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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시스템 개방… 혁명적 실험”

“동인시스템 개방… 혁명적 실험”

입력 2011-04-09 00:00
업데이트 201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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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정선 문학과지성사 대표

“지금은 과도기지요. 제가 대표로 있는 기간이 길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문지’를 물려주는 역할이 제가 맡은 몫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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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이사직을 맡은 지 고작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홍정선(오른쪽·58) 문학과지성사(문지) 신임대표의 첫마디는 뜻밖이었다. 하지만 41년 역사 속에 견지되어 온 문지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홍 대표는 “문지는 개인 출판사가 아니며 편집 동인이 경영과 편집에 무한 책임을 지는 곳”이라면서 “11년 만에 다시 동인 대표가 구체적으로 경영의 전면에 나섰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시작할 때부터 문학평론가 김병익이 대표를 맡아왔다. 이후 2000년 시인 채호기, 편집주간 김수영 등이 이어서 대표를 지냈지만 편집 동인 출신이 아니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홍 대표는 권오룡, 성민엽, 정과리 등과 함께 편집 동인 2세대다. 뒤 세대 동인 후배들이 가져야 할 구체적인 책임감을 에둘러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문학과지성은 편집 동인이 출판사 사업 계획, 단행본 출간, 계간지 문학과사회(문사), 무크지 이다의 편집 방향 등을 논의하고 결정짓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른바 ‘4K’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이 1세대를 이루고, ‘문사 세대’로 불리는 2세대, 김동식, 우찬제, 이광호 등 ‘이다 세대’인 3세대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지난 2월 새롭게 등장한 편집 동인 4세대로 김형중, 강계숙, 이수형 등이 있다.

동인 2세대로 30년을 문지와 함께 해 왔고 최근 3년을 비상근 공동대표로 있었던 그이지만 부담감이 없을 리 없다. 또한 상업주의 문학의 범람과 문학 자체의 침체 앞에서 문지의 입지가 좁아진 것 역시 현실이다.

홍 대표는 “취임 이후 일주일 내내 감기 몸살과 함께 딸꾹질이 그치지 않아서 너무도 힘들었다.”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스트레스가 더 컸던 것 같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살 섞인 너스레와 달리 홍 대표가 단행한 문지의 변화는 구체적이다. 그는 대표에 오르자마자 공석이던 편집장 인사를 했고 조직을 개편했다. 오는 22일 직원들과 편집 동인들이 모두 참가하는 1박 2일 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얼핏 새삼스러울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여기는 문지다. 편집 동인들이 거의 전적으로 틀어쥐고 있는 부분을 편집부 직원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혁명적 변화에 가까운 새로운 실험이다.

홍 대표는 “동인들 사이에 완고한 문학주의가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면서 “자신도 모르게 응고된 것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며 최근 출판시장의 흐름 등을 따라가는 데 편집부 직원들과 동인 사이의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편집 방향, 단행본 기획 등에 편집부 직원들의 능동적 참여를 제도화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몇십만부 나가는 책이 아니라 1만부 정도만 팔리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읽힐 수 있는 좋은 작품과 작가를 발굴하는 것이 우리 문지의 몫이죠. 문학의 침체와 위기를 대처하는 데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잔재주가 아니라) 가장 모범적인 방법입니다.”

글 좀 쓰는 작가다 싶으면 일단 ‘입도선매’ 해놓고 보는 것이 최근 문학 출판계의 고약한 관행이다. 채 피지도 않은 젊은 작가의 뿌리를 갉아먹고, 한국 문학의 발밑을 스스로 허무는 주변 모습에 걱정을 앞세우면서도 문학과지성의 중심만큼은 틀어쥐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드러냈다.
2011-04-09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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