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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이방인’ 텅빈 공간… 작품이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평범한 이방인’ 텅빈 공간… 작품이 관객에게 말을 걸었다

입력 2011-04-09 00:00
업데이트 2011-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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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 작가 귀로 듣는 전시

최신 유행 표기법에 따르자면, 재현이란 ‘다시-현재-화’(re-present-ation)하는 작업이다. 다시 현재화하는 작업엔 떼려야 뗄 수 없는 질문이 들러붙는다. “지금 이게, 그때 그거랑 똑같아?” 이 물음에 “똑같을 뿐 아니라, 있는 그 자체”라고 되받아치는 작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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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까지 서울 화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김홍석(47) 작가의 ‘평범한 이방인’ 얘기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당황스럽다. 미술 전시장 하면 상식적으로 떠올릴 법한 풍경은 아무것도 없다. 텅 빈 공간 안에 무질서하게 놓여진 의자들 틈에서 5명의 배우가 앉아 있을 뿐이다.

슬슬 다가서면 이들은 각자의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하나의 단어가 미술로 전환되는 상황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 미술을 통해 관용이란 의미를 표현할 수 있는지 오랫동안 고민하던 어느 미술가가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5명의 얘기는 비슷비슷하다. 자신이 무언가를 가지고 예술작품을 만들려고 하는데 어떤 개념을 잡고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에 대해 말한다. 각기 맡은 대상이 의자, 돌, 물, 사람, 개념 등 5가지로 다를 뿐이다. 주로 잔잔히 얘기를 들려주지만, 어떤 배우는 얘기하다 훌쩍 울기도 하고 어떤 배우는 갑자기 일어서서 노래도 부른다.

김 작가는 배우들에게 기본적인 텍스트만 던져줬을 뿐 이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 “안 그래도 이런 전시한다니까 어떤 분은 왜 그렇게 날로 먹으려 드느냐고 하시더군요. 하하하. 그런데 저 개인적으로는 차라리 드로잉이나 조소가 쉬워요. 이런 퍼포먼스가 훨씬 어렵죠. 살아 움직이는 상황을 다뤄야 하니까요.”

이런 작품은 예술작가의 속내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배우들이 말로 설명하는 작품들은 제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들이에요. 눈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귀로 들려주는 미술작품 정도 되겠네요.”

여기까지는 1차 관문이다. 2차 관문도 있다. 배우와 관객들 간 대화가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고 퍼져 나가면서 주어진 텍스트를 벗어나는 과정이다. 때문에 작가가 배우들에게 요구한 것도 텍스트를 달달달 외워 전달하기가 아니라 충분히 이해해서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설명하기였다.

작가는 예전에 인터뷰나 대화 상황을 비디오로 촬영하는 작업을 여러 번 진행했었다. 있는 그대로의 현장성을 살려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비디오 기록물 역시 2차적 기록물, 그러니까 재현의 한 방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있는 그대로를 전달한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기록하려 드는 저 자신을 발견한 거지요. 그것 역시 2차적인 것이다, 1차적인 것으로 가자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답은 관객과 작품이 직접 부딪치도록 하기였다.

3차 관문도 있다. 꼼꼼하게 들어보면 배우들에게 주어진 텍스트는 꽤나 내공이 깊다. 가령 의자에 대한 얘기에는 민주주의와 독재와 정의에 대한 민감한 정치적 질문이 숨겨져 있고, 돌에 대한 얘기에서는 거대한 현대문명에 대한 물음이 녹아 있는 방식이다. “제 나름의, 예술가로서의 자기만족 비슷한 겁니다. 일종의 장난질 비슷한 거지요. 하하하. 5가지 사물을 왜 골랐는지, 그 사물에 제가 집어넣고 싶었던 개념이 무엇이었는지까지 관객들이 알아봐 주신다면 저로서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죠.”

그런데 여기서 단절이 생긴다. 한국사람, 예의바르고 낯가림이 있는 한국사람이 이 과정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작업은 서양인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여건이 주어진다면 그것까지 해서 저도 한번 비교해 보고 싶네요.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해 관객 스스로 작품을 구상해 보시라는 겁니다. 어려울 것 없습니다. 배우들과 친구처럼 대화만 하시면 됩니다.” 3000원. (02)733-8945.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1-04-09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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