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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 그은 금… 회화에 그은 획

명화에 그은 금… 회화에 그은 획

함혜리 기자
입력 2017-01-15 22:58
업데이트 2017-01-16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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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크랙 시리즈’ 발표한 ‘얼굴-이중 이미지’의 화가 김동유

2006년의 일이다.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현존하는 한국 화가로는 최고 금액에 작품이 낙찰될 때까지 김동유(52)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이후 픽셀 모자이크 회화 기법의 이중 이미지 그림은 웬만한 수집가들에게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꼽혔다. 당연히 그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작가 반열에 올랐다.

김동유 작가의 신작 ‘크랙-최후의 만찬’. 그는 “균열과 해체는 권위라든가 고정불변하는 것, 억압적인 구조를 나만의 방식으로 변환하고 전환해 본 것”이라며 “회화적 실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김동유 작가의 신작 ‘크랙-최후의 만찬’. 그는 “균열과 해체는 권위라든가 고정불변하는 것, 억압적인 구조를 나만의 방식으로 변환하고 전환해 본 것”이라며 “회화적 실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메릴린 먼로의 얼굴들로 마오쩌둥이나 케네디 대통령의 얼굴을 그리고 수많은 다이애나비의 얼굴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얼굴을 그리는 등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유명인을 소재로 한 ‘얼굴-이중 이미지’로 인기를 구가하던 그가 이번에는 고전 명화에 균열을 낸 그림들을 들고 나타났다.

변방의 그림 잘그리는 화가에서 ‘잘나가는’ 한국적 팝아트의 대표 주자가 된 김동유가 ‘크랙’ 시리즈 신작을 중심으로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6층의 에비뉴엘아트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김동유-80년대로부터’라는 제목을 단 전시는 약식 회고전 성격을 띠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을 토대로 한 ‘크랙-최후의 만찬‘, ‘크랙-성모자’, 16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를 차용한 ‘정물과 나비’ 등 크랙 연작이다. 이와 함께 1980년대 후반의 얼굴 습작, 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까지 그려진 나비 우표, 이발소 그림, 구겨진 명화 그림, 얼굴 이미지 작품을 전반적으로 소개해 초기부터 그의 회화적 실험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이번 크랙 시리즈는 구겨진 명화 시리즈가 한 단계 발전한 것으로 다양한 회화적 실험의 연장”이라고 말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 다비드의 ‘나폴레옹’ 등의 명화는 그의 화면에 극사실적 기법의 구겨진 이미지로 소환됐다. 크랙 연작에서는 명화의 화면 전체를 단색조로 전환하고 금색이나 흰색의 붓질로 균열을 부각시켰다. 같은 재료를 사용해도 다른 기법으로 그린 그림은 다른 느낌이 난다.

롯데 에비뉴엘아트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화가 김동유가 고전 명작에 토대를 둔 ‘크랙’ 시리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롯데 에비뉴엘아트홀에서 열리는 개인전에서 화가 김동유가 고전 명작에 토대를 둔 ‘크랙’ 시리즈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크랙-최후의 만찬’은 핑크와 노랑, 하늘색 바탕에 금색으로 크랙감을 살린 작품이다. 세 개의 커다란 캔버스를 이어 붙인 그림 속의 예수와 열두 제자의 마지막 저녁 식사는 비장감보다는 화려한 정찬처럼 보인다. 라파엘로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화가들이 그린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의 모습을 수많은 갈라짐으로 표현한 ‘크랙-성모상’은 온화함이 더욱 드러나 보인다.

그는 “균열과 해체는 권위라든가 고정불변하는 것, 억압적인 구조를 나만의 방식으로 변환하고 전환해 본 것”이라며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고전 명화에 나타나는 크랙이란 장치를 통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유형화된 것을 좀 쉬운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크랙’ 시리즈는 가까이서 보면 무수한 붓질의 흔적이 보이고 뒤로 물러서 보면 전체 형상이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동안 그가 해 왔던 해체와 재맥락화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작품은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이지만 작업 과정은 디지털 작업으로 시작해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수작업으로 마무리된다. 포토샵 작업을 통해 ‘최후의 만찬’ 같은 명화의 윤곽선과 원래 작품의 균열까지 그대로 담아 캔버스에 출력한 뒤 그 위에 가는 붓질로 갈라진 자국과 바탕색을 칠하는 방식이다. 크랙으로 명암을 표현하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기술이다.

“디지털적인 요소와 아날로그적 요소를 동시에 보여 주고 싶다”는 작가는 크랙 시리즈에 대해 “‘얼굴-이중 이미지’가 규칙적인 픽셀의 반복이라면 크랙 작업은 불규칙성을 강조하면서 아날로그적 요소를 더욱 부각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날로그적 요소란 붓질을 가리킨다. 그는 붓질에 온전히 전념하기 위해 지난해 2월 모교인 목원대의 교수직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교수직이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긴 하지만 교수 개인의 의지를 가지고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스트레스를 안겨 주는 것이 싫었다”는 그는 “작업만 하는 것도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가 있어 편치만은 않다”며 웃었다. 전시는 2월 6일까지.

글 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2017-01-1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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