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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풀이 자라는 무대에서…음악과 함께 그려가는 애틋한 이야기

꽃과 풀이 자라는 무대에서…음악과 함께 그려가는 애틋한 이야기

허백윤 기자
허백윤 기자
입력 2021-06-29 15:51
업데이트 2021-06-29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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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서 다음달 4일까지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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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의 무대는 실제 풀과 이끼, 꽃과 작은 연못으로 실제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의 무대는 실제 풀과 이끼, 꽃과 작은 연못으로 실제 정원처럼 꾸며져 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이 계절과 딱 어울리는 싱그러운 초록 풀과 이끼, 작은 연못.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관객들은 정원에 초대된다. 탈란드시아, 꽃고비, 백두산 털동자, 샐비어, 분홍안개꽃, 에키네시아 등 군데군데 심어진 생화가 설레게 한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정원은 그만큼 깊은 슬픔과 그리움이 담긴 미로가 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는 미국 뉴욕주 제너시오의 성공회 사제였던 시미언 피즈 체니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파스칼 기냐르의 동명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세종문화회관은 ‘김주원의 탱고발레’(2019), ‘김설진의 자파리’(2020)에 이어 세 번째로 선보이는 컨템포러리S 기획 시리즈로 이 소설을 국내 처음 작품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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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속에서 딸을 출산하다 숨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정원을 꾸미는 시미언 사제를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속에서 딸을 출산하다 숨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정원을 꾸미는 시미언 사제를 연기하는 배우 정동환.
세종문화회관 제공
사제관 정원의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를 악보에 적으며 살아가는 시미언은 28년 전 아내를 잃었다. 딸 로즈먼드를 출산하다 숨을 거둔 아내를 잊지 못하며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을 그리움으로 정성껏 가꾼다. 그러나 딸은 철저하게 외면한다. 아내를 그리워할수록 딸이 원망스러운 시미언은 로즈먼드를 사제관에서 내보낸다.

시간이 흘러 중년이 된 로즈먼드가 다시 사제관에 돌아왔지만 시미언은 여전히 아내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정원을 헤맸다. 게다가 한껏 자라 젊은 시절 아내의 모습을 한 딸에게 더욱 미움을 앞세운 복잡한 감정을 쏟아낸다. 그에게 정원은 곧 아내였고, 아내 안에서만이 자신도 살아 있을 수 있다고 믿는다.

모두가 사랑을 노래하지만 결코 따뜻하거나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 복잡한 관계를 풀어내는 것은 음악이다. 피아노, 플루트, 바이올린, 첼로 사중주가 섬세한 선율을 그리고 60여대 스피커가 이를 마음까지 울려 퍼지게 했다. 시미언이 기보한 악보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16곡은 밝고 아름답지만 또 한편으론 슬프고 아득한 이야기를 모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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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우리가 사랑하는 정원에서’에서 극 중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레이터를 맡은 배우 김소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연극 ‘우리가 사랑하는 정원에서’에서 극 중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레이터를 맡은 배우 김소진.
세종문화회관 제공
얽힌 감정들을 3인극으로 풀어내는 배우들의 내공도 극을 돋보이게 했다. 아무리 아내에 대한 사랑이 짙어도 소중한 피붙이를 매몰차게 내모는 시미언은 그다지 매력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그런데 배우 정동환이 여기에 설득력을 얹었다. 메마른 듯 건조한 얼굴이지만 고통을 가득 머금은 눈빛이 시미언이 헤어나오지 못할 만큼 빠져 버린 사랑과 그리움의 깊이를 가늠케 했다. 로즈먼드 역의 이경미는 발랄한 움직임 속에서 아버지의 시선을 바라는 애절함을 표현했다. 친절하고 따뜻한 어투로 정원 속 사연을 풀어 주고 부녀의 감정을 차근차근 읽어 낸 김소진의 내레이션은 시미언이 기보한 자연의 소리만큼이나 세심하게 극을 직조한다.

객석을 떠날 때 다시 바라보는 정원은 오히려 처음보다 애틋하다. 그 안에는 고통스럽지만 누구보다 크고 간절한 사랑과 위로가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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