)과 율곡의 제자로 명나라에서도 극진한 찬사를 얻은 시인 최전(경북 문경) 등 그동안 중앙의 그늘에 가려졌던 지역의 한시(漢詩) 대가 10명의 작품집을 내놓았다. 영남학, 호남학, 기호학 등 지역 고전학을 폭넓게 발굴해 체계적으로 연구, 발간하는 기획으로 우리 문학사에 첫 시도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관방 학자들의 글을 주류로만 받아들이던 풍토를 과감히 벗어나려는 몸짓이다.

정우락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강정화 국립경상대 한문학과 교수, 박순철전북대 중문학과 교수,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등이 기획위원으로 머리를 맞댔다. ‘외딴 섬’으로 치부돼 존재 의미조차 갖지 못했던 지역 고전학 작품들이 빛나는 문화유산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기회가 됐으면 한다.

그 의욕 넘치는 시도의 첫 번째로 10권을 발간했다. 울산 최초의 대과 급제자로 18세기 울산을 대표한 학자 이근오의 ‘죽오시선’(竹塢詩選)과 양산 통도사 구하 스님의 ‘금강산 관상록’(金剛山觀賞錄), 김숭겸의 관복암 시고, 최전의 ‘양포유고’(楊浦遺稿), 전북 고창을 대표하는 선비 황윤석의 ‘이재시선(?齋詩選)’ 1 등이다.

김승룡 교수는 “지역의 문화자산을 발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학문적으로 축적해 다음 세대에게 더 다양하고 균형 있는 문화를 전승함으로써 지역 고전학의 초석을 닦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최대 400종까지 확대해 전국적인 학문 지도를 완성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지역’은 인간의 삶이 실질적으로 구현되는 장소이며 시간과 공간의 좌표에 의해 구분되는 인간적, 인문적 영역”이라며 “지역은 ‘지금 이곳’의 다른 말”이라고 덧붙였다.

고전은 시간과 공간에 의해 일차적으로 규정되는데 지금 이곳을 우리에게 의미 있는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는 텍스트라는 점에서 “고전은 철저하게 ‘지역’에 복무한다”고도 했다.

지만지한국문학은 조선 선조 때 문인이며 경북 청송 출신 조수도의 ‘신당일록’(新堂日錄) 등 14종을 내년 상반기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만지한국문학 고전학 총서 1차 목록(10권)

‘가암 시집’(전익구 지음 김승룡 최금자 옮김, 200쪽 1만 8800원) - 경북 예천

‘관복암 시고’(김숭겸 지음 노현정 옮김, 608쪽 3만 6800원) - 경기 양주

‘금강산 관상록’(구하 지음 최두헌 옮김, 290쪽 2만 2800원) - 경남 양산

‘목재 시선’(홍여하 지음 최금자 옮김, 256쪽 1만 8800원) - 경북 상주

‘서천 시문선집’(조정규 지음 전설련 옮김, 190쪽 1만 8800원) - 경남 함안

‘양포유고’(최전 지음 서미나 옮김, 254쪽 2만 800원) - 경북 문경

‘이재 시선’ 1≫(황윤석 지음 이상봉 옮김, 310쪽 2만 2800원) - 전북 고창

‘죽오 시선’(이근오 지음 엄형섭 옮김, 210쪽 1만 8800원) - 경남 울산

‘회봉 화도시선’(하겸진 지음 이영숙 옮김, 252쪽 2만 800원) - 경남 진주

‘후산 시문선집’(정재화 지음 정우락 옮김, 352쪽 2만 4800원) - 경북 성주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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