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떠받드는 ‘내 편’ 모여라”…추앙 속 소통, 세상을 바꾸다

“영웅 떠받드는 ‘내 편’ 모여라”…추앙 속 소통, 세상을 바꾸다

안동환 기자
안동환 기자
입력 2023-11-24 00:18
수정 2023-11-24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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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의 시대
마이클 본드 지음/강동혁 옮김
어크로스/312쪽/1만 8000원

유대감 통해 ‘심리적 배당금’ 발생
사회 변화 이끌고 경제 효과 창출
“폐해 적은 현대 종족주의로 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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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팬들이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롤드컵 결승전을 응원하고 있다.  뉴스1
e스포츠 팬들이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과 중국의 롤드컵 결승전을 응원하고 있다.
뉴스1
“날 추앙해요.”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김지원 분)은 사연 많은 구씨(손석구)를 향해 대뜸 쏘아붙인다. “당신은 어떤 일이든 해야 해요. 난 한번은 채워지고 싶어.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사랑으로는 안 돼. 추앙해요.” 구씨의 스마트폰 검색창에 뜬 ‘추앙’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받들어 우러러 봄’. 두 사람은 서로를 응원하고 지지하며 서로의 인생을 변화시킨다.

누군가를 추앙한다는 건 그 대상의 팬이 된다는 것이다. 신간 ‘팬덤의 시대’를 펴낸 마이클 본드는 사람들이 팬덤에 합류하는 이유에 대해 “특정한 현실을 경험하고, 시야를 넓히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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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한중 축구대표팀의 2026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중국 팬이 손흥민 소속 팀인 토트넘 홋스퍼의 유니폼을 입은 팬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 ‘스포츠 팬덤’ 연구에서는 팬심이 강할수록 팀이 졌을 때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SNS 캡처
21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한중 축구대표팀의 2026 월드컵 예선 경기에서 중국 팬이 손흥민 소속 팀인 토트넘 홋스퍼의 유니폼을 입은 팬과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 ‘스포츠 팬덤’ 연구에서는 팬심이 강할수록 팀이 졌을 때 스트레스 반응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극단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SNS 캡처
그간 소수의 광적인 ‘하위문화’로 깎아내려졌던 팬덤은 이제 초연결사회의 세례를 받아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 현상이 되고 있다. 미국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은 미국 성인의 절반을 넘는다. 팬덤 ‘스위프티스’(Swifties)의 연령대는 ‘밀레니얼 세대’(45%), ‘베이비부머’(23%), ‘X세대’(21%), ‘Z세대’(11%)로 다양하다. 지난해 임영웅 콘서트에서는 102세 최고령 팬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전작 ‘타인의 영향력’으로 영국심리학회 저술상을 수상한 저자는 K팝 열풍에서 극우주의의 부활까지 최근 수년간 세상을 움직여 온 팬덤의 본질을 탐구했다. 책에 나오는 심리 실험들은 인간에게 같은 편을 만들려는 본능이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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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덤이 기존의 대중을 대체하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심리학자들은 팬덤에 ‘심리적 배당금’이 발생한다고 짚는다. 스포츠, 음악, 문학, 영화, 애니메이션 등의 팬덤 조사에서 집단 내 사회적 연결과 유대감은 자존감·행복감을 높이고 우울증 위험을 낮추는 사회적 치료 효과가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팬덤의 선한 영향력이 사회 변화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서 방탄소년단(BTS) 팬덤 ‘아미’가 조직적인 대응 캠페인으로 인종 혐오 해시태그의 확산을 무력화시킨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팬덤의 맹목적인 충성심은 사회적 괴물로 돌변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팬덤은 미 의회를 점거한 폭력 시위로 민주주의를 위협했다. 남성 게임 팬들이 여성 개발자들을 색출해 괴롭히는 ‘사이버 불링’은 게이머게이트 사태로 번졌다.

팬덤 경제는 새로운 교환가치를 창조하고 문화 시장의 게임체인저가 된다. 올해 ‘스위프트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낸 스위프트의 월드투어 공연은 수조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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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 헬멧은 89만 8420달러에 거래됐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내팽개친 주장 완장은 64만 유로에 낙찰됐다. 미적 가치와 상관없이 스타를 욕망하는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레이디 가가의 아크릴 손톱이 1만 2000달러에 판매됐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반쯤 먹다 남긴 프렌치토스트는 1025달러에 낙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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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팬덤이 반드시 집단 외부에 대한 편협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의 결론은 사뭇 긍정적이다. “현대 문화에서 팬덤은 폐해가 적은 종족주의다. 소속감과 정신적 복지를 향상하면서도 영웅을 모방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2023-11-24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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