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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폭염에도 머플러… 60여년 세월 갈고닦은 코시국 달래는 속풀이

여름 폭염에도 머플러… 60여년 세월 갈고닦은 코시국 달래는 속풀이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12-13 17:14
업데이트 2021-12-14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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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 안숙선, 만정제 흥부가 송년 무대

국립극장 ‘완창 판소리’ 30회 최다 출연
코로나로 2년 만에 송년 무대 다시 올라

좋은 소리 만드는 ‘득음’ 순간 끝이 없어
운동선수 몸 관리하듯 찬물도 안 마셔

불 꺼진 방서 맹훈련 ‘연습실 귀신’ 별명
“멋있는 소리엔 추임새로 응답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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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안숙선 명창은 국립극장 ‘송년판소리’를 통해 스승에게 전수받은 만정제 흥부가를 정미정, 김미나, 박애리, 김준수 등 후배들과 함께 흥겹게 풀어낸다. 형제간 우애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해학적인 흥부가로 서로 보듬으며 새로운 시간을 기원하는 무대다. 사진은 안 명창의 2019년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공연 모습. 국립극장 제공
2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안숙선 명창은 국립극장 ‘송년판소리’를 통해 스승에게 전수받은 만정제 흥부가를 정미정, 김미나, 박애리, 김준수 등 후배들과 함께 흥겹게 풀어낸다. 형제간 우애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해학적인 흥부가로 서로 보듬으며 새로운 시간을 기원하는 무대다. 사진은 안 명창의 2019년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공연 모습.
국립극장 제공
“옛 어른들 말씀대로 한마디로 ‘난리가 난 일’인데 어떻게 할 수가 없죠. 우리는 소리를 못 해서 난리가 났지만. 그래도 큰일이니 잠시 숨을 가다듬고 다시 그 좋은 시간들을 마련하면 좋겠어요.”

매년 12월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무대를 통해 관객들과 한 해를 마무리했던 안숙선(사진·72) 명창이 지난해 코로나19로 송년 무대를 한 차례 건너뛴 아쉬움을 담담하게 말했다. 여전히 답답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나마 이제야 ‘좋은 시간’을 다시 가질 수 있게 된 안도도 담겼다. 벌써 2년 가까이 힘겨운 시간을 보낸 서로를 위해 안 명창은 오는 18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해학이 가득한 흥부가와 흥겨운 남도민요로 위로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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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안숙선 명창은 국립극장 ‘송년판소리’를 통해 스승에게 전수받은 만정제 흥부가를 정미정, 김미나, 박애리, 김준수 등 후배들과 함께 흥겹게 풀어낸다. 형제간 우애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해학적인 흥부가로 서로 보듬으며 새로운 시간을 기원하는 무대다. 사진은 안 명창의 2018년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공연 모습. 국립극장 제공
2년 만에 다시 관객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안숙선 명창은 국립극장 ‘송년판소리’를 통해 스승에게 전수받은 만정제 흥부가를 정미정, 김미나, 박애리, 김준수 등 후배들과 함께 흥겹게 풀어낸다. 형제간 우애와 권선징악을 주제로 한 해학적인 흥부가로 서로 보듬으며 새로운 시간을 기원하는 무대다. 사진은 안 명창의 2018년 국립극장 ‘송년판소리’ 공연 모습.
국립극장 제공
안 명창은 1986년을 시작으로 국립극장 ‘완창판소리’ 무대 30회 최다 출연 기록을 세웠고 2010년부터는 해마다 송년 무대를 함께하며 깊고 진한 성음으로 판소리에 담긴 희로애락을 전했다. 최근 서울 강남구 자택에서 만난 그는 “판소리 다섯 바탕을 다 쉬지 않고 해놓으니까 누가 급하게 빠지면 제가 했더니 이제 ‘완창판소리’ 하면 ‘안숙선’을 떠올려 주시고 좋은 명창 선생님들이 많은데도 ‘송년판소리’를 독점하게 된 것 같다”면서도 “저야 쉬지 않고 연습을 많이 하게 되니 흐뭇하고 좋다”고 말했다.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보유자면서 판소리 다섯 바탕 완창에 창극까지. 60년이 훌쩍 넘도록 소리를 갈고닦은 명창은 “나이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라며 세월 앞에 새삼 겸손해졌다. “만정 김소희(1917~1995) 선생께서 ‘나이 오십이 될 때까지 좋은 소리를 들려드려라’ 강조하셨지요. 그 뒤엔 옛날처럼 무대에서 온몸을 다 사용한 좋은 목소리를 낼 수는 없으니 자신을 추스르면서 하라고 하셨는데, 정말 마음대로 안 돼서 이제 그 뜻을 이해하죠. 잘해야 하는데 걱정이 되면 좀 꾀소리를 내기도 해요.”

관객들에겐 깊고 청아한 그의 청이 한결같이 들리지만 “제 자신은 안다”며 스스로를 평생 채찍질했다. 사계절 내내 머플러로 목을 감싸고 탄산음료나 차가운 물은 일절 마시지 않으며 목을 지켜왔고, 불 꺼진 국립창극단 연습실에서도 소리를 멈추지 않아 오래도록 ‘연습실 귀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하루만 쉬어도 금방 티가 나니까 끊임없이 해야만 한다”며 달려왔고 청을 잘 잡는 날엔 아직도 “신이 난다”고 한다. 안 명창은 “소리가 다 만들어졌다고 자만하는 것은 곧 소리를 그만둔다는 이야기”라며 좋은 소리를 만드는 ‘득음’의 순간에도 끝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한여름에도 목을 감쌀 땐 ‘무슨 죄를 지어서 이 고생을 하나’ 싶기도 하다”면서도 “운동선수들이 몸을 관리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며 웃음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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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숙선 명창
안숙선 명창
다만 그의 세월은 또 다른 힘으로 굳어졌다. “몸의 힘은 부족해지는 대신 시김새나 짜임새를 잘 운영할 수 있는 여유는 생겼어요. 이렇게 말없이 소리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공력을 많이 들여야 살이 통통하게 찌고 속이 꽉 찬 좋은 소리가 되지요.”

안 명창은 그의 뿌리이기도 한 만정제 흥부가로 알찬 속을 겹겹이 풀어 낸다. 김소희 명창에 의해 전수된 유파로, 섬세하고도 간명하게 이야기를 그려 가며 권선징악의 교훈을 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아주 경쾌한 자진모리부터 한없이 슬픈 진양조, 그사이 엇모리, 중중모리, 중모리 등 다채로운 이야기와 감정을 가득 담은 것이 흥부가요, 판소리”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어 관객들에게 당부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관객들이 추임새를 안 해 주시면 기운 떨어져서 할 수가 없어요. 참 멋있는 음악인 소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셔야 합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21-12-1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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