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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탐욕’은 지금 풍수의 민낯, 조선 땅에 깃든 ‘사람’이 없다

‘LH 탐욕’은 지금 풍수의 민낯, 조선 땅에 깃든 ‘사람’이 없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1-03-25 17:32
업데이트 2021-03-26 0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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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바람보다 산줄기 더 귀하게 여긴 왕실
성리학 바탕 윤리 강조한 ‘인성풍수’ 확립
“길흉은 땅뿐 아닌 사람의 덕 본받아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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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침에서 바라본 헌릉의 입지 경관. 앞으로 인릉산과 멀리 청계산이 겹쳐 보인다. 지오북 제공
능침에서 바라본 헌릉의 입지 경관. 앞으로 인릉산과 멀리 청계산이 겹쳐 보인다.
지오북 제공
조선왕실의 풍수문화/최원석 지음/지오북/664쪽/3만 3000원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의 궁성은 대부분 평원에 자리 잡았다. 주변에 땅을 파 인위적으로 물길을 내기도 했다. 조선 왕조의 궁성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입지한 사례가 많다. 왕의 태를 보관한 태실을 비롯해 왕릉 역시 산을 따라 자리한다. 풍수에 대한 이념이 달랐음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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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보적인 풍수학자로 꼽히는 최원석 경상대 교수는 ‘조선왕실의 풍수문화’에서 탄생, 삶(통치), 죽음의 풍수문화를 보여 주는 태실, 궁성, 산릉을 조사해 조선 풍수의 특징을 잡아낸다. 고려의 풍수를 계승하면서도 달리 적용한다. 예컨대 태조는 수도를 옮길 때 애초 고려의 도참사상에 따라 계룡산을 도읍지로 정했다. 수개월에 걸쳐 계룡산에 대규모 공사까지 진행했지만, 경기관찰사 하륜이 “계룡산은 국토의 남서부에 치우쳤다”고 반대하자 고민에 빠진다. 그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지리적 요인을 고려한 것이다. 무악, 불일사, 선고개 등 후보지를 거쳐 결국 한양으로 새 도읍을 잡는다. 고려 풍수도참 사상이 조선의 풍수지리로 넘어가는 장면이다.

선불교의 영향을 받았던 고려와 달리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은 조선은 개인적인 인성과 사회적인 윤리를 강조한 ‘인성풍수’를 확립한다. 조선 왕조가 풍수의 교과서로 삼았던 ‘지리신법호순신´에는 “길흉의 조건은 땅에서만 구할 수 없으며, 사람의 덕을 본받아 따른다”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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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수도 한양의 풍수학적인 입지를 잘 보여 주는 조선의 종합 지도책 ‘여지도’의 도성도 부분. 지오북 제공
조선의 수도 한양의 풍수학적인 입지를 잘 보여 주는 조선의 종합 지도책 ‘여지도’의 도성도 부분.
지오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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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 있는 헌릉의 당시 모습을 그린 헌릉 산릉도(1931). 대모산 아래 사방을 산줄기가 둘렀고, 서편의 백호, 남쪽의 주작 줄기가 겹겹이 에워싼 모습이다. 지오북 제공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이 있는 헌릉의 당시 모습을 그린 헌릉 산릉도(1931). 대모산 아래 사방을 산줄기가 둘렀고, 서편의 백호, 남쪽의 주작 줄기가 겹겹이 에워싼 모습이다.
지오북 제공
중국 ‘금낭경’에는 “득수가 우선이고 장풍은 그다음”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조선 왕조는 물과 바람보다 산줄기를 의미하는 ‘용맥’(龍脈) 조건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저자는 이런 조선 왕실의 풍수미학에 대해 “산수의 자연미에 인문적 품위와 격조를 더한 아름다움”이라고 강조한다.

땅을 잘 고르면 화를 면하고 복이 들어온다는 속설 탓에 풍수는 미신으로 치부되곤 했다. 유학자들의 반대도 심했다. 세종 12년(1430년)엔 헌릉의 주산을 가로지른 옛 고갯길을 없애야 하느냐를 두고 풍수를 다루는 술사와 유학자들 간의 대립이 있었다. 유학자 일부가 “풍수학은 잡스런 술수 중에서도 가장 황당하고 난잡한 것”이라 비난했다.

조선의 풍수는 나아가 정치적인 소재이기도 했다. 왕권이 강력할 때에는 왕이 주도했다. 태종과 세종은 능자리를 선정했고, 정조는 사도세자의 융릉인 현륭원 입지를 결정했다. 왕권이 미약하면 권신들이나 척신이 산릉의 일을 좌지우지했다.

저자는 현존하는 능 44기를 직접 발로 뛰어 조사하고, 배치와 풍수 조건을 모두 분석했다. 실록의 기록들도 이 잡듯 뒤졌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능의 위치와 현재 위성지도로 위치를 비교해 가며 추적했다. 650여쪽의 본문에 사진만도 100여장에 이르는 종합 보고서다. 저자는 이런 과정을 거쳐 조선 왕실 풍수의 핵심 키워드로 ‘인성’, ‘산’, ‘정치’, ‘자연미학’을 꼽는다.

일제강점기와 근대의 파고로 조선 왕실의 풍수사상이 사회의 패러다임으로 안착하는 길은 막혔다. 한국의 독특한 풍수문화인 태실은 모두 143곳으로 알려졌지만, 현존하는 곳은 고작 22곳에 불과하다. 일제가 1929년 태실 54기를 집단으로 모아 공동묘지로 만들어 버렸고, 친일파 인사들이 빈자리를 가족묘로 취했다.

지금 우리의 풍수사상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를 놓고 보자면 ‘개발논리’와 ‘한탕주의’가 아닐까 싶다. 땅을 사람의 탄생, 삶, 죽음의 공간으로 성찰하지 못한 채 그저 탐욕의 공간으로 취급하는 모습이 그저 씁쓸할 뿐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2021-03-26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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