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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日보다 먼저… ‘경복궁 뒷간’에 현대식 정화시설

유럽·日보다 먼저… ‘경복궁 뒷간’에 현대식 정화시설

하종훈 기자
하종훈 기자
입력 2021-07-08 20:24
업데이트 2021-07-0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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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여년 전 궁궐 대형 화장실터 발굴

입·출수구 모두 갖춘 정화구조는 처음
높이차로 오수와 정화수 분리해 배출
악취 줄이고 독소 빠진 분뇨는 비료로
한 번 최대 10명·하루 150명 이용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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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동궁 권역에서 발견된 대형 화장실 유구(건물 자취)를 복원한 이미지.  문화재청 제공
경복궁 동궁 권역에서 발견된 대형 화장실 유구(건물 자취)를 복원한 이미지.
문화재청 제공
조선 후기인 150여년 전에 궁궐에선 선진적 정화시설을 갖춘 공중화장실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1868년(고종 5년)에 중건된 경복궁 동궁 남쪽 권역을 발굴 조사하다 현대식 정화조와 비슷한 대형 화장실 유적을 찾았다고 8일 발표했다. 궁궐 내에서 화장실 유구(건물 자취)가 나온 것은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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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발굴 조사를 완료한 뒤 3D 스캔으로 입수구(아래쪽)에서 출수구(왼쪽) 2곳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를 형상화했다.  문화재청 제공
화장실 발굴 조사를 완료한 뒤 3D 스캔으로 입수구(아래쪽)에서 출수구(왼쪽) 2곳으로 빠져나가는 구조를 형상화했다.
문화재청 제공
이번에 발굴된 화장실은 좁고 긴 네모꼴 석조로 된 구덩이 형태로 분뇨가 밖으로 스며 나가는 것을 막았다. 길이 10.4m, 너비 1.4m, 깊이 1.8m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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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정화 시설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장실 유구 발굴 현장에서 문화재청 관계자가 정화 시설의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화시설 안에는 물이 들어오는 입수구 1개와 물이 나가는 출수구 2개가 있다. 북쪽 입수구 높이는 출수구보다 0.8m 낮다. 입수구로 들어온 물은 구덩이 속 분변과 섞이면서 오수를 분리해 궁궐 밖으로 배출한다. 가라앉은 분뇨는 발효되면서 악취가 줄고 독소가 빠져 비료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물이 넘치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분뇨를 퍼 나르는 관리 작업은 필요하다.

양숙자 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이런 시설의 원리는 분뇨 침적물에 물을 유입시켜 발효, 침전시킨 뒤 오수와 정화수를 분리 배출하는 현대식 정화조와 유사하다”며 “한 번에 최대 8~10명, 하루 150명이 이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발굴된 화장실 유적 바닥 흙에서는 기생충 알을 비롯해 오이나 가지의 잔해도 남아 있어 당시 식생활도 짐작할 수 있다. 양 실장은 “이 화장실은 1868년 경복궁 중건 당시 만들어져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기까지 20여년간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부연했다. 다만 입수구 쪽 유구가 훼손돼 화장실에 어떻게 물이 들어오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정화시설을 갖춘 화장실 유구는 백제 익산 왕궁리 유적과 고려 말 양주 회암사 유적에서도 나온 적 있다. 하지만 출수구만 있거나 입출수구가 모두 없는 등 지금과 같은 현대식 정화조 구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장훈 한국생활악취연구소장은 “150여년 전 당시로선 경복궁 화장실은 외국에도 유례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과 일본은 분뇨를 포함한 모든 생활 하수를 함께 처리하는 시설이 19세기 말에 들어서야 정착됐다. 다만 유럽에선 19세기 중반부터 도시 중심부에 상하수도 시설을 갖췄고, 이번 경복궁 화장실은 단독 건물에 자체 정화시설을 갖춘 것으로 일부 계층만 사용할 수 있었다. 기술적 의미보다는 그동안 관심이 적었던 조선시대 궁궐 생활사 복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2021-07-0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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